재난 영화 특유의 비장함 따윈 버리고 짠하고 현실적인데 그러면서도 유쾌한 영화가 탄생했다. 오그라드는 권선징악 대신 '웃픈' 일상으로 공감대를 높였다. 영화 '엑시트'다.
올 여름 극장가는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디즈니 실사 영화 '라이온킹'이 일찌감치 방학시즌 출사표를 던졌고, 국민배우 송강호를 앞세운 '나랏말싸미', 구마 사제와 거대 악의 대결 '사자', 일제 강점기 독립군 최초의 승리를 담은 '봉오동 전투' 등 한국 영화들도 각기 다른 장르로 관객들을 유혹하고 있다.
영화 '엑시트'가 내세운 건 재난 액션이었다. 재난 액션 영화는 '해운대', '부산행'과 같은 흥행작도 있지만 개봉 후 관객들의 외면을 받은 작품도 적지 않았다. 호불호가 갈리는 소재, 여기에 조정석과 임윤아라는 청춘 배우들을 앞세운 '엑시트'는 기대 못지않게 우려를 받았다. 하지만 베일을 벗은 '엑시트'는 이전까지 보지 못했던 재난 액션 코미디 영화를 선보이면서 강렬한 존재감을 뽐냈다.
오프닝은 짠내 폭발 백수 용남(조정석)이 맡았다. 대학교 산악 동아리 에이스였던 용남은 졸업 후 몇년째 취업에 실패하면서 동네 놀이터에서 철봉을 하면서 체력 단련을 했다. 그를 보며 동네 꼬마들도 "미쳐버렸다"고 손가락질을 할 정도.
어머니의 칠순 잔치에 참석했을 때에도 "다 잘될거야"라고 친척들은 용남을 다독였지만, 영혼없는 위로가 용남을 더욱 비참하게 만들었다. 산악 동아리 후배이자 고백했다가 차였던 의주(임윤아)를 연회장 직원으로 다시 만난 후 "벤처회사에 취업했다"고 거짓말을 했던 것도 자격지심에서 비롯됐다.
"취업에도 도움이 안 되는 등산은 뭐하러 하냐"는 핀잔에도 포기하지 않았던 용남의 취미 생활은 의문의 연기가 도심을 뒤덮으면서 진가를 발휘한다. 처음엔 용남의 말을 불신했던 가족들도 온몸을 던져 유독가스로부터 탈출을 시도하는 용남을 응원하게 됐다.
가족들의 구조 후, 용남과 의주의 극한 탈출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번뜩이는 아이디어로 재난 상황을 헤쳐나가고, 뛰고, 구르고, 건물 벽을 오르는 두 사람의 탈주극은 일반적인 재난 영화 속 주인공처럼 마냥 멋있지 않았다. 처음 마주하는 상황에 당황하고, 실수하면서도 순간순간 최선을 다해 위기를 극복하는 두 콤비에게 어느덧 진심으로 응원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을 돕는다는 선행 역시 인간적으로 그려낸다. 숭고한 인간애를 비장하게 그려내기보단 다소 속물적이고 지질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잃지 않는 인간미를 현실적으로 그려내며 공감대를 높였다.
탄탄한 이야기 속에 배우들은 자신의 매력을 마음껏 뽐냈다. 조정석은 자신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전매특허 연기로 허세있고 지질하지만 멋있는 선배의 모습을 선보였고, 임윤아 역시 똑 부러지는 매력을 뽐냈다. 조정석에게 밀리지 않는 맨몸 액션을 선보이며 극 후반부를 이끌어 나갔다.
여기에 조연 군단 역시 탄탄하다. 용남의 어머니 역엔 고두심, 아버지 역인 박인환, 누나 역엔 김지영이 등장해 티격태격하지만 누구보다 따뜻한 우리네 가족의 모습을 보여줬다.
탁월한 볼거리와 시원시원한 스토리, 매력적인 캐릭터까지 이 모든 것은 신인 연출가 이상근 감독이 해냈다. 이상근 감독은 7년 동안이나 '엑시트'를 준비했다고 했다. 연출 데뷔를 하기 전까지 준비 기간엔 '백수'로 불리는 게 감독이다. 이상근 감독은 "집에서 설거지를 하고, 집에서 글을 썼던 제 모습이 용남에 반영됐다"고 소개했다.
'엑시트' 제작사 외유내강을 이끄는 류승완 감독의 '다찌마와리' 연출부를 거쳐 미쟝센 단편영화제 최우수 작품상 및 심사위원 특별상을 3회나 석권하며 실력을 인정받은 이상근 감독이 '엑시트'로 얼마나 많은 관객들을 만나게 될지 지켜볼 일이다. 31일 개봉. 러닝타임 103분. 12세 관람가.
김소연 한경닷컴 기자 sue123@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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