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일본의 한국 수출규제에 따른 국내 기업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대책 마련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대일의존도가 큰 소재부품 개발사업에 대한 전방위 지원에 나서는 동시에 일본의 추가 보복 등 장기전에 대비해 '상응 조치'를 적시에 꺼낼 수 있도록 대비하고 있다.
14일 관계 부처에 따르면 정부는 대미 외교전, 일본을 상대로 한 양자 협의, 제3자를 통한 진실규명 제안 등 외교적 해법을 적극적으로 모색해 국내에서도 예산·세제·행정절차 최소화 등 '가용자원'을 총동원해 대책을 마련 중이다.
먼저 정부는 국회에서 심의 중인 추가경정예산(추경)안에 일본 수출규제 대응을 위한 예산을 최대 3000억원 증액하기로 하고 이번 주 초 구체적인 사업 목록을 확정할 방침이다.
기재부는 지원 사업 목록과 증액 규모가 최종 확정되면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이를 제출하고 야당을 적극 설득할 계획이다. 불필요한 논란이 생기지 않도록 주요 소재·부품·장비의 상용화 지원, 기술개발을 중심으로 예산을 취합하고 있다.
기재부는 일본 수출규제 품목에 대한 세제 지원책도 준비 중이다.
일본의 규제 대상에 오른 3대 품목 중 고순도 불화수소(에칭가스)를 신성장동력·원천기술 연구·개발(R&D) 비용 세액공제 대상에 포함하는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추가 규제 품목들도 업계 건의가 있으면 적극 검토해 세액공제를 해줄 방침이다. 시스템 반도체 제조·설계 기술도 세액공제 대상에 추가하기로 했다.
신성장동력·원천기술 R&D 비용 세액공제는 대기업 20~30%, 중견기업 20~40%, 중소기업 30~40% 등 최고 수준의 세액공제율을 적용받는다.
아울러 정부는 소재부품 개발사업과 관련한 인허가가 필요할 경우 행정절차를 최대한 신속하게 진행할 방침이다. 관련 산업 육성을 위한 예산 투입에 앞서 진행되는 예비타당성조사(예타)를 생략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다.
이달 초 산업부와 과기부가 일본 수출규제에 대응해 반도체 소재를 비롯한 부품·장비 개발에 우선 예산사업으로 약 6조원을 투입하기로 했으나, 반도체 소재 1조원 투입을 제외하고 나머지 5조원 상당의 일반 소재·부품·장비 사업에 대해서는 예타가 진행 중이다.
정부는 화학물질 생산 규제 완화와 R&D 분야의 주52시간 근무제 특례(선택적 근로) 확대도 검토하고 있다.
일본이 한국의 백색국가 제외 강행 방침을 거듭 확인하면서 정부는 이번 사태가 반도체·디스플레이 업종뿐 아니라 전 산업으로 확산할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있다.
정부·여당은 추경예산 증액도 수출규제 3대 품목에 한정하지 않고 추가 규제가 예상되는 품목들에 대해 기술개발·상용화·양산단계 지원 예산을 포함하기로 했다. 대일의존도 상위 50개 과제에 대한 소재·부품 R&D 예산도 반영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일본이 한국을 백색 국가 명단에서 제외할 경우 해당 고시는 다음 달 20일을 전후해 발효될 전망이다. 이 경우 거의 모든 산업에서 한국에 대한 수출 절차가 대폭 까다로워지며, 우리 기업들이 입는 피해가 가시화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정부는 WTO 제소 방침 외에는 '상대가 있는 사안'이라며 전략 노출을 피하기 위해 말을 아껴왔지만 '추가 보복'이 이어질 경우에 구사할 '상응 조치'를 대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직접적 상응 조치로는 주요 품목의 대일 수출을 제한하거나 일본산 수입품에 높은 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또 일본처럼 한국의 백색 국가에서 일본을 제외하는 방안도 나온다. 한국의 백색 국가는 일본을 포함한 29개국이다.
다만 정부는 여전히 국제사회와의 공조를 통해 일본이 수입 규제 조치를 철회하도록 하는 데 최우선 방점을 두고 있다. 우리 정부의 맞대응이 양국 간 '경제 전면전'으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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