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부터 경제난·복지청구서 직면
외교·국방 구멍과 사회갈등도 숙제
인기없는 구조개혁 펼 결기 있어야
오형규 논설위원
[ 오형규 기자 ]
국정의 요체를 꼽는다면 단연 외교, 국방과 경제일 것이다. 나라의 존속과 국민 생존이 달린 문제들이어서다. 국가역량을 결집하고 대비하는 리더십과, 치열하고 부단히 노력하는 팔로십이 요구되는 공통점도 있다. 역사를 돌아봐도 외교·국방·경제가 흔들릴 때 어김없이 왜란·호란·망국 같은 국난을 겪었다.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가. 존재하는지 의구스런 외교, 구멍 뚫린 국방, 활력 잃은 경제 등 어디 하나 성한 곳이 없다. 위기가 아니라고 아무리 ‘정신승리’ 주문을 외워봐야 해결될 일도 아니다. 이런 난제들을 안고 출발할 차기 대통령은 그 자체로 ‘극한직업’이나 다름없다.
먼저 외교는 중국에 홀대받고, 미국에 의심받고, 북한에 무시당하고 끝내 일본한테도 아픈 곳을 얻어맞았다. 국민들은 일본의 보복조치에 공분을 느끼면서도 ‘왜 대비하지 못했는가’ 묻고 있다. ‘북핵 올인 외교’로 다른 문제를 소홀히 한 것은 아닌지, 최장집 고려대 교수의 지적처럼 ‘관제(官製) 민족주의’로 정치적 이익을 꾀하다 외통수를 자초한 것은 아닌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세계 12위 경제대국 위상에 걸맞은 ‘외교다운 외교’가 차기 대통령의 숙제다.
판문점 남·북·미 정상 만남을 두고 ‘평화가 왔다’고 단정하는 것도 조급하다. 주목할 이벤트임에는 분명하지만 이제 겨우 시작일 뿐, 평화와 번영의 필요충분조건이 될 수도 없다. 한 외교안보 전문가는 “미·북 협상을 지켜봐야겠지만 오히려 판문점 회동을 계기로 ‘북핵 동결론’이 힘을 얻을 가능성이 더 높아졌다”고 진단했다. 미국 조야에선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위협만 없다면 북핵의 존재가 한·중·일 3국 관리에 더 유리하다는 노골적인 시각도 있다.
국방은 ‘노크 귀순’만큼이나 황당한 ‘목선 귀순’으로 또다시 구멍을 드러냈다.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을 국방부가 축소와 변명에 급급한 모습이 볼썽사납다. 어쩌다 전투와 경계만 빼고 다 잘하는 군이 됐는지 국민은 궁금해 한다.
경제문제는 더 뿌리깊다. ‘L’자형 장기침체, 고령화와 인구감소, 주력산업 위기, 신산업 부진 등 구조적 난제가 차기 정부 앞에 놓일 것이다. 구조개혁을 미루고 미룬 대가다. 여기에다 현 정부가 벌여놓은 복지 퍼주기와 소득주도 성장의 청구서들도 속속 닥칠 것이다. 3년 세수호황이 끝나 ‘재정 확대=나랏빚 증가’로 치달을 판이다. 증세 없이 버틸 재간이 있을까 의문이다.
탈(脫)원전 충격에도 ‘전기료 인상은 없다’는 호언은 고스란히 차기 정부의 부담으로 전가될 수밖에 없다.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도 지금 추세면 다음 정부가 출범하는 2023년께 20조원의 적립금이 바닥날지 모른다. ‘국민 의료비를 절감했다’고 생색내는 정부에 대한 강석훈 성신여대 교수(전 경제수석)의 촌평이 흥미롭다. “모임에서 제일 기분 좋을 때가 주문은 내 맘대로 하고, 돈은 다른 사람이 내는 경우다.”
차기 대통령이 풀어야 할 난제는 이걸로 끝이 아니다. 이익집단들의 횡포와 사회갈등은 비등점을 넘어섰다. 어떤 집단이든 수천, 수만 명의 ‘덩어리’만 되면 정치권이 알아서 긴다. 특권과 진입장벽 등 지대(地代)를 보호해주는 입법도 서슴지 않는다. 노동정책은 소득상위 10%의 조직된 대기업·공공부문 노동자에 편향돼 있다. 이런 게 공정이고 정의인지 국민은 묻고 있다.
차기 대통령은 역대 어느 정부보다 인기 없고 힘겨운 싸움을 벌여야만 한다. 현 정부가 금기시한 노동개혁을 비롯해 경제·사회 전반의 구조개혁을 진정성 있게 추진할 용기와 결기가 필수덕목이다. 그래야만 청년 일자리도 생기고, 총체적 무기력증도 극복할 수 있다.
“나라가 한계를 느끼거나 정체돼 있다면 문제는 분명하다. 나라를 끌고 갈 꿈과 이상이 설정돼 있지 못하거나 설령 설정됐다 해도 현실적 요구와 일치하지 않는 것이다.”(최진석 《탁월한 사유의 시선》) 외환위기 교훈도 스스로 변하지 않으면 변화를 강제당한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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