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증여 책임져주는 '최후의 집사'…"2년 만에 수탁액 25배로"

입력 2019-07-04 17:26
수정 2019-07-05 01:43
여의도 어벤져스
(6) 신영증권 상속·증여신탁팀

분기마다 50~100%씩 성장
1위 KEB하나銀 연내 추월 가능성



[ 이호기 기자 ]
부산에서 전문직에 종사하던 A씨(41)는 지난해 말기 암 판정을 받았다. 남편과 사별하고 11살, 8살짜리 아이 둘을 혼자 키워온 그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도 애들 걱정이 앞섰다. 아파트 두 채를 비롯한 10억원가량의 재산을 놓고 친인척끼리 다툼이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었다. 고민하던 차에 주변 소개로 신영증권 영업점을 찾았다. 신영증권은 A씨의 전 재산을 신탁 계약으로 넘겨받고 자녀가 성인이 될 때까지 생활비 교육비 의료비 등을 직접 보호자 및 각 기관에 지급하는 방식으로 든든한 ‘재무 후견인’이 돼 주기로 했다. 남은 재산은 자녀가 각각 서른 살이 됐을 때 절반씩 넘겨줄 계획이다. 계약을 마친 A씨는 올해 초 마음 편히 눈감을 수 있었다.

유언대용신탁, 2년 만에 수탁액 25배↑

신영증권 신탁사업부는 서울 여의도 증권가에서 ‘최후의 집사’이자 ‘유가족의 수호천사’로 통한다. 신영증권은 그동안 은행권에서 주도해온 국내 유언대용 신탁 시장에 2017년 1월 첫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후 매 분기 50~100%씩 고속 성장하면서 지난 2분기 수탁액이 출시 대비 25배 규모로 커졌다. 이런 추세대로라면 국내 1위 사업자인 KEB하나은행(수탁액 약 3000억원)을 연내 넘어설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유언대용 신탁은 생전에 신탁 계약을 맺고 재산의 소유권을 이전하면 사망 후 위탁받은 금융기관이 고인의 유지에 따라 유족 등에게 분배, 관리해주는 금융서비스 상품이다. 자녀 간 상속 분쟁을 예방할 수 있고 일시금이 아닌 수십 년간 분할 지급받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설계할 수 있어 최근 고액자산가 사이에서 각광받고 있다. 국세청에 따르면 상속·증여 재산가액이 2012년 20조원에서 2017년 40조원으로 두 배 증가하는 등 시장 전망도 밝은 편이다.

변호사 세무사 등 6인의 ‘신탁 어벤져스’

팀을 이끌고 있는 오영표 이사(변호사·사법연수원 33기)는 2004년 연수원을 수료하고 곧바로 대우증권에 입사해 ‘증권 사내변호사 1세대’로 손꼽힌다. 대우증권과 현대차증권, 현대라이프생명보험 등을 거치며 주로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투자심사 업무에서 전문성을 쌓았다. 부동산 PF가 대부분 신탁을 통해 사업이 이뤄지는 데다 해당 사업장의 권리관계 분석이 핵심 업무다 보니 현 사업에 필요한 역량과 노하우를 축적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오 이사는 “2014년 4월 신영증권으로 옮긴 직후부터 동료 세무사 1명과 함께 유언대용 신탁 서비스 준비에 착수했다”며 “2년여간 준비 과정을 거쳐 2017년 1월 출시하자마자 폭발적인 반응이 나타났다”고 말했다. 현재 팀에서는 오 이사를 포함한 변호사 3명, 세무사 2명, 부동산 전문가 1명 등 총 6명의 전문가가 고객 상담과 신탁 설계 등을 전담하고 있다. 지난해 합류한 강성유 부장(변호사)은 “불법 행위를 제외하고 상상 가능한 모든 것을 계약으로 실현할 수 있다는 게 유언대용 신탁의 최대 매력”이라며 “일선 영업점 직원이나 고객들도 이 같은 설계 능력에 감탄해 우리 팀을 ‘신탁 어벤져스’라고 부르기도 한다”고 전했다.

은행보다 다양한 설계…수익률도 강점

고객의 연령이나 재산, 신탁 목적 등도 각양각색이다. 세계 오지를 다니며 죽을뻔한 위기를 수차례 넘긴 40대 무역회사 대표, 치매 초기 진단을 받아 더 늦기 전에 전 재산을 맡긴 70대 홀몸노인, 자신이 죽은 뒤 유니세프(유엔아동기금·UNICEF)에 10억원 상당의 상가 빌딩을 기부해달라는 50대 독신 남성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오 이사는 “최소 가입 금액은 10억원이지만 상담 결과 반드시 신탁이 필요하거나 공익적 가치가 높다고 판단되면 그보다 재산이 적더라도 계약을 체결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탁 수수료는 △상담 및 최초 설정(재산가액의 일정비율) △자산 운용·관리(매년 부과) △계약 집행(회당 부과) 등이지만 고객과 협의해 결정하고 있다.

은행권에 비해 다양한 설계가 가능하다는 게 증권사 신탁의 장점이라고 오 이사는 강조했다. 자녀에게 원금이 아니라 이자·배당 등 이익만 증여하는 이익증여신탁, 노후 생활비로 쓰고 남은 재산을 복지단체 등에 기부하는 유산기부신탁, 자녀의 창업자금 목적으로만 지급할 수 있는 창업자금지원신탁 등이 대표적이다.

신탁 재산 운용에서도 은행보다 유리하다는 게 오 이사의 주장이다. 오 이사는 “은행 신탁에서는 사실상 불가능한 은행 간 예금금리 비교나 실시간 주식매매 등이 가능하다”면서 “신탁 재산의 규모가 작지 않은 만큼 이를 활용해 얻을 수 있는 추가 수익도 만만치 않다”고 했다.

이호기 기자 hgle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