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멸종 연대기
피터 브래넌 지음 / 김미선 옮김
흐름출판 / 448쪽 / 2만2000원
[ 서화동 기자 ]
2017년부터 미국이 천연가스 순수출국이 된 건 셰일가스혁명 덕분이다. 수압파쇄(hydraulic fracturing)라는 기술적 돌파구가 엄청나게 매장돼 있던 탄화수소 창고의 자물쇠를 열면서 미국 전역에 수천 개의 가스정이 뚫렸다. 그 덕분에 미국은 세계 최상위 가스 생산국 중 정상에 올랐고, 세계 에너지 시장의 판도마저 바꿔놨다.
미국의 과학전문 저널리스트 피터 브래넌은 《대멸종 연대기》에서 미국이 누리게 된 이 천연가스의 풍부함에 대해 “고생대 데본기 후기의 대멸종에 감사하면 된다”고 말한다. 지질연대상 데본기는 4억2000만 년 전에 시작돼 6000만 년 뒤 어마어마한 재난 속에서 끝났다. ‘물고기 없는 바다’이던 이전의 오르도비스기와 달리 데본기는 ‘어류의 시대’였다. 지구 전체에 웅장한 생물초를 중심으로 물고기 포식자와 물고기 먹잇감이 가득했다.
그러나 데본기 후기에 두 차례의 대멸종을 겪으면서 생명체의 75%가 멸종됐다. 첫 번째 치명타는 3억7400만 년 전에 가해져 방대한 생물초의 99%를 파괴했다. 777만㎢를 넘는 면적에 펼쳐져 있던 생물초의 유해가 캐나다와 미국 호주 등의 석유, 천연가스층이 됐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3억5900만 년 전 빙하기가 결정타였다. 바다의 거대생물을 비롯한 최상위 포식자들을 절멸시켰다.
《대멸종 연대기》는 고생대 이후 지금까지 지구상에서 펼쳐진 다섯 차례의 대멸종이 언제, 왜, 어떻게 일어났는지 살펴보면서 지구 온난화로 인해 불길한 예감을 날로 더해가는 여섯 번째 대멸종의 경각심을 일깨운다. 저자는 고생물학자 지질학자 등 각계 전문가들을 찾아다니며 조언을 구하고 화석과 지층이 있는 현장을 답사하며 누가 대멸종의 범인인지 추적한다. 고금을 오가는 이야기의 직조 방식이며 탁월한 묘사력이 과학은 어렵다는 선입견을 일찌감치 물리친다.
대멸종은 보통 지구의 종 가운데 절반 이상이 약 100만 년 이내에 멸종하는 사건으로 정의된다. 지구상의 생명체가 겪은 다섯 번의 대멸종은 고생대 오르도비스기 말(4억4500만 년 전), 데본기 후기, 페름기 말(2억5200만 년 전), 중생대 트라이아스기 말(2억100만 년 전), 백악기 말(6600만 년 전)에 일어났다.
오르도비스기는 생물 다양성이 팽창한 시기였다. 고생대 오징어인 거대 앵무조개 같은 두족류를 포함한 무척추동물이 번성했고 삼엽충, 완족류, 필석류 등 다양한 생물이 풍부했다. 그러나 빙하기 도래로 인한 해수면 하강, 육상식물이 이산화탄소를 빨아들이면서 초래한 냉각화와 먹이사슬 붕괴 등으로 생명체의 86%가 멸종됐다. 데본기의 대멸종은 식물의 확산과 그에 따른 방대한 이산화탄소, 부영양화로 인한 적조현상과 산소 결핍, 급격한 기온 하강과 빙하작용 등 다양한 요인으로 초래된 것으로 저자는 추정한다.
페름기 말에는 시베리아가 뒤집어지고 대기는 화산 가스로 덮인다. 이산화탄소 방출 속도가 빨라지면서 풍화작용이 증가하고 바다가 산성화하면서 따뜻해지기 시작했다. 숲을 파괴하는 산성비가 내리고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아지면서 지구 온난화가 심해지면서 결국 96%의 종이 사라지는 사상 최악의 대멸종을 겪는다.
트라이아스기 말기에는 초대륙 판게아가 분열하면서 전지구적 규모의 화산 폭발이 일어나고 가스가 방출되면서 이산화탄소가 급증하고 기후 변화를 초래했다. 백악기는 공룡들의 전성기였다. 그러나 거대한 소행성 충돌과 대규모 화산활동으로 조류를 제외한 모든 공룡과 해양 파충류, 암모나이트 등이 전멸했다.
시기별로 대멸종을 초래한 원인은 다양하다. 저자가 주목하는 것은 이산화탄소다. 지구가 경험한 다섯 번의 대멸종은 한결같이 기후 변화와 관련이 있으며 그 중심에는 이산화탄소가 있다는 것이다. 화산활동이 이산화탄소를 급증시키거나, 식물의 번성이 이산화탄소를 급감시켰을 때 기후가 급격히 변화하고 멸종 사태를 부른다는 설명이다.
석탄 석유 셰일가스 등 인류가 편리한 생활을 위해 사용하고 있는 연료는 이에 따른 결과물인데 이것이 또다시 이산화탄소를 증가시켜 지구 온난화와 기후 변화를 초래한다. 현대 인류가 지구 환경에 치명적 영향을 미쳐 지질의 대변동을 초래한다는 의미에서 현세를 ‘인류세’라고 부르자고 한 네덜란드의 노벨화학상 수상자 파울 크뤼천의 제안에 동의하는 사람이 급증하는 이유다.
그렇다면 대멸종은 필연적인가. 저자는 “인류에게는 아직 시간이 있다”고 낙관의 끈을 놓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태곳적 생명체가 수억 년에 걸쳐 묻어둔 탄소를 파내서 한꺼번에 불태우는 인간의 행위를 “현대문명의 방만한 물질대사”라고 엄중히 경고한다. “기후나 해양의 화학적 성질이 갑작스레 변화했을 때 그 결과는 생명체에 통렬했다. 최악의 시기마다 지구는 이런 기후 발작으로 거의 폐허가 됐다. 치명적으로 뜨거운 내륙, 산성화하는 무산소 해양, 떼죽음이 행성 위를 휩쓸었기 때문이다.”
서화동 문화선임기자 fire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