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료비를 줄여라"…글로벌 해운사에 '특명'이 떨어졌다

입력 2019-07-02 17:57
수정 2019-07-03 02:06
연료비 뛰어 수익성 악화

현대상선, 작년 연료비 7386억
세계 1위 머스크는 6조 육박


[ 김재후 기자 ] 7386억4400만원. 한국의 유일한 컨테이너 해운사인 현대상선이 지난 한 해 동안 쓴 연료비다. ‘맛동산’으로 유명한 해태제과의 지난해 전체 매출(7064억원)을 웃돈다. 글로벌 1위 해운사인 머스크의 지난해 연료비는 6조원에 육박(5조8319억원)했고, 현대상선이 속한 글로벌 해운동맹 디얼라이언스의 주축인 독일 하팍로이드사(社)는 2조1432억원에 달했다. 해운사들이 연료비 절감에 온 역량을 집중하는 이유다.


‘빠르게’에서 ‘한 번에 많이’로

2일 해운업계에 따르면 현대상선은 내년 2분기부터 주력으로 운영 중인 컨테이너선(5000~7000TEU급)보다 3~4배 더 큰 2만3000TEU(1TEU는 20피트짜리 컨테이너 1개)급 선박 12척과 1만5000TEU급 선박 8척을 차례로 들여온다. 대만의 에버그린과 독일 하팍로이드 등 다른 외국 해운사들도 2만3000TEU급 선박을 각각 9척, 6척 발주할 것으로 알려졌다.

해운사들이 대형 선박 보유를 늘리는 건 연료비 등 경제성 때문이다. 국제 유가가 상대적으로 저렴한 시절엔 빨리 배송하는 게 최우선이었지만, 최근 몇 년 새 국제 유가가 큰 폭으로 뛰면서 속도 대신 일괄 대량 배송으로 전략을 바꿨다.

해운회사 관계자는 “승용차의 경제 속도가 시속 60~70㎞인 것처럼 컨테이너선의 최고 연비 속도는 16노트(시속 29㎞)”라며 “시간이 더 걸리더라도 천천히 가며 유류비를 줄이는 게 이득인 상황”이라고 했다. 2000년대 제작된 선박들은 최고 27노트(시속 50㎞)까지 속도를 낼 수 있지만 현재는 연비를 감안해 평균 16노트로 운행하고 있다.

구매·운항·관리팀이 주유 지역도 계산

해운사들은 연료비를 아끼기 위해 선박의 주유량과 운항 노선까지 고려해 주유 지역을 정하고 있다. 1만3000TEU급 컨테이너선은 연료인 벙커C유를 가득 채우면 1만2000t까지 들어가지만 이 무게도 연비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최대 85%까지만 채우는 걸 산정해 주유 지역을 고른다. 현대상선은 운항 노선상에서 85%만 채워 갈 수 있는 지역 가운데 벙커C유 가격이 가장 싼 싱가포르와 미국 캘리포니아, 네덜란드 로테르담 등에서 연료의 80%를 넣고 있다.

이와 함께 선박이 이동 중에도 본사는 운항 노선의 날씨·해류 등을 분석해 연료 소모를 최소화할 수 있는 최적 항로를 구해 선박에 전달한다. 새로운 선박을 발주할 때는 연료 절감형 설계를 요구하는 등 선박 건조 단계에서부터 연료비를 줄이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과거에는 선박의 선수가 파도 영향을 최소화하며 빠르게 이동할 수 있도록 옆에서 보면 아래가 콜라 모양으로 잘록했다. 하지만 요즘은 칼날처럼 날카롭게 직선으로 떨어진 모양으로 바뀌었다. 이렇게 하면 30% 정도 연료비를 아낄 수 있다는 설명이다.

6개월 뒤 환경 규제에도 대응해야

연료비 절감은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국제해사기구(IMO)는 내년부터 공해상에서 황산화물 함유량이 0.5% 이하인 저유황유를 의무화하는 환경규제를 시행한다. 이렇게 되면 해운회사들은 황산화물 함유량이 3.5%에 달하는 벙커C유보다 50% 비싼 저유황유로 운행해야 한다.

현대상선은 배기가스에서 유황을 걸러주는 장치인 스크러버를 설치하는 쪽으로 대응에 나섰다. 연료비를 줄이지 않고도 설치 비용으로 환경 규제에 대응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현대상선은 88척의 선박 중 70척에 스크러버를 설치했다. 내년부터 인도받을 20척의 초대형 컨테이너선에도 스크러버를 탑재할 계획이다.

김재후 기자 h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