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이름을 불러줄 때

입력 2019-07-01 18:21
수정 2019-07-11 11:02
[ 오형규 기자 ] 2015년 6월 25일 미국 워싱턴DC의 한국전 참전용사 기념공원에서 엄숙한 행사가 열렸다. 한국전참전용사기념재단(KWVMF) 주관으로 6·25전쟁의 미군 전사자 이름을 일일이 부른 것이다. 전사자 3만6574명을 호명하는 데 사흘이 걸렸다. 이듬해 미8군 한국군지원단(카투사) 전사자 7052명, 2017년 유엔군 전사자 3300명, 지난해에는 실종자 7704명의 이름을 알파벳 순으로 불러줬다.

올해는 국립대전현충원이 그 뜻을 이어받았다. 현충일 주간에 엿새간 전사자 4만5000여 명을 한 명씩 부르는 행사를 열었다. 유가족, 참배객과 어린 학생들까지 차례로 전사자 명부의 이름을 부르며 “당신을 잊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사람은 태어나면서 이름을 갖는다. 이름은 개인의 정체성이자 소통과 존중의 시작이다. 타인의 이름을 부르는 건 사람만이 할 수 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김춘수 ‘꽃’)는 시구가 그런 의미일 것이다.

이탈리아 출신 원선오 신부는 광주 살레시오고 교장 시절 아침마다 교문에 나와 전교생 이름을 한 명씩 불러준 것으로 유명하다. 번호나 ‘야!’로 불리던 학생들도 이름을 불러주면 행동거지가 달라진다고 한다. 대구가톨릭대는 매년 졸업식 뒤 단과대별로 졸업생 약 3000명의 이름을 일일이 불러준다. 축하하고 기억하고 응원한다는 의미다.

몇 해 전 ‘천안함 46+1 용사’ 추모식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비를 맞아가며 한 명씩 호명해 숙연케 했다. 지난해 평창 장애인올림픽 선수단 해단식 때는 도종환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선수들을 한 명씩 부르며 눈시울을 붉혔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이름 불러주기의 효과를 새삼 일깨웠다. 그는 한국 기업인들과의 간담회에서 일일이 호명하며 미국 내 투자에 감사를 표하고 ‘비즈니스 천재(genius)’라고 추켜세웠다. 직접 압박하지 않고도 ‘넛지(nudge)’로 충분히 메시지를 전한 것이다. 그는 오산기지에서도 양국 장병들의 이름과 직책을 부르며 격려해 박수를 받았다.

사람은 자신의 이름을 기억하고 불러주는 이에게 호감을 느낀다. 집단 속 원자(原子)같은 익명성은 고유명사로 불릴 때 정체성으로 바뀐다. “좋은 연설은 연사를 돋보이게 하지만 위대한 연설은 청중의 자부심을 북돋운다”고 했다. 이런 게 ‘리더의 언어’가 아닐까.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