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싣고 달리는 '클래식 기차'…3년새 3만 관객 즐겼다

입력 2019-07-01 17:56
수정 2019-07-02 03:36
광주 '한경필 청소년음악회' 성황


[ 윤정현 기자 ] “셰익스피어 아시죠? 그럼 셰익스피어의 4대 비극은 어떤 작품인지 얘기해볼 수 있나요?” 무대에 오른 홍석원 한경필하모닉오케스트라(한경필) 음악감독이 질문을 던졌다. 객석에서 ‘햄릿’부터 ‘리어왕’ ‘맥베스’에 이어 ‘오셀로’까지 차례로 답이 나왔다. “그런데 셰익스피어가 희극도 썼어요. 그중 하나가 ‘한여름 밤의 꿈’인데요. 그 작품을 보고 작곡가 멘델스존이 곡을 썼습니다. 극을 어떻게 음악으로 표현했는지 한번 들어볼까요.”


지난달 28일 광주 구동 빛고을시민문화회관. 학생들의 재잘거림으로 가득 찼던 700여 석의 객석은 숨을 죽였다. 플루트와 오보에가 그리는 고요한 숲에서 요정들의 장난은 바이올린의 연주로 펼쳐졌다. “200년 전에 살았던 멘델스존이 여러분과 비슷한 나이인 17세에 쓴 곡”이라는 설명이 학생들을 더 몰입하게 했다. 서곡에서 시작해 스케르초, 녹턴에 이어 “언젠가 여러분이 설 결혼식장에서 오늘을 기억해줬으면 한다”는 멘트와 함께 귀에 익은 결혼행진곡까지 연주가 끝나자 객석에선 박수와 환호가 쏟아졌다.

홍 감독의 해설로 진행된 이날 한경필 청소년음악회는 다른 어떤 무대보다 생기가 넘쳤다. 아름다운 클래식 선율에 학생들은 즉각적으로 반응했고 공연장엔 활기가 넘쳤다.

현대차 정몽구 재단의 ‘온드림 문화사랑의 날’ 프로그램으로 열리는 한경필 청소년음악회는 클래식 공연을 직접 볼 기회가 적은 지역의 청소년들을 무료로 초청해 해설과 함께 오케스트라의 연주를 들려준다. 수도권에 치우쳐 있는 문화예술 향유 기회를 지방으로 넓혀가기 위해 마련한 무대다.

한경필은 2017년부터 연간 10회 이상 청소년음악회를 전국 곳곳에서 선보이고 있다. 2017년엔 전북 남원·군산·정읍, 경남 거창 등 12개 지역, 지난해는 전남 순천과 충남 천안, 충북 옥천, 전북 전주 등 10개 지역에서 공연을 펼쳤다. 올 들어선 경남 함양, 경기 이천, 인천 등을 방문했다. 인천에선 음악중점학교인 인천여중 학생들이 단체로 공연장을 찾아 관심을 보였다. 지난해 한경필 청소년음악회 누적 관객이 2만 명을 넘었고, 올해 3만 명을 넘어설 전망이다. 조동균 한경필 사무국장은 “각 지역 교육지원청과 함께 공연 프로그램과 작곡가에 대한 자료를 배부하고 관람 후엔 수기 감상문을 공모하는 행사도 연다”고 말했다.

현대차 정몽구 재단이 후원하는 클래식 전공 장학생으로 구성된 ‘온드림 앙상블’ 멤버들은 한경필 청소년음악회를 통한 예술 나눔도 하고 있다. 이날도 서울대 성악과에 재학 중인 바리톤 김건이 오페라 ‘피가로의 결혼’ ‘돈 카를로’의 아리아, 한국예술종합학교 학생인 피아니스트 선율이 프로코피예프 피아노협주곡 3번 1악장을 한경필과 함께 들려줬다.

음악회에 참석한 광주여상 2학년 김다영 양(17)은 “결혼행진곡으로만 알고 있던 멘델스존의 ‘한여름 밤의 꿈’이 새롭게 다가왔다”며 “공연장에서 직접 들으니 가끔 음원으로 찾아 듣던 것과는 전혀 다른 느낌”이라고 말했다. 이날 학생들과 함께 공연장을 찾은 김홍록 광주여상 교장은 “각기 다른 소리를 내면서 조화를 이뤄내는 오케스트라를 보면서 학생들이 생각한 바가 있을 것”이라며 “늘 학교와 집만 오가는 아이들이 오늘처럼 감성 충전을 할 기회가 많아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경필은 이달 강원 횡성, 전남 강진, 강원 춘천을 포함해 올 하반기 10개 지역에서 청소년음악회를 이어간다. 지역 청소년들에게 클래식 음악을 접할 기회를 주고 싶은 교사나 학부모는 한경필 사무국으로 연락하면 된다. 박형배 현대차 정몽구 재단 사무총장은 “이미 다녀온 많은 지역에서도 공연을 다시 해 달라는 요청이 있다”며 “소외 계층에 꿈과 희망의 사다리를 놓고 문화 저변을 확대해 나간다는 재단의 뜻을 따라 새로운 지역을 우선으로 해서 일정을 협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광주=윤정현 기자 hit@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