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건보료 인상 불발…벽에 부딪힌 '문재인케어'

입력 2019-06-28 17:35
수정 2019-06-29 00:56
보험료율 3.49% 인상 정부안
경영·노동계 가입자단체 반대


[ 서민준 기자 ]
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문재인 케어)를 위해 내년 건강보험 보험료율을 3.49% 올리려던 정부 계획이 노동계와 경영계 등 가입자 단체 반발에 무산됐다. 문재인 케어가 시행 2년도 안 돼 난항에 부딪혔다. 보건복지부는 28일 제13차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를 열고 내년 건보 보험료율을 결정하려 했으나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건정심에서 보험료율 결정이 불발한 것은 처음이다. 복지부는 하반기에 논의를 이어갈 계획이다.

가입자 단체들은 이날 회의에서 일제히 정부의 보험료율 3.49% 인상안에 반대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한국노동조합총연맹, 한국경영자총협회, 중소기업중앙회, 한국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 한국YWCA연합회, 한국외식업중앙회, 한국환자단체연합회 등 노동자와 사용자, 환자단체 등 건정심에 참여하는 8개 단체 대표가 뜻을 같이했다.

건보료는 올해 3.49% 인상됐다. 2011년(5.90%) 후 8년 만에 가장 큰 인상폭이었다. 정부는 ‘모든 의료 서비스에 건강보험을 적용하자’는 문재인 케어를 추진하려면 더 많은 재원이 필요하고, 이 때문에 2023년까지 보험료율 인상률이 연평균 3.20%는 돼야 한다고 주장해왔다. 이에 따라 내년 인상률도 올해와 같은 3.49%를 제시했다.

하지만 2년 연속 3%대 중반의 인상률은 부담스럽다는 의견이 강했다. 가입자 단체는 특히 “건보료율을 올리기에 앞서 국고 지원금을 제대로 지원하라”고 주장했다.

"이미 건보료 많이 올랐는데…또 국민에 부담 전가"

정부는 건강보험법과 건강진증법에 따라 건강보험료 예상 수입액의 20%에 해당하는 금액을 건보 기금에 지원해야 한다. 14%는 일반회계(국고), 6%는 담뱃세(담배부담금)로 조성한 건강증진기금에서다. 하지만 이런 규정을 제대로 지킨 적은 없었다.

윤소하 정의당 의원에 따르면 2007~2019년 국고 지원율은 연평균 15.3%에 그쳤다. 올해 지원율도 13.6%다. 가입자 단체 대표들은 이날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건정심) 회의에서 “2007년 이후 미납된 국고지원금은 24조5000억원에 이르는데 정부는 건보 보장성 강화 정책으로 생색만 내고 부담은 국민에게 전가하고 있다”며 “올해 미지급금을 정산하지 않는다면 보험료율 인상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주장했다.

보건업계의 한 관계자는 “그동안 누적됐던 불만이 터진 것”이라고 진단했다. 건강보험 보장성이 확대되면 혜택도 늘어나지만 매년 3%가 넘는 건보료 인상률은 부담스럽다는 불만이 현실화했다는 것이다. 건보료는 올해도 3.49% 올라 직장인들은 월평균 3700원 정도 부담이 늘었다. 여기에 정부가 국고지원금 현실화를 계속 외면하면서 ‘보험료율 결정 불발’이란 사태에까지 이르렀다는 분석이다. 기획재정부는 내년에도 건보 국고지원율을 15% 이상으로 늘리는 데 난색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는 보험료율이 정부 계획대로 오르지 않으면 건보의 보장성을 확대하는 ‘문재인 케어’ 자체가 흔들린다는 점이다. 건보 재정은 2017년 8월부터 시행한 문재인 케어 영향에 지난해 8년 만에 당기수지 적자(-1778억원)를 기록했다. 적자는 앞으로도 계속돼 현재 20조원 수준인 건보 기금 적립금이 2023년 11조원으로 반토막 날 전망이다. 보험료율 인상률이 3%를 밑돌면 기금 소진 속도는 더 빨라질 수밖에 없다.

이날 건정심에선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가로 병원 등에 지급하는 수가(요양급여비용) 인상률이 평균 2.29%로 정해졌다. 수가 인상으로 추가 소요 재정은 1조478억원으로 추산된다.

제1차 건강보험종합계획의 47개 세부과제 추진 내용도 확정됐다. 복지부는 민간 의료보험(실손보험) 인하 방안을 오는 9월까지 마련하기로 했다. 건강보험 보장성이 강화된 만큼 실손보험이 반사이익을 누리기 때문에 보험료 인상을 억제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20~30년 뒤를 내다보는 중장기 건보 재정 전망도 시행하기로 했다. 고령화 영향으로 건보 지출이 급속히 불어나고 있지만 정부 차원의 중장기 전망은 없어 문제라는 지적을 받아들인 것이다. 연내 전망 모델을 개발해 내년 전망 결과를 발표하는 것이 목표다.

서민준 기자 morand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