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호의 데스크 시각] 제조업 르네상스는 누가 하나

입력 2019-06-24 00:26
이건호 산업부장


[ 이건호 기자 ] “대관업무와 노동 환경이 가장 낯설다.”

해외에서 오랫동안 근무하다 한국으로 돌아온 한 기업인의 얘기다. 한국 기업에 복귀한 소회를 들려달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 해외에선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정부의 각종 규제와 노동계로 ‘기울어진’ 노사관계를 빗댄 지적이었다. 그는 “기업하기 좋은 환경으로 따지면 한국은 경쟁력이 없다”고 잘라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9일 “제조업 부흥을 통해 2030년까지 소득 4만달러, 수출 세계 4위 시대를 열겠다”고 선언했다. 제조업 르네상스 전략이다. 정부는 시스템 반도체, 바이오헬스, 미래 자동차 등 3대 핵심 분야를 차세대 제조업으로 키운다는 방침이다.

제조업 부활은 기업에 달려

말을 아끼고 있지만 기업들의 속내는 착잡하다. 지금 상태라면 제조업 르네상스 선언이 공염불에 그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새롭게 창업한다는 각오로 도전해야 한다”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말처럼 절박한 심정으로 뛰어도 달성을 장담하기 어려운 목표다. 2030년까지 시스템 반도체 분야 세계 1위를 달성하겠다는 비전을 내놓은 삼성전자는 점점 ‘만신창이’가 되고 있다. 2년 넘게 검찰 수사를 받으면서다. 확인되지 않은 각종 의혹이 무분별하게 제기되면서 비리의 온상처럼 비치고 있다. “저런 상태에서 어떻게 정상적인 경영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반응이 나올 정도다.

바이오헬스 분야에서 큰 축을 맡아야 할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코오롱생명과학은 분식회계 및 증거 인멸, 인보사 성분 은폐 의혹으로 ‘십자포화’를 맞아 ‘그로기’ 상태다. 회계처리 논란으로 촉발된 검찰의 삼성바이오 수사는 증거 인멸 조사과정을 거쳐 이제서야 본격적인 회계 의혹 수사로 이어지고 있다. 앞으로 남은 검찰 수사와 재판이 언제 끝날지 기약하기조차 힘들다. 세계 최초의 골관절염 세포 유전자 치료제인 인보사의 성분 논란으로 코오롱은 최악의 위기에 내몰렸다. 삼성바이오 사건처럼 팩트(사실)보다 확인되지 않은 의혹이 더 많이 쏟아졌다. 국내 줄기세포 및 동물복제 연구를 크게 후퇴시킨 ‘제2의 황우석 사태’가 우려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정책·노동 리스크 제거해야

미래차 분야도 만만치 않다. 정부가 수소전기차와 관련한 규제를 풀겠다고 공언했지만 선진국에 비하면 ‘한참 멀었다’는 게 업계의 하소연이다. 세계 최초로 수소차 상용화에 성공한 현대·기아자동차는 미국, 중국에서의 판매 부진에 통상임금 소송, 일부 근로자의 최저임금 미달 사태, 노조의 무리한 임금·성과급 지급 요구 등 ‘노동 리스크(위험)’에 가장 많이 노출돼 있는 기업이다. 미래차 투자를 위한 인력 및 조직 재편을 놓고서도 노조와 첨예하게 맞서고 있다.

“더 이상 한국에 공장을 짓기 힘들다”는 얘기는 기업인 사이에서 공공연한 비밀이다. 웬만한 대기업 생산직 근로자의 평균 연봉은 1억원에 가깝다. 생산성이 떨어지는데, 강성 노조의 목소리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기업들이 베트남 태국 필리핀 말레이시아 등지로 빠져나갈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런 와중에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과 준비 안된 주 52시간제 강행은 ‘울고 싶은데 뺨 때린 격’이 됐다. 지난 19일 ‘대구 스케일업 콘퍼런스 2019’에서 만난 한 기업인은 “40년 넘게 제조업을 해왔는데 지금처럼 어려운 적이 없었다”고 토로했다. “시간이 갈수록 좋아져야 하는데 희망이 안 보이니 문제”라는 이 기업인의 말이 예사롭지 않게 들렸다.

leek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