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향기
채지형의 구석구석 아시아 (8) 인도 우다이푸르
“라자스탄과 잘 어울릴 것 같아.”
파키스탄에서 만난 친구는 대뜸 이렇게 말했다. 인도에 발을 디뎌본 적이 없었던 터라, 눈이 번쩍 뜨였다. 인도를 여행한다면, 라자스탄에 먼저 가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친구의 예상은 적중했다. 형형색색의 라자스탄은 인도에 푹 빠지게 하기 충분했다. 라자스탄의 아름다운 도시 중에서도 우다이푸르(Udaipur)는 더 특별했다. 치열한 다른 도시와 달리 여유와 낭만이 가득 차 있었다. 도시 분위기는 명랑했다. 좁디좁은 골목에는 세밀화를 비롯한 아기자기한 작품들이 가득 했고, 도시 중심에는 거울처럼 맑은 피촐라 호수가 펼쳐져 있었다. 호수 위에 떠 있는 레이크 팰리스는 한 폭의 동양화를 보는 듯했다. 한번 여행하고 나면 반하지 않을 수 없는 도시가 우다이푸르였다.
이샤 암바니의 결혼식이 열린 도시
우다이푸르는 인도 현지인들도 ‘로망’으로 생각하는 여행지다. 2018년 12월 글로벌 뉴스를 장식한 인도판 ‘세기의 결혼식’을 보면 알 수 있다. 인도 최고 재벌 릴라이언스그룹 무케시 암바니 회장의 딸 이샤 암바니의 결혼식이 우다이푸르에서 시작했다. 전세기 100대가 동원되고 1억달러 비용이 들어간 결혼식에 힐러리와 비욘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참석해 세계의 이목이 우다이푸르에 쏠리기도 했다.
인도 지명 중 ‘푸르’는 도시를 나타낸다. 힌두교권이라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우다이푸르가 있는 라자스탄주는 인도 서쪽에 있다. 화려함으로 유명한 라자스탄주는 도시마다 특별한 색을 가지고 있다. ‘핑크 시티’로 불리는 자이푸르는 분홍색을, 온통 푸른색으로 치장한 조드푸르는 파란색을, 금빛 찬란한 자이살메르는 황금색을 품고 있다. 우다이푸르는 순수를 상징하는 하얀색으로 뒤덮여 있다.
그래서 우다이푸르를 떠올리면 하얀색이 떠오른다. 하얀색과 우다이푸르를 상징하는 아이콘은 호수다. 동화 속 한 장면처럼 호수 위에 새하얀 궁전이 두둥실 떠 있는 레이크 팰리스(Lake Palace)가 우다이푸르의 대표 명소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우다이푸르는 ‘호수의 도시’라는 별명도 가지고 있다. 호수에 비친 레이크 팰리스는 낮에 봐도 아름답지만, 이른 아침과 해가 뉘엿뉘엿 질 때면 더욱 멋지게 변신한다. 아침에는 오렌지빛이 올라와 찬란한 금빛이 주변을 감싸고, 밤에는 노을이 지면서 분홍색 세상이 레이크 팰리스 주변으로 펼쳐져 잊지 못할 시간을 선물한다.
호수 위 두둥실 떠 있는 궁전, 레이크 팰리스
레이크 팰리스는 1754년 인도 메와르 왕조의 여름 궁전으로 지어졌다. 왕과 왕족들이 나랏일을 보다 날이 더우면, 이곳에 와서 유유자적한 시간을 보냈을 것이다. 그때는 아무나 들어갈 수 없는 궁전이었지만, 지금은 호텔로 바뀌어 마음만 먹으면 누구나 궁전에서 자보는 호사를 누릴 수 있다. 영국 엘리자베스 여왕과 재클린 오나시스를 비롯해 여러 유명인사도 이곳에 머물렀다. 꽤 오래전이기는 하지만 1983년 제임스 본드의 007시리즈 ‘옥터퍼시’도 촬영했다. 누구라도 한 번쯤 묵어보고 싶은 로망을 품는 호텔이지만, 워낙 고가인 데다 예약이 밀려 막상 머물기는 쉽지 않다.
호수에서 우다이푸르 시내를 바라볼 수 있는 또 다른 섬이 있다. 피촐라 호수에 있는 두 개의 섬 중 하나인 작 만디르 섬이다. 무굴 황제 샤자한이 아버지 자항기르를 피해 도망 온 장소로도 유명하다. 섬에는 샤자한이 머물렀던 궁전이 남아 있다. 레스토랑도 문을 열고 있어, 옥상에 앉아 차 한잔 즐기기 좋다. 호수 안에서 바라보는 우다이푸르 정경 또한 낭만적이다. 유유자적 시간을 보내기 이보다 더 좋을 수 없다.
호수에 레이크 팰리스가 있다면, 땅에는 시티 팰리스(City Palace)가 있다. 시티 팰리스는 우다이푸르를 대표하는 또 다른 명소로, 라자스탄에서 가장 큰 궁전으로 꼽힌다. 규모뿐만 아니라 인도 건축의 정교함과 인도 예술의 화려함에서도 손꼽히는 궁전이다. 우다이푸르를 건설한 우다이 싱 2세가 처음 건축했는데, 이후 수많은 마하라자(왕)들이 궁전에 장식과 공간을 더했다. 고풍스러운 타일과 세밀한 유리 세공, 옛 흔적을 더듬을 수 있는 그림이 궁전을 꽉 채우고 있다. 화강암과 대리석만으로 지은 건물 자체도 작품이다. 현재 중심이 되는 궁전은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어, 여행자들도 우다이푸르의 찬란한 시대를 만날 수 있다.
그래서 시티 팰리스에 갈 때는 시간 여유를 두고 가는 게 좋다. 수많은 전시실 하나하나가 개성이 넘쳐, 발걸음을 더디게 하기 때문이다. 페르시아풍으로 꾸민 치니마할(Chini Mahal)과 반짝반짝 빛나는 거울로 치장된 모티마할(Moti Mahal), 화려함을 자랑하는 모자이크 공작을 볼 수 있는 모르촉(Mor Chowk)은 꼭 챙겨봐야 한다. 카메라 셔터가 쉴 새 없이 움직일 정도로 기억하고 싶은 공간이 많다. 세밀화에 관심이 많다면, 라자스탄 세밀화를 한눈에 볼 수 있는 크리슈나 빌라스(Krishna Vilas)도 들러보자. 시티 팰리스를 보고 나면, 보물창고를 구경하고 온 듯한 기분이 든다.
힌두교 사원 한 바퀴
시티 팰리스 옆에는 작디시 만디르(Jagdish Mandir)라는 힌두교 사원이 자리하고 있다. 1651년 자갓 싱이 지은 곳으로, 자간나트(Jaganath) 신을 섬기는 사원이다. 자간나트는 인도 원주민인 드라비디언 지역 인종의 토속 신으로 검은색 얼굴을 하고 있다. 사원 입구에는 거대한 코끼리 석상이 서 있고, 안으로 들어가면 비슈누와 가네샤, 시바 신을 비롯한 여러 힌두 신을 모시고 있는 공간이 나타난다. 힌두교 신자가 아니더라도 사원에 들어갈 수 있다. 수많은 인도 여인들이 두 손을 모으고 집안의 안녕과 건강을 비는 모습도 볼 수 있다. 힌두교에 관심이 없다면, 안에 들어가지 않고 외벽만 둘러보는 것도 좋다. 외벽을 촘촘하게 메우고 있는 조각이 훌륭하다.
작디시 만디르 주변에는 여행자를 위한 숙소와 기념품 가게가 줄지어 있다. 찬찬히 둘러보면 라자스탄의 특별한 기념품을 찾을 수도 있다. 여러 기념품 중에서도 세밀화로 그린 그림과 작은 엽서가 눈에 띈다. 세밀화는 말 그대로 정교한 필법으로 그린 그림으로, 12세기 초 서인도에서 시작한 화법이다. 청금석, 패각 등 천연염료를 사용해 가느다란 붓으로 정교하게 그려진다. 인도 경전과 신화를 주제로 한 그림이 대부분인데, 세밀함이 보석과 비교될 정도다.
도전! 인도 세밀화 그리기
거리를 어슬렁거리다 색다른 기념이 되겠다 싶어, 세밀화를 사러 문을 열었다. 왁자지껄한 기념품 가게 이미지와 달리 내부가 고요했다. 안으로 들어가니 화가들이 열심히 세밀화를 그리고 있었다. 물감이나 화구는 좋아 보이지 않았지만, 그림 그리는 표정 하나는 대가 못지않았다. 그림 그리는 모습을 보니 호기심이 올라왔다. 혹시 배울 수 있냐고 물었더니, 클래스가 있다는 답이 돌아왔다. 2시간 정도면 작은 엽서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붓을 놓은 지 수십 년이 지났지만, 호기롭게 도전하기로 했다. 인생은 뭐든 도전하는 자의 것이니까.
가장 그리기 쉬워 보이는 그림을 골랐다. 그리고 밑그림을 그리고 위에 적당한 색을 칠했다. 재미로 시작했는데, 긴장했는지 손이 떨렸다. 막히는 부분이 나오면 선생님에게 SOS를 외쳤다. 인도인 특유의 제스처로 오른쪽 왼쪽 고개를 흔들며 “노 프라블럼”이라며 친절하게 가르쳐줬다. 잘하고 있다며 용기를 북돋아 준 선생님 덕분에, 우다이푸르에서 생애 첫 세밀화를 완성했다.
밤에는 라자스탄 민속공연을
인도 문화에 관심이 있다면, 놓치지 말아야 할 공연이 있다. 매일 저녁 7시부터 라자스탄 문화를 볼 수 있는 민속공연이다. 인도의 대저택이었던 바고르 키 하벨리(bagore ki haveli)에서 약 1시간 동안 다채로운 공연이 이어진다. 먼저 라자스탄 스타일의 화려한 사리를 입고 장신구를 걸친 무희들이 인도 전통 악기인 타블라 연주에 맞춰 춤을 췄다. 흥겨운 음악과 현란한 춤사위, 큼지막한 장신구는 공연의 흥을 돋웠다.
여러 공연이 펼쳐지는데, 그중 라자스탄 인형을 이용한 마리오네트 공연은 어린이들이 직접 참여해볼 수 있어 인기였다. 공연의 대미는 항아리 묘기. 춤을 추며 머리 위에 항아리를 하나둘 올려놓는데, 11개의 항아리까지 쌓았다. 크기도 작지 않고 무게도 꽤 무거워 보이는 물동이를 이고 있는 모습이 탄성을 불러일으켰다.
라자스탄만큼이나 여러 색의 매력을 뽐내는 우다이푸르. 우다이푸르의 화룡점정은 낭만도시답게 피촐라 호숫가에서 즐긴 한 잔의 커피였다. 우다이푸르 여행 마지막 날, 카푸치노를 한 잔 주문해 놓고 고즈넉한 호수를 멍하니 바라봤다. 파란 호수에 새하얀 건물이 아련한 반영을 만들어 냈다. 해맑은 아이들이 호수로 신나게 뛰어들었다. 건너편 카페에선 친구들이 청량한 웃음을 뿌리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천천히 둘러본 화려한 인도 마하라자의 흔적과 흥미진진한 세밀화 수업, 유쾌한 민속공연 관람까지 우다이푸르에서 즐긴 순간순간이 영화 필름처럼 머릿속에 흘렀다. 그때 직감했다. 우다이푸르의 이 시간을 사무치게 그리워할 것이라는 사실을.
우다이푸르=글·사진 채지형 여행작가 travelguru@naver.com
여행정보
인천공항에서 인도 우다이푸르까지 가는 직항은 없다. 대한항공을 통해 델리 또는 뭄바이로 들어간 뒤 국내선으로 이동해야 한다. 델리에서 우다이푸르까지는 비행기 직항으로 약 1시간25분, 기차로는 약 12시간10분 걸린다. 인도는 한국과 3시간30분 차이가 난다. 인도의 오전 6시가 한국 오전 9시30분. 통화는 루피(INR)를 사용한다. 100루피는 약 1683원(2019년 6월 환율 기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