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O협약 비준하겠다는데
노사관계 '시한폭탄' 될 것
[ 김익환 기자 ]
진념 전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사진)은 21일 “우리 경제가 절체절명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고 진단하며 “정부와 정치권, 기업·노동계 모두가 개혁에 동참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와 정치인 등이 ‘너는 개혁 대상이고 나는 개혁의 칼자루만 쥐겠다’는 식으로 나오면 우리 경제는 돌파구를 찾기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다.
진 전 부총리는 이날 안민정책포럼 조찬세미나에서 ‘한국 경제 비상(飛翔)전략’을 주제로 특별강연을 했다. 그는 “경제민주화 정책과 복지 경쟁, 경제의 정치화로 인해 기업가정신이 위축되고 성장잠재력은 떨어지고 있다”며 “우리 경제가 비상하려면 정치 리스크, 정부 리스크, 노동 리스크를 극복해야 한다”고 진단했다.
진 전 부총리는 “정치권은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고 과거에 매몰된 채 갈등만 조장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정부를 향해선 “인천 ‘붉은 수돗물’ 사태처럼 정부가 정작 있어야 할 곳에서는 보이지 않고 있다”며 “규율을 제외한 규제는 과감하게 풀어 기업을 뛰게 하고 성장잠재력을 확충할 교육 부문에 재정을 쏟아부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지금 논의되고 있는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은 해고자의 노조 가입을 허용하겠다는 것인데 이는 노사관계 문제에 시한폭탄과 같다”고 평가했다.
그는 “기업도 정부 규제에 냉가슴만 앓지 말고 태도를 진취적으로 바꿔야 한다”며 “대한상공회의소를 비롯한 경제단체가 공정하고 투명한 경영에 나서겠다고 선언한 뒤 정부에 규제 완화와 전폭적 지원을 요구하는 ‘빅딜’에 나서야 한다”고 주문했다.
"퍼주는 복지는 도덕적 해이 불러…'일하는 복지'에 재정 쏟아야"
진념 전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사진)은 1962년 고등고시에 합격한 이후 노태우 정부에서 동력자원부 장관(1991~1993년), 김영삼 정부에서는 노동부 장관(1995~1997년)을 지냈고 김대중 정부 들어서 기획예산처 장관(2000~2002년)을 거쳐 부총리 겸 재경부 장관을 맡았다. 반세기 넘도록 경제 발전의 현장을 지켜온 원로의 경제 진단과 고언을 듣기 위해 이날 조찬세미나엔 현오석 전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백용호 안민정책포럼 이사장을 비롯해 많은 청중이 참석했다.
진 전 부총리는 “성장잠재력 하락에 주력 산업의 경쟁력은 이미 중국에 추월당했고, 기업들의 투자금이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다”며 “한국 경제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직면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미·중 무역분쟁은 패권전쟁으로 확산되면서 앞으로 20년 동안 한국 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이 같은 위기에 둔감하다고 지적했다. 진 전 부총리는 “정부가 하반기 또는 내년 상반기에 경제가 좋아질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며 “추세를 살펴보면 국내 설비투자가 줄고, 기업이 체감하는 불안감은 커지는 등 한국의 경제 진로가 전환점에 도달했다”고 말했다. 이어 “혁신성장 없는 소득주도성장은 허구”라며 정부가 지금이라도 경제정책을 수정하고 보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경제정책을 관할하는 컨트롤타워의 개편도 촉구했다. 진 전 부총리는 “청와대에 정책실장, 경제수석, 경제보좌관, 소득주도성장위원회, 일자리위원회 등 경제정책을 관할하는 책임자가 너무 많아 경제부총리의 영이 서지 않는다”며 “경제부총리가 중심이 돼 경제정책을 관할하는 방식으로 정부 시스템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성장잠재력을 확충하기 위한 방안으로 교육 혁신을 지목했다. 진 전 부총리는 “교육 혁신은 그림자도 보이지 않고 무상교육, 무상급식 정책이나 남발하고 있다”며 “그렇게 쓰는 재정을 기능대학인 한국폴리텍대와 마이스터고에 지원해 능력과 자질이 있는 사람을 지원하는 것이 정의냐 아니면 평준화하고 다같이 나눠먹는 것이 정의냐”고 반문했다.
그는 “복지제도는 성장잠재력을 키우는 방식으로 설계해야 한다”며 “파이를 나누기만 하는 복지는 도덕적 해이로 이어질 뿐”이라고 말했다. 전주 상산고의 자율형 사립고 재지정이 취소된 것을 언급하며 “모든 학교를 평준화하고 자사고를 배제하면 교육경쟁력이 약화될 수밖에 없는데 교육부 공무원은 뭐 하는 사람들이냐”고 비판했다. 이어 “이명박 정부는 마이스터고를 도입했다는 점에서 평가받을 만하다”며 “당시 정부가 마이스터고를 출범시키고 학비·생활비 등을 지원했고 성과도 좋았는데 요즘 실습현장에서 사고가 나면서 시들해졌다”고 말했다.
노동 리스크와 관련해서는 “산입범위를 정하지도 않은 채 최저임금부터 올려놓고 뒷수습을 하고 있다”며 “최저임금을 지역별로 차등 적용하는 건 어렵지만 업종별로 차등 적용하는 것은 검토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진 전 부총리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고용 유연성과 안정성을 함께 고민하면서 노사개혁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치권에도 쓴소리를 했다. 그는 “정치권은 내년 총선에만 관심을 두고 유리한 고지를 점하는 데만 정신이 팔려 있다”며 “다음 세대를 생각하는 ‘정치가(statesman)’는 보이지 않고 다음 선거를 생각하는 ‘정치꾼(politician)’만 보인다”고 꼬집었다.
김익환 기자 lovepe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