市 허가 번복, 의원은 막말…'님비'에 막힌 오산 정신병원

입력 2019-06-21 17:44
수정 2019-06-22 13:42
허가 내준지 한 달 만에 취소

폐쇄병동 알려지자 주민들 반발
市, 시정명령도 없이 허가 취소


[ 이지현/임유 기자 ]
지난 4월 경기 오산에 문을 연 정신질환 치료 의료기관을 두고 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주거지역에 정신병원은 안 된다”는 지역 주민의 반발에 오산시가 허가 한 달여 만에 허가 취소 결정을 통보하면서다. 의료계는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으로 치료시설이 쫓겨나면 피해는 국민에게 돌아갈 것”이라며 사태 해결을 촉구했다.

논란 커지는 오산 정신병원

대한의사협회는 지난 20일 이 지역 국회의원인 안민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검찰에 고발했다. 오산 세교신도시에 있는 평안한사랑병원의 허가 취소 과정에서 직권을 남용했다는 이유에서다. 의사협회는 오는 24일 국회 윤리위원회에도 안 의원을 제소할 계획이다.

논란은 이 병원이 4월 23일 개설허가를 받으면서 시작됐다. 전체 140개 병상 중 126개 병상이 정신질환자를 위한 폐쇄병동으로 운영된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인근 주민들이 연일 시위를 벌이며 반발했다. 오산시는 지난달 초 보건복지부에 병원 개설 허가에 문제가 없는지 질의했다. 복지부는 “이 병원을 정신질환자 치료 의료기관으로 해석한다면 정신건강복지법에 따라 60병상당 1명의 전문의를 둬야 하기 때문에 정신과 전문의 3명이 근무해야 한다”고 회신했다. 오산시는 지난달 20일 병원 측에 허가를 취소할 예정이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다. 정신과 전문의가 1명이어서 의료인력이 허가 기준에 못 미친다는 이유에서다. 이동진 평안한사랑병원 부원장은 “첫 공문에 발부번호도 없을 정도로 (오산시가) 급하게 보냈다”며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취소하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했다. 지방자치단체는 의료법상 의료인력 기준에 맞지 않으면 시정명령, 사업정지 등을 거쳐 허가 취소를 해야 한다. 하지만 오산시는 이런 절차를 거치지 않았다.

지역 주민들은 불안감을 토로했다. 지역 주민 김모씨는 “근처에 초·중·고교가 있는데 정신질환자 치료기관이 들어서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했다. 또 다른 주민은 “병원이 들어선 뒤 유동인구가 줄어 이곳 상인들이 고민이 많다”며 “집값에도 악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안 의원의 발언도 논란이 됐다. 그는 지난달 17일 주민들이 모인 자리에서 “병원장이 소송한다면 특별감사를 해 한 개인으로 감당할 수 없는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며 “3대에 걸쳐 자기 재산을 다 털어놔야 할 것”이라고 했다. 이 발언이 알려지면서 의료계의 비난 목소리가 커졌다. 안 의원은 21일 자신의 홈페이지에 반박하는 글을 올렸다. 그는 “이 병원은 폐쇄병상을 갖춘 사실상 정신병원임에도 일반병원으로 설립 허가를 받았다”며 “본질은 병원 개설 허가가 잘못됐다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의료계 “정신건강시설 혐오 없애야”

정신과 의사들은 이번 사태가 정신질환 치료시설에 대한 혐오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고 진단했다. 지난 4월 경남 진주에서 정신질환자 방화·살인사건이 발생한 뒤 사회적 편견이 심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올 4월 부산 금곡동에 정신질환자 재활시설을 연 사회복지법인 나눔과행복은 지역 주민 반대에 막혀 운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수원시는 지난해 정신질환자 재활을 위한 마음건강치유센터를 열기로 했다가 주민 반대로 좌초됐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이날 성명을 통해 “주무부처인 복지부가 한 번도 논의된 바 없는 허가병상을 기준으로 전문의 수가 기준에 못 미친다는 유권해석을 했다”며 “이를 근거로 이미 개설돼 진료하는 병원의 허가를 취소하려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지현/오산=임유 기자 bluesk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