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인트라넷'으로 전락한 中 인터넷

입력 2019-06-20 17:47
수정 2019-07-11 11:00
강동균 베이징 특파원


[ 강동균 기자 ] 2년 전 중국 베이징 특파원으로 부임했을 때 가장 먼저 한 일은 노트북과 휴대폰에 유료 가상사설망(VPN)을 설치하는 것이었다. 구글과 페이스북, 트위터 등 주요 해외 사이트는 물론 뉴욕타임스와 월스트리트저널, 블룸버그통신 등 외신의 접속이 막혀 있어서다.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명보 등 홍콩 언론도 VPN을 이용하지 않으면 접근할 수 없다. 특파원과 외국 기업 주재원 사이에선 VPN이 ‘전장(戰場)의 무기’와 같다는 우스갯소리마저 나온다.

중국은 공산당과 정부에 불리한 정보를 막고 비판적인 여론을 부추기는 해외 사이트를 차단하기 위해 강력한 인터넷 통제시스템을 구축해놨다. 해외에서는 이를 중국의 만리장성에 빗대 ‘만리방화벽(Great Firewall)’이라고 부른다.

해외 사이트 줄줄이 차단

2000년대 초만 해도 중국에서 VPN을 쓰는 외국인은 거의 없었다. 당시엔 일부 홍콩 언론 정도만 접속이 안 됐을 뿐이라고 한다. 하지만 2012년 시진핑 국가주석이 집권하면서 중국에서 인터넷을 통한 바깥 세계와의 소통 경로는 크게 좁아졌다. SCMP에 따르면 중국은 세계 상위 1000개 웹사이트 가운데 135개의 접속을 차단했다. 국가안보를 이유로 세계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25개 웹사이트 중 8개를 막아놨다.

중국의 인터넷 통제는 올해 들어 더욱 심해졌다. 중국에선 올해 톈안먼 민주화 시위 30주년(6월 4일)을 비롯해 한족과 위구르족 충돌로 수백 명의 사상자를 낸 신장 사태 10주년(7월 5일),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70주년(10월 1일) 등 정치적으로 민감한 기념일이 줄줄이 이어지고 있다.

민심이 동요할 것을 우려해 중국 정부는 지난달부터 온라인 백과사전 사이트 위키피디아의 모든 언어판 접속을 금지했다. 이달 9일 홍콩에서 범죄인 인도법 개정안을 반대하는 대규모 시위가 벌어진 이후 14일부터는 네이버의 접속도 막았다. 17일 뉴스와 검색 등 일부 서비스 이용이 잠시 가능해졌지만 18일부터 다시 끊겼다. 올 1월 차단된 다음은 여전히 막혀 있다. 중국에서 그나마 정상적으로 접속 가능했던 해외 언론인 워싱턴포스트와 NBC, 가디언도 이용할 수 없게 됐다.

고립돼가는 中 인터넷 환경

중국의 만리방화벽을 뛰어넘으려면 VPN이라는 우회 접속 프로그램을 무료나 유료로 사용해야 한다. 무료 VPN 사용은 작년부터 불가능해졌다. 유료 VPN도 양회(兩會·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 등 대규모 행사가 열리거나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기엔 수시로 접속이 끊긴다. 중국인 10억 명이 사용하는 메신저 위챗 역시 감시망을 피할 수 없다. ‘시진핑’ ‘홍콩 시위’ 등 민감한 단어가 포함된 글은 아예 전송되지 않는다.

중국 검열당국은 최근 인공지능(AI)까지 동원해 유료 VPN 차단에 열을 올리고 있다. SCMP는 “당국이 AI를 활용해 언론 사이트뿐 아니라 기업의 정당한 경영활동과 관련된 1만 개 이상의 도메인도 막았다”고 전했다. 중국 정부의 인터넷 검열 인력은 5만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

갈수록 강화되는 인터넷 통제를 두고 중국 내에선 중국의 인터넷 환경이 ‘인트라넷’으로 전락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회사, 학교 등 조직 내부에서만 사용되는 통신망인 인트라넷처럼 점점 세계에서 고립되고 있다는 비판이다.

중국의 한 인터넷 기업 최고경영자(CEO)는 “공산당과 정부는 개방을 강조하고 있지만 인터넷 환경은 ‘그들만의 리그’가 되고 있다”며 “이대로 가면 중국의 경쟁력은 10년 안에 사라질지 모른다”고 말했다.

kd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