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이번에도 "다른 사람 이름을 빌려서 갖고 있는 부동산도 소유권 인정해야"

입력 2019-06-20 15:39
수정 2019-06-20 15:45
다른 사람의 이름을 빌려 차명으로 갖고 있는 부동산의 소유권을 인정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은 앞서 2002년 차명 부동산의 소유권을 인정한 판례를 바꿔야할지 공개변론까지 열어 따져봤으나 기존 판례를 유지하기로 했다. 일각에서는 대법원이 부동산 실명제의 취지에 어긋나는 판결을 내렸다는 비판이 나온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일 명의신탁자 A씨가 이름만 빌려 준 B씨를 상대로 낸 소유권이전등기 청구 소송의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판결한 원심을 확정했다. 남의 이름을 빌려서 갖고 있는 부동산이라도 소유권을 인정해줘야 한다는 의미다.

해당 사건의 원고 A씨의 남편은 1998년 농지를 사들였으나 농지법 위반 문제가 발생하자 피고 B씨 남편 명의로 소유권이전 등기를 마쳤다. 2009년 A씨의 남편이 사망한 데 이어 2012년 B씨의 남편까지 사망하자 해당 농지의 소유권을 두고 A씨와 B씨 간 다툼이 발생했다.

A씨는 “명의신탁은 부동산실명법을 위반해 무효기 때문에 해당 농지의 등기를 이전해달라”고 주장했다. 이에 맞서 B씨는 “농지법 위반을 피하려는 명의신탁은 ‘불법원인급여’에 해당해 땅을 돌려줄 필요가 없다”고 반박했다. 불법원인급여는 범죄행위 등 불법으로 발생한 재산으로 민법상 소유권 등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

부동산 명의신탁은 일제강점기 종중재산을 종중의 명의로 등기할 방법이 없어 편의상 종중원 일부의 명의로 등기를 하게 된 것에서부터 부동산 시장의 관행 중 하나로 자리잡았다. 1996년 부동산실명법이 시행되면서 명의신탁자와 수탁자 모두 형사처벌 대상이 됐다. 신탁자에게는 부동산 가액의 최대 30%에 이르는 과징금이 부과된다. 법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부동산실명법을 위반해 입건된 수는 1254건이다.

1·2심은 기존 대법원 판례에 따라 명의신탁자 A씨의 소유권을 인정했다. 2002년 9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명의신탁약정이 선량한 풍속이나 기타 사회질서에 반한다고 단정할 수 없다”며 불법원인급여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현행 부동산실명법상 차명 부동산 소유는 형사처벌 대상은 맞지만, 그간 형성된 부동산 시장 관행에 비춰 민사적으로는 실소유자의 소유권을 인정해야 한다는 취지다.

사건을 넘겨받은 대법원은 기존 판례를 변경할 필요가 있는지 따져봐야 한다며 전원합의체(대법원장과 12명의 대법관)에서 따지기고 했다. 지난 2월 공개변론까지 열었으나 전원합의체는 대법관 9명의 다수의견으로 기존 판례를 유지하기로 결론내렸다. 재판부는 “부동산실명법의 입법 취지는 신탁 부동산의 소유권을 실권리자에게 귀속시키는 것을 전제로 한다”며 “명의신탁약정을 체결·협조한 명의수탁자의 불법성도 작지 않은데, 불법원인급여 규정을 적용해 명의수탁자에게 부동산 소유권을 귀속시키는 것은 정의 관념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법조계 및 부동산 업계 일각에선 대법원이 사회적 파장을 지나치게 우려해 소극적 판단을 내렸다는 비판을 내놓는다. 부동산실명제 취지에도 맞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반대의견을 낸 조희대 박상옥 김선수 김상환 등 4명의 대법관도 “부동산 명의신탁은 세계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제도로, 이를 근절하기 위한 사법적 결단이 필요하다”며 “재산거래에서 투명성을 존중하는 사회질서가 자리잡은 만큼 명의신탁의 불법성에 관한 사회적 인식이 형성돼 불법원인급여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연수 기자 s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