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도 화웨이처럼 되지 말란 법 없다"
삼성 스마트폰은 '수혜', 반도체는 '부정적' 평가
삼성전자 내부에서 연일 '화웨이 신중론(論)'이 나오고 있다. 업계에서는 미국의 '화웨이 때리기'로 삼성전자가 반사이익을 볼 것이란 장밋빛 전망이 제기되지만 삼성전자 분위기는 다르다.
미국 정부가 중국 정부를 굴복시키기 위해 화웨이를 공격한 것처럼 삼성도 언제든 견제를 받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최근 이재용 부회장이 연거푸 위기론을 펴면서 빈틈없는 대비를 주문한 것도 이같은 맥락이다.
19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비메모리 반도체 사업 수장인 강인엽 삼성전자 DS부문 시스템 LSI 사업부장(사장)은 지난 18일 열린 신경망처리장치(NPU) 육성 전략 간담회에서 "화웨이 제재는 민감하고 큰 문제라 노코멘트 하겠다"고 말했다.
강 사장은 최근 삼성 경영진 연속회의를 통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두 차례 만나 글로벌 시스템 반도체 분야 대책 회의를 가졌다. 시스템 반도체는 삼성이 글로벌 시장에서 화웨이와 경쟁하는 분야 중 하나다.
삼성전자 반도체부문 관계자는 "최근 미·중 무역분쟁으로 기업들이 예상치 못하게 사업 전략을 수정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경영환경이라 위기의식부터 생긴다"며 "특히 화웨이 이슈의 경우 화웨이의 '화' 자도 꺼내지 말자는 분위기"라고 귀띔했다.
미중 무역갈등의 기저에 깔린 보호무역주의가 확산되면 삼성도 공격 타깃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하고 대비하는 차원이다.
그 영향으로 삼성전자는 연2회 여는 글로벌 전략회의도 대폭 축소했다. 통상 6월과 12월에 열리는 글로벌 전략회의에는 삼성전자 전세계 임원 200여명이 한 자리에 모인다. 하지만 올해는 사업부별 각자 회의를 하는 방식으로 바꿨다. 업계 관계자는 "DS 부문은 화웨이 이슈가 얽혀 있고 IM 부문은 갤럭시폴드, 갤럭시노트10 출시 문제가 있어 현안 대응을 위해 해외법인 임원들은 부르지 않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삼성의 몸 사리기가 단순 우려에서만 비롯된 것은 아니다. 화웨이 사태로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사업에선 반사이익을 기대할 수 있는 반면, 반도체 사업에선 도리어 부정적 영향을 초래할 것이란 관측도 제기된다.
삼성전자와 화웨이는 저가 스마트폰 시장을 두고 유럽, 중남미, 중동·아프리카에서 경쟁하고 있다. 화웨이는 전체 스마트폰 매출의 49%를 해외에서 내고 있다. 블룸버그 전망에 따르면 미국 정부 제재로 화웨이의 해외 스마트폰 판매량은 최대 60%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화웨이의 지난해 스마트폰 전체 출하량 2억580만대 가운데 약 6000만대 줄고, 삼성전자가 이틈을 파고들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하이투자증권은 화웨이 제재가 장기화될 경우 삼성전자의 스마트폰 출하량 전망치가 올해 2억8300만대에서 3억400만대로, 내년에는 2억9500만대에서 3억3900만대로 각각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삼성전자의 최대 효자 사업인 메모리 반도체는 단기적 매출 감소가 불가피하다. 화웨이가 삼성전자의 메모리 반도체 최대 고객 중 하나이기 때문. 삼성전자 전체 매출의 약 2.5%가 화웨이를 통해 발생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최근 미국 메모리 반도체 기업 마이크론테크놀로지(MT)가 화웨이에 제품을 보내지 않겠다고 선언, MT가 대체 판로를 찾기 위해 경쟁사에 저가 납품할 가능성도 높아지게 됐다. 도현우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삼성전자 실적에서 메모리 반도체 가격이 중요한데 마이크론의 저가 납품은 메모리 수급 악화에 추가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짚었다.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