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건 비바리퍼블리카 대표, '간편 송금' 서비스로 8전 9기 신화 쓴 치과의사

입력 2019-06-18 17:33
CEO 탐구

글로벌 큰손들 주목하는
'핀테크 유니콘' 키워


[ 윤희은 기자 ] “항상 몰입하세요.”

이승건 비바리퍼블리카 대표(37)가 직원들에게 늘 주문하는 말이다. 태어나서 한 번쯤 의미 있는 일을 하려면 어떤 일에든 몰입해야 한다는 게 이 대표의 지론이다.

간편송금 서비스 ‘토스’를 개발한 비바리퍼블리카는 이 대표와 직원들의 몰입으로 완성됐다. 이 대표는 토스를 단순한 서비스로 여기지 않는다. 하나의 ‘혁명’이며, ‘변화’라고 강조한다. 이런 변화들이 모여 세상을 바꿀 것이라고 믿는다.


세상을 바꾸고 싶었던 치과의사

이 대표는 서울대 치의학과를 졸업했다. 2008년엔 삼성의료원에서 전공의 생활을 했다. 이후 3년간 전남 목포에서 배로 두 시간 떨어진 섬 암태도에 살았다. 공중보건의로 군 대체복무를 했다. 작고 외진 섬에는 소위 말하는 사회 소외계층이 많았다. 낮에는 그들을 진료하고, 밤에는 각종 인문학 서적을 읽었다.

수백 권의 책을 독파하면서 이 대표는 ‘공화주의’에 매료됐다. 세상을 더 나아지게 하려면 너도나도 사회 참여에 나서야 한다는 루소의 얘기에 공감했다. 도움이 필요한 이들은 암태도를 비롯해 대한민국 곳곳에 많다고 생각했다.

세상에 도움이 될 만한 일을 구체적으로 찾았다. 사람들을 편하게 해주는 정보기술(IT) 서비스 사업을 구상하기 시작했다. 경영에 대한 건 몰랐지만, 기술에 대한 관심은 있었다.

이 대표가 2011년 4월 비바리퍼블리카를 설립한 배경이다. 비바리퍼블리카는 ‘공화국 만세’를 뜻한다. 프랑스 대혁명 당시 민중이 외치던 구호였다. 초기 사업은 난항이었다. 모바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울라불라’와 모바일 투표 앱(응용프로그램) ‘다보트’ 등이 잇따라 실패했다. 직원들 월급조차 주지 못할 위기에 빠지기도 했다.

여덟 번의 실패를 걸쳐 아홉 번째 사업인 토스에서 길이 트였다. 스마트폰을 활용한 간편송금 아이디어를 처음으로 내놓았을 때 주변 반응은 싸늘했다. “이미 은행이 독점하다시피 한 송금 서비스를 무슨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이 하느냐”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겨우 일어섰다 싶었는데 이번엔 정부가 발목을 잡았다. 토스 출시 2개월 만에 규제에 막혀 서비스를 중단해야 했다. 공인인증서를 거치지 않는 송금 방식은 법의 테두리 밖이었기 때문이다.

이 대표는 포기하지 않았다. 금융당국과 은행을 찾아다니면서 토스 서비스를 홍보하고 설득했다. 마침내 빛이 보였다. 정부가 간편결제 필요성을 인식하고 관련 규제를 재검토했다. 약 4년 만인 2015년 2월 토스를 정식 출시했다.

토스 서비스의 성장세는 예상을 뛰어넘었다. 출시 1년 만에 토스 앱 누적 다운로드 수가 100만 건을 돌파했다. 1년 반이 흐른 2017년 7월에는 1000만 건을, 2018년 9월에는 2000만 건을 돌파했다. 2030세대 사이에서는 토스가 ‘필수 앱’이 됐다.

매출도 점프했다. 2016년 35억원에 불과하던 매출이 2017년 205억원으로 증가했다. 지난해에는 548억원을 달성했다.

2018년 12월 기어코 ‘사고’를 쳤다. 글로벌 투자사 클라이너퍼킨스 등으로부터 8000만달러(약 947억원)를 유치하며 기업가치 12억달러(약 1조4200억원)를 인정받았다. 국내 네 번째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 스타트업)의 탄생이었다.

전 직원에게 1억원씩 지급하며 독려

비바리퍼블리카는 스타트업 업계에서 ‘무서운 스타트업’으로 불린다. 엄격한 기업문화를 잘 말해주는 별칭이다.

‘3먼스 리뷰(3 month review)’와 ‘스트라이크’ 제도가 대표적이다. 3먼스 리뷰란 신규 입사자가 3개월에 걸쳐 토스의 기업문화와 일하는 방식에 대해 평가하고 적응하는 기간이다. 스트라이크 제도는 ‘함께 일하기 어려운 동료’라고 평가받은 직원에게 1년 이상의 개선 기간을 준 뒤 변화가 없으면 퇴출시키는 제도다.

이 대표는 회사의 발전이 직원 간 신뢰와 이해에서 온다고 믿는다. 그는 “동료 간 믿음이 없으면 회사가 돌아가지 않는다”고 했다. “3먼스, 스트라이크 모두 직원 간 신뢰를 쌓고 함께 일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가기 위한 제도”라고 강조했다.

이 대표는 신뢰의 바탕인 소통을 중시한다. 직원들에게 누누이 얘기하는 것이 ‘과감한 투명성’이다. 회사가 발전하려면 서로 불만이나 지적도 용기 있게 건네야 한다는 것이다.

비바리퍼블리카는 지난 1월 모든 직원에게 1억원의 스톡옵션을 지급하고 연봉을 50% 인상했다. 국내 스타트업 업계에서 유례없는 파격적 ‘선물’이었다. 이 대표는 이 스톡옵션을 일종의 창업자금이라고 했다. “토스 직원들은 언제든지 창업할 수 있는 용기와 능력을 갖추고 있다”며 “그에 걸맞은 대우와 보상을 정당하게 했을 뿐”이라고 설명했다.

베트남 등 해외로도 진출

토스는 이달 기준 1200만 명의 누적 가입자와 45조원 이상의 누적 송금액을 기록했다. 총 투자유치금액이 2200억원, 전체 직원 수는 240명에 달한다. 명실상부한 국내 1위 핀테크(금융기술) 스타트업으로 평가받는다.

세상을 바꾸려는 이 대표의 도전은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지난 3월 금융위원회 인가를 받고 소액·신용·단기 중금리 대출 서비스를 준비 중이다. 주요 고객은 금융 이력이 부족한 20대 청년이다. 상품은 SC제일은행과 함께 기획한다.

올해 안으로는 토스 서비스를 베트남에 상륙시킬 예정이다. 동남아시아 지역은 금융서비스가 낙후된 데 반해 스마트폰 보급률이 높아 토스 진출이 유리하다는 게 이 대표의 판단이다.

그는 지난달 말 좌절을 겪었다. 공을 들인 신사업인 인터넷전문은행에서 고배를 마셨다. 금융당국의 예비인가를 받지 못했다. 8전9기의 이 대표가 쉽사리 물러서지 않을 도전이다.

■이승건 대표 프로필

△1982년 서울 출생
△2007년 서울대 치의학과 졸업
△2008년 삼성의료원 전공의
△2011년 비바리퍼블리카 창업
△2014년 청년기업인상 중소기업청장 표창
△2015년 2월 간편송금 서비스 토스 출시
△2016년 4월~2018년 3월 한국핀테크산업협회 회장

윤희은 기자 sou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