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도전했다 (12) 실패에서 배운다
'지인 추천 구인 플랫폼'으로
채용시장 강자 떠오른 원티드랩
[ 김남영 기자 ] 두 번 넘어지고 세 번째에 일어섰다. 두 번째 사업에선 모아둔 돈 1억원을 모두 날렸다. 이복기 원티드랩 대표는 회사원으로 돌아가지 않고 세 번째 사업을 준비했다. 이전의 실패를 철저히 ‘복기’해 설립한 것이 원티드랩이다. 2015년 문을 연 원티드랩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활용한 구인업체로, 4000여 개 국내외 기업을 고객으로 두고 있다.
이 대표는 “실패한 창업에서 사업할 때 해서는 안 되는 것들을 배웠다”며 “우보호시(牛步虎視)의 마음으로 원티드랩을 착실하게 키우겠다”고 말했다.
꿈은 크게, 실행은 작은 것부터
이 대표가 뛰어든 첫 번째 사업은 ‘집단소송’이었다. 개인정보 유출 등 다수의 피해자가 발생한 사건이 터졌을 때 소송 희망자를 모으는 일을 대행하는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을 세웠다. 사업은 뜻대로 안 풀렸다. 이 대표는 “잘 모르는 법률 분야에 덤빈 탓”이라고 실패 요인을 설명했다.
두 번째로 뛰어든 사업은 여행업이었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 잘할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 현지 체험 상품을 중개하는 게 사업 모델의 골자였다.
이 대표는 “한복을 입고 고궁에 가거나 전통화를 그리는 등 여행객은 현지에서만 할 수 있는 경험을 누리고 싶어 한다”며 “서울 홍익대, 북촌 등 게스트하우스에서 외국인 관광객을 인터뷰하며 500여 개의 체험 상품 목록을 작성했다”고 말했다.
관건은 판매 채널이었다. 카페24 등 기존 플랫폼을 이용하는 게 순리였지만 직접 판매 사이트를 개설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외주로 맡긴 사이트 개발은 반 년이 지나도록 끝나지 않았다. 회사 내 개발을 아는 사람도 없으니 독촉하기도 어려웠다. 8개월이 됐을 때 손을 놨다.
그는 “거창한 꿈을 한 번에 이루겠다는 욕심이 화를 불렀다”며 “사이트 개발보다 상품 판매에 집중했다면 결과는 달랐을 것”이라고 토로했다.
세 번째 사업을 준비하며 개발자와 디자이너 등을 창업 멤버로 끌어들였다. 개발과 디자인 부문의 ‘병목현상’을 막기 위한 조치였다. 사업 모델은 ‘지인 추천 채용 플랫폼’이었다. 구직에 나선 인물이 무엇을 잘하는지, 잠재력은 어느 정도인지를 구직자 주변 지인을 통해 미리 가늠할 수 있도록 하는 게 플랫폼의 역할이었다.
이 대표는 이전의 실패를 잊지 않았다. 거창한 사이트를 개설하기보다 SNS를 선택했다. 일단 지인들이 인정한 각 분야 정보기술(IT) 전문가 100명을 모아 페이스북 그룹을 만들었다. 일종의 CBT(비공개 테스트)였다. 기업에 이 명단을 들고 가 이들을 채용하거나 이들에게 추천받은 사람을 채용할 의향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긍정적인 답변이 돌아왔다.
다음 고려 사항은 보상 시스템이었다. 적극적으로 주변 인재를 추천하게 하려면 보상이 필수였다. 처음엔 추천자에게만 100만원의 합격 보상금을 줬다. 추천자들은 금전적인 보상을 기꺼워하면서도 자신만 돈을 받는 것에 죄책감을 토로했다. 이 대표는 고민 끝에 추천자와 합격자에게 똑같이 50만원씩을 지급하는 것으로 방식을 바꿨다.
50만원으로 정한 것도 이유가 있다. 그 이하를 보상하면 추천에 소홀했다. 그 이상을 보상한다고 해도 더 나은 사람을 추천하지 않았다.
이 대표는 “연봉이 일정 선을 넘어가면 계속 늘어나도 사람들이 더 열심히 일하진 않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라고 설명했다.
35조원 해외 시장에 도전
원티드랩이 채용 시장의 ‘숨은 강자’로 불리기 시작한 것은 업력이 2년 정도 쌓인 시점부터였다. 헤드헌터가 추천해주는 사람보다 원티드랩을 통해 추천받는 사람이 더 합격률이 높다는 사실이 데이터로 증명되면서 기업 고객이 급증했다.
헤드헌터보다 저렴한 수수료도 원티드랩의 강점이다. 헤드헌팅 비용은 합격자 연봉의 15~20%인데 원티드랩은 7%만 가져간다. 최근엔 구직자와 기업을 연결할 때 머신러닝(기계학습) 기술을 활용해 경쟁력을 더 끌어올렸다. 채용 매칭 데이터가 50만 건이 넘어서면서 인공지능(AI)의 정확도가 대폭 향상됐다는 설명이다.
미국의 시장조사기관 그랜드뷰리서치에 따르면 세계 인적자원관리(HRM) 관련 시장은 2016년 126억달러(약 14조9370억원)에서 2025년 300억달러(약 35조5650억원) 규모로 커질 전망이다. 원티드랩이 해외로의 확장을 시도하고 있는 배경이다. 이 회사는 2017년 일본 자회사를 설립한 것을 필두로 홍콩, 싱가포르, 대만 등에도 연이어 지사를 세우고 있다. 고객 중 외국 구직자와 외국 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20%에 달한다.
특히 일본에서 반응이 좋다. 소프트뱅크, 라쿠텐, 닛산자동차 등이 원티드랩으로 경력자를 뽑고 있다. 이 대표는 “일본 헤드헌터는 채용자 연봉의 30%에서 100%까지 수수료로 받아간다”며 “원티드랩을 가성비가 좋은 서비스로 인식하는 일본 기업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김남영 기자 nyk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