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는 06월14일(14:10) 자본시장의 혜안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성동조선 거래는 안 될 수 밖에 없었다."(구조조정 전문 변호사 A)
세 차례에 걸쳐 이뤄진 성동조선해양(성동조선) 매각이 결국 무산됐다. 사실상 마지막 매각 시도가 무산되면서 한 때 1만명의 직간접 고용효과를 창출하며 통영 경제를 뒷받침했던 성동조선은 파산 기로에 섰다. 지난해 3월 정부가 산업경쟁력강화 관계 장관회의(산경장 회의)를 열어 성동조선의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를 결정한 지 1년여가 지난 지금 시장이 내린 결론이다.
인수합병(M&A)업계에선 대체로 ’예상했던 결과‘란 반응이 나온다. 올 상반기 다른 중형사들의 수주가 4척에 불과할 정도로 침체된 중형조선시장 환경에서 이미 지난해부터 수주가 끊긴 성동조선을 수천억원을 들여 인수할 투자자를 찾긴 어려울 것이란 시각이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당수 전문가들은 성동조선의 매각 실패를 ’인재(人災)’로 보고 있다. 시장 논리가 아닌 노동조합의 입김에 휘둘린 정치권과 중형조선업에 대한 뚜렷한 비전 없이 매각을 추진한 정부의 무능이 성동조선 매각 실패를 낳았다는 분석이다.
성동조선 매각 무산 원인은 크게 △인력 구조조정 실패 △정부 차원의 중형조선업 구조조정 비전 부재 △기술력 부족의 세 가지가 거론된다. 1년 여 기간동안 매각주관사 삼일 회계법인을 비롯해 국내 자문사에 성동조선 인수를 문의해온 자금력을 갖춘 국내외 투자자들이 투자 의사를 철회한 주된 이유들이다.
이 가운데 정치권과 노동계의 반발로 무산된 성동조선의 인력 구조조정 실패는 매각을 무산시킨 제 1요인으로 꼽힌다. 성동조선의 법정관리를 결정지은 지난해 3월 산경장 회의에 보고된 외부 컨설팅 보고서의 핵심 내용은 성동조선의 기능을 신조선이 아닌 수리조선이나 블록공장으로 조정하는 것이었다. 기능 조정을 위해선 당시 1200명이던 인력을 400명 수준으로 줄여야 했다. 이는 기능 조정이 아니더라도 고정비를 줄여 매각 가능성을 높이기 위해 필요한 조치라는 것이 컨설팅 보고서의 요지다.
실제 성동조선은 지난해 4월 회생절차가 개시된 후 생산직의 81.3%, 관리직의 42.4%를 줄여 총 인원을 392명으로 축소시키는 자체 인력 구조조정안을 추진했다. 두 달여만에 희망퇴직으로 400여명이 회사를 떠났고, 성동조선의 인력은 800명 수준으로 줄었다. 희망퇴직만으로 구조조정이 어렵다는 판단에 성동조선이 정리해고 절차에 들어가면서 인력 구조조정은 당초 회생계획에 맞춰 이뤄지는 듯 했다.
하지만 정리해고안에 대해 김경수 경남도지사를 비롯한 지역 정치권과 노동계가 반대하고 나서면서 분위기는 급반전됐다. 정리해고에 반발한 성동조선 노조의 입장 표명 요구에 6월 지방선거로 새롭게 선출된 김 도지사가 "어떤 식으로든 정리해고는 안 된다"는 입장을 밝힌 것. 그는 "성동조선 회생을 위해 희망퇴직을 추가로 할 필요는 있다"며 인력 구조조정의 필요성엔 공감을 표했지만 이 때부터 협상의 무게추는 노조 측에 쏠렸다. 결국 그 해 8월 성동조선 노사는 정리해고 대신 2020년 12월까지 순환 무급휴직하는 조건에 합의했다. 당초 400명이었던 인력 감축 계획이 800명선에서 멈추게 된 것이다.
이 때의 인력 구조조정 실패는 3차례 매각에서 번번이 발목을 잡았다. 조선업 최고의 입지 조건으로 꼽히는 성동조선 2야드에 대한 중국, 싱가폴, 중동 등 해외 투자자들의 관심이 적지 않았지만 대부분 과잉 인력 및 강성 노조에 대한 부담감에 인수 의사를 접었다. 한 회계법인 관계자는 "수주잔량이 아예 없어 재가동되기까지 최소한 1년 가까운 시간이 드는 성동조선을 수천억원에 800명의 정규직까지 안아가며 인수한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며 "발주 물량 확보가 가능했던 외국계 사모펀드 등이 유력 후보들이 인수를 접은 이유도 고용 문제였다"고 말했다.
국내 중형조선업이 사실상 기능불능 상태에 빠진 상황에서 정부 차원의 비전이 불명확했던 것도 인수자들의 등을 돌리게 했다. 경영정상화를 위한 신규 수주에 꼭 필요한 선수금환급보증(RG) 발급 여부를 누구도 확답을 해줄 수 없었던 것. 정부 차원의 정책적 판단이 없는 상황에서 지금까지 4조원에 달하는 공적자금을 성동조선에 투입한 채권단으로선 선뜻 RG발급을 약속하긴 힘들었다.
이에 대해 한 금융권 관계자는 "만약 성동조선이 단기적으로 손해를 보더라도 그로 인해 발생하는 고용유발효과나 지역경제활성화 등 사회적 경제효과가 더 크다면 지금까지의 비용과 관계 없이 지원을 해주는 것이 맞다"며 "하지만 정부 차원의 어떤 방향성도 없다보니 국책은행들은 최대한 보수적인 선택을 할 수 밖에 없었다"고 분석했다. 그는 "꼭 고장난 시계를 팔면서 수리는 못해준다고 하는 격"이라며 "산업 전략적 측면이 배제된 채 순전히 채권단 은행의 건전성 논리에 따라 매각이 진행된 것이 무산의 이유"라고 덧붙였다. 실제 두 번째 매각 당시 인수 의사를 밝혔던 한 구조조정 전문 사모펀드는 채권단의 안정적 RG발급 요구가 거절되자 바로 인수를 접었다.
투자자들을 매료시킬만한 기술력을 갖추지 못했던 것도 성동조선의 매력을 낮춘 요인이다. 성동조선은 최근 발주가 늘고 있는 액화천연가스(LNG)선을 만들어본 경험도, 기술도 없다. 원유나 석유제품을 운송하는 중대형 탱커와 프로덕트 캐리어 등 성동조선의 주력선종은 이미 중국 업체들이 낮은 인건비를 무기로 시장을 장악했다. 그나마 한국을 찾는 선주들도 현대미포조선 등 시장 신뢰도가 높은 글로벌 메이커를 찾고 있다. 한 조선업 전문가는 "수주량 기준으로 한 때 세계 8위에 오르기도 했지만 기술력이 8위는 아니었다"이라며 "야드 말곤 경쟁력이 없는 회사라는 것이 투자자들의 결론"이라고 말했다.
매각이 무산되면서 성동조선의 앞날은 ’시계 제로(0)‘인 상황이다. 일각에선 수의 계약을 맺어 인수자를 확보한 뒤 공개매각을 추진하는 스토킹호스 방식 매각 가능성도 거론되지만 이미 세 차례 매각에서 성동조선에 대한 차가운 투심(投心)을 확인한 이상 청산 절차를 피하기 어렵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성동조선 구조조정에 관여했던 한 전문가는 "정부와 정치권이 산업 전략적 차원에서 확고한 구조조정 철학을 갖고 매각에 임했다면 결과는 달랐을 수 있지만 결국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며 "방향성 없는 희망고문보단 중장기적인 미래를 고려한 대안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