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지난주 노르웨이를 방문해 ‘수소경제’ 관련 협약을 맺었습니다. 노르웨이가 수소 생산 및 공급망 부문에서 앞서 있기 때문이죠. 우리나라는 올 1월 ‘2040년 세계 1위 수소 강국’ 달성을 국가 비전으로 제시했습니다.
그런데 문 대통령의 순방 기간 중 현지에선 곤혹스러운 일이 발생했습니다. 수도 오슬로 인근 수소충전소가 폭발했던 겁니다. 이 사고로 현지인 2명이 부상을 입었고 노르웨이는 즉각 10여 곳의 충전소를 폐쇄했습니다. 사고 원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요.
수소경제를 화두로 제시한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수소차 업계에도 커다란 충격을 줬습니다. 폭발 위험이 사실상 ‘제로’일 것으로 여겼는데 그렇지 않다는 점, 수소탱크 폭발이 주변을 초토화시킬 정도의 위력을 갖고 있다는 점에서지요. 현재 전세계에서 운영되고 있는 수소충전소는 모두 370곳에 불과합니다. 이 중 한 곳에서 사고가 났으니 확률상 작은 것도 아닙니다.
국내에서도 지난달 비슷한 일이 있었습니다. 강원 강릉에서 실증실험 중이던 수소탱크가 폭발해 인근 건물들까지 큰 피해를 입었지요. 퇴근시간 이후에 사고가 터지지 않았다면 사망자가 두 명에 그치지 않았을 겁니다.
사실 수소 자체는 위험하지 않습니다. 이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인 강정구 KAIST 신소재공학부 교수에 따르면, 수소는 산소와 결합하지만 않으면 가장 안정적인 분자 구조를 갖고 있습니다. 우주에서 가장 풍부하고 에너지 밀도 역시 높지요. 현재 생산되는 수소 탱크는 700바(bar)의 압력을 견딜 수 있는데, 안전 기준이 이보다 훨씬 낮기 때문에 이 기준만 제대로 지키면 폭발 위험은 거의 없는 게 사실이라고 합니다.
한국과 노르웨이에서 발생했던 사고는 저장 효율 때문에 상당한 수준까지 압축했던 수소가 어떤 원인에 의해 비정상적으로 산소와 결합했던 데 기인했을 개연성이 높습니다.
두 번의 사고는 에너지 저장장치(ESS) 화재를 떠올리게 합니다. ESS는 남은 전력을 모아뒀다 필요할 때 꺼내쓰도록 하는 장비인데 태양광 풍력 등 재생에너지 발전엔 필수이죠. 우리나라에서만 2017년 5월부터 2년간 총 23차례 화재가 발생했고, 전체 설비의 30~40%를 5개월 넘게 가동 중단해야 했습니다. 전세계 신규 설비의 3분의 1이 우리나라에 설치됐을 정도로 ‘과속’했던 게 이례적인 연쇄 사고로 이어졌다는 지적도 나왔구요.
우리나라는 수소경제 선도국으로 발돋움한다는 목표 아래 작년 말 기준 14곳에 불과한 수소충전소를 2022년까지 310곳으로 확대할 계획입니다. 2040년엔 1200곳으로 늘리기로 했지요. 수소차 외에 수소선박, 수소열차, 수소드론, 수소건설기계 등으로 수소 기술을 전방위로 적용하기로 했습니다.
‘수소경제’는 누구도 가보지 않은 길입니다. 무한한 청정 에너지 기술을 우리나라가 선도한다는 건 의미있는 일이죠. 하지만 이 과정에서 안전이 최우선돼야 합니다. 더욱이 우리나라 수소충전소는 노르웨이와 달리 도심 한가운데 상당수 들어설 겁니다. 단 한 번이라도 폭발하면 돌이킬 수 없는 사고로 이어지고, 수소경제의 동력 자체가 상실될 수 있습니다. 탈(脫)원전 선언 후 지속적으로 확대하고 있는 대체에너지 산업 자체가 타격을 받을 수 있습니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