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OM100 세미나
정갑영 연세대 前 총장·전문가 16인
《한국경제, 혼돈의 성찰》 출간
[ 성수영 기자 ] “정부의 경제정책은 형평성을 강조하면서 경제학의 기본 개념을 도외시한 측면이 있습니다. 이럴 때는 학계가 나서 목소리를 내야 하는데 논쟁도 실종됐죠. 최저임금 대폭 인상과 주 52시간제 도입 등에 따른 부작용이 속출하는 것도 이런 맥락입니다.”(정갑영 전 연세대 총장)
경제와 산업, 과학기술, 외교안보 분야의 전문가 100여 명으로 구성된 민간싱크탱크 FROM100(대표 정갑영)이 지난 2년간 토론을 통해 한국 사회가 당면한 위기와 기회를 분석하고 해법을 제시한 《한국경제, 혼돈의 성찰》을 출간했다. FROM100은 한국경제신문사와 공동으로 지난 13일 서울 한국생산성본부에서 출판기념회를 겸한 세미나를 열었다.
집필을 주도한 정갑영 전 총장은 “경제정책을 논의하는 공론장이 실종됐다는 문제의식에서 이번 책을 집필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이 책엔 저성장 고령화 등 한국 경제가 직면한 문제점에 대한 각 분야 전문가 16명의 고민과 분석이 담겼다.
정부와 국책기관, 학계의 토론 실종
정 전 총장은 “정부의 획일적 평등주의로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되레 심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난 5월 통계청이 발표한 1분기 가계동향조사에서 소득 1분위(하위 20%) 빈곤층 소득이 전년 동기 대비 줄어든 게 대표적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빈곤층의 기초연금 등 공적이전소득이 근로소득을 추월한 게 더 큰 문제”라며 “근로소득보다 이전소득이 늘면서 경제 주체들이 스스로 발전하려는 ‘경제 마인드’까지 실종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진짜 문제는 정부가 제대로 된 토론 없이 무리한 정책을 밀어붙인 것”이라고 강조했다. “과거에는 정부와 국책연구기관, 학계 등의 유기적인 토론을 통해 이 같은 오류를 사전에 막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공론장이 실종됐다”며 “경제학적 관점에서 장기적인 분배 개선의 해법은 교육을 통한 계층 이동을 활발하게 하는 것밖에 없다”고 덧붙였다.
그는 지금이라도 정부가 ‘형평성 지상주의’를 버려야 한다고 조언했다. 정 전 총장은 “최저임금 지역별 차등화 등 정부가 의지만 갖고 있다면 재정 투입 없이도 경제 상황을 개선할 정책은 많다”며 “장기 성장동력을 확보하고 미래에 대비하는 정책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과학적 논의할 수 있는 공론장 복구해야”
이날 세미나에선 “그동안 경제 현안에 침묵했던 경제학자들이 ‘경제정책의 혼돈’을 낳았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이인실 한국경제학회장(서강대 경제학부 교수)은 “한국의 미래 대비가 취약한 데는 학계의 책임도 크다”며 “지금이라도 과학적인 논의를 기반으로 정책을 결정할 수 있는 공론장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제 교육 행정 등 각 분야에 대한 전문가들의 정책 제언도 쏟아졌다. 박철성 한양대 경제금융학부 교수는 “정부는 고용, 교육 등 분야에서 문제가 불거지자 백화점식 종합대책으로 대응하고 있다”며 “본질적, 구조적 문제를 외면하지 말고 칼을 대야 한다”고 말했다.
최현정 아산정책연구원 글로벌거버넌스센터장은 “북핵 외에 미세먼지와 재난사고 등 각종 위협에 대처하려면 9·11 사태에서 미국이 보여준 것처럼 ‘유연한 종합특별대응’이 가능한 정부 구조를 구축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성호 중앙대 교육학과 교수는 “규제와 관치, 교육감 직선제 도입으로 인한 교육의 정치화 등이 교육 경쟁력을 갉아먹고 있다”며 “관 주도 교육정책의 틀부터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수영 기자 syo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