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빼든 정부…'채용 장사' 항운노조 독점 깬다

입력 2019-06-16 17:40
法 고쳐 복수노조 활성화
공정위 등 관련 부처 합의

직업안정법 시행규칙 개정 추진


[ 이태훈/성수영 기자 ]
정부가 항운노동조합의 독점적 지위를 깨기 위해 복수노조가 활성화되도록 제도를 개선한다. 인력(노무) 공급권을 독점한 항운노조가 파업하면 항만 물류가 전면 마비되는 등 국가 경제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부산항운노조 간부들이 조합 가입을 대가로 10억원을 수수했다가 최근 검찰에 적발되는 등 항운노조가 채용비리의 ‘온상’으로 지목된 점도 정부가 칼을 빼 든 이유다.

공정거래위원회 고위 관계자는 16일 “직업안정법 시행규칙에 따라 1년간 인력 공급 실적이 없으면 노조의 근로자공급사업권 허가를 취소할 수 있는데 이 조항의 삭제를 추진 중”이라며 “고용노동부 해양수산부 등 관계 부처도 큰 틀에서 합의했다”고 말했다.

직업안정법에 따라 항만 물류 작업은 항운노조 조합원만 할 수 있다. 항운노조는 일반 노조와 달리 고용부로부터 사업권을 받아 항만하역회사들에 근로자를 공급하는 사업자 지위도 가지고 있다. 복수노조가 허용됐음에도 그동안 각 항만의 기존 거대 노조가 인력 공급권을 사실상 독점하고 있었다. 새 노조가 생겨도 이들의 영업을 방해해 1년간 일감을 수주하지 못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공정위 관계자는 “1년 만에 사업권이 박탈될 수 있어 새 노조를 결성하려는 움직임이 활성화되지 않았다”며 “기존 노조 간부들이 ‘채용 장사’로 거액을 받을 수 있었던 것도 이 같은 독점적 구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항운노조 일감독점 폐해 커"…정부, 노동 적폐청산 나섰다

정부가 항운노동조합이 보유한 근로자 공급에 관한 독점 지위를 깨뜨리려는 것은 노조의 시장질서 교란이 도를 넘었다고 판단해서다. 거대 항운노조가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새 노조의 시장 진입을 막고, 일부 건설노조는 자기 조합원을 쓰지 않으면 공사를 방해하는 등 범법 행위까지 저지르고 있다. 노동계 적폐청산을 위해 정부가 칼을 빼들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항운노조가 독점적 지위를 이용해 파업을 하면 국내 항만 물류가 멈출 수 있다는 것도 정부가 제도 개혁에 나선 이유다.

폭력으로 복수 노조 방해

공정거래위원회 고용노동부 해양수산부 등 관계 부처는 항운노조의 독점을 깨기 위해 직업안정법 시행규칙 제42조 개정을 준비 중이다. 해당 조항은 ‘최근 1년 동안 근로자 공급 실적이 없는 항운노조의 경우 사업 허가를 취소할 수 있다’는 내용이다. 정부는 이 조항을 삭제해 항운노조가 1년간 일감이 없어도 허가를 취소하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항운노조는 다른 노조와 달리 인력 공급업을 하는 사업자 지위를 갖고 있다. 직업안정법에 따라 항만 하역 작업은 항운노조 조합원만 수행할 수 있어서다.

직업안정법 시행규칙 제42조는 그동안 기존 거대 항만노조의 독점 지위를 보장하는 데 악용됐다는 평가를 받는다. 기존 노조가 방해작업을 펼쳐 새 노조가 인력 공급 계약을 맺는 것을 1년만 저지하면 새 노조의 인력 공급업 허가를 취소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전국 항만에서 새 노조가 인력 공급 계약을 맺는 데 성공한 것은 2016년 울산의 온산항운노조가 유일하다. 하지만 이 계약마저 기존 노조인 울산항운노조의 방해로 파기됐다. 온산항운 노조원들이 바지선에 승선하려고 하자 울산항운 노조원들이 이들을 끌어내리는 등 폭력을 행사해 가로막았다. 결국 하역회사는 온산항운노조와의 계약을 해지하고 울산항운노조와 계약을 맺을 수밖에 없었다.

항운노조 간부들은 각 항만의 인력 공급권을 독점하며 각종 비리를 저질렀다. ‘항운노조 가입이 곧 취업’이기 때문에 조합원이 되고 싶어 하는 사람들로부터 금품을 받는 게 대표적이다.

검찰은 부산항운노조 전직 위원장 2명을 포함한 간부 14명이 노조 가입과 승진, 정년 연장 등의 이유로 총 10억여원을 받았다는 수사 결과를 지난 10일 발표했다. 이들은 노조 가입 시 3000만~5000만원, 승진 대가로 2000만~4000만원을 받았다. 작년 말에는 경찰이 강원 동해항운노조 위원장을 구속했다. 노조 가입을 대가로 4명에게서 총 8000만원을 받은 혐의다.

건설노조에도 칼 뺄까

정부가 항만 복수노조 활성화를 꾀하려는 또 다른 이유는 파업 우려 때문이다. 지금처럼 거대 노조가 인력 공급을 독점하면 이들이 파업할 경우 항만 물류가 멈출 수 있다.

2012년 울산항운노조는 한 민자부두 운영회사가 자체 인력만으로 하역작업을 하려 하자 총파업을 시도했다. 조합원 400여 명이 부두에 들어가 바리케이드를 치고 경찰과 대치해 항만 물류가 ‘올스톱’되기 직전까지 갔다. 정부 중재로 파업을 풀었지만 1인당 연봉 7200만원에 조합원 100명을 채용할 것을 회사 측에 요구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되기도 했다.

일각에서는 정부가 사실상 인력 공급업을 하는 건설노조의 불법 행위에도 칼을 댈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과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은 지난달 서울의 한 아파트 건설현장에서 자신들 소속 조합원을 고용해야 한다며 맞불 집회를 했고 이 과정에서 물리적 충돌이 일어났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우리 노조원을 채용하라’며 불법 폭력 행위를 일삼는 양대 노총 산하 건설노조도 사실상 인력 공급업을 하고 있다”며 “이들의 불법 행위를 엄단할 제도적 장치도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태훈/성수영 기자 bej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