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F같은 '1분 먹방'으로 밀레니얼 세대 사로잡다

입력 2019-06-13 17:50
경영탐구

창업 6년 만에 매출 180억
푸드 스타트업 쿠캣 성공 비결


[ 김정은 기자 ]
식빵을 자른 뒤 밀대로 펴고, 계란물을 만든다. 잘라놓은 식빵에 계란물을 묻혀 치즈 스틱을 감싸듯 만다. 달군 팬에 기름을 두르고 튀겨낸다. 한 입 베어 물면 치즈가 길게 늘어진다. 국내 한 스타트업(신생 벤처기업)이 제작한 40초짜리 이 동영상은 최근 조회수가 7500만 회를 넘었다. 미국, 브라질, 이탈리아 등 전 세계 젊은이들이 이 동영상을 보고 또 봤다. 요리하는 손만 등장할 뿐 설명도 없다. 빠른 속도로 음식을 만드는 직관적인 영상은 전 세계 미식가들을 사로잡았다. 레시피 동영상을 통해 이름을 알린 스타트업 쿠캣이 내친김에 식품사업에 뛰어들었다.

치밀하게 계획된 먹방 선두주자

2013년 페이스북 페이지로 첫선을 보인 쿠캣의 음식 동영상 ‘오늘 뭐 먹지?’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음식을 쉽고 빠르게 요리하는 영상 콘텐츠로 수많은 ‘먹방’ 동영상의 선구자적 역할을 했다. 크레이프 케이크 만들기(조회수 1500만 회), 깍두기 바비큐(1400만 회), 까로보 불닭(2100만 회) 등 기발한 영상은 줄줄이 히트했다. 쿠캣, 트립잇, 맛집뉴스, 돼지보스 출격 등 70개에 달하는 음식 채널을 구독하는 글로벌 누적 구독자 수는 2900만 명을 돌파했다.

1분짜리 짧은 영상 제작엔 엄청난 시간과 비용, 아이디어가 투입된다. 방송국 PD 출신과 푸드 스타일리스트 등 10여 명이 모여 브레인스토밍을 한다. 회사 지하에 음식 스튜디오를 차렸다. 보기 좋고 트렌드에도 맞는 음식을 선별해 조리하고, 이 과정을 찍는다. 아낌없이 투자하기 때문에 쿠캣의 음식 영상은 광고 CF 못지않게 감각적이란 평가를 받는다.

이문주 대표는 모바일 영상 시장이 급성장할 것이란 걸 일찌감치 예감했다. 그래서 스마트폰의 화면 크기를 고려해 영상을 기획하고 촬영했다. 유튜브를 비롯해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채널도 두루 활용했다. 해외 진출을 염두에 두고 여러 국가의 채널도 갖춰나갔다. 태국 채널에선 ‘말차 초콜릿 무스 케이크’, 홍콩에선 ‘계란 노른자 장’ 등 현지인을 위한 맞춤형 영상을 올렸다. 구독자 5명 중 4명은 해외에서 본다. 영상으로 승부하니 언어는 중요하지 않다.

밀레니얼 겨냥한 기발한 음식

플랫폼을 통해 사람들을 끌어모은 쿠캣은 식품사업으로 눈을 돌렸다. 이미 이 대표가 구상했던 수순이다. 최근 내놓은 자체상표(PB) 상품들은 독창적이어서 SNS에서 금세 화제가 됐다. 저렴한 가격 덕분에 시험적으로 사봤다가 재구매하는 식으로 히트 속도도 빠르다. 꼬막장, 대방어장, 딱새우장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햇반에 올려 비벼 먹을 수 있는 크기로 기획됐다. 대방어장은 회 뜨는 모습을 실시간 라이브 중계했다. 매일 새벽 산지에서 배송받고 마케팅 비용을 줄이는 등 유통구조를 단순화해 가격을 기존 제품보다 30% 낮췄다. 장 시리즈는 23만 개 판매됐다.

귀리 셰이크, 서리태 도시락, 곤약 메밀면 등 독특한 다이어트 제품 ‘띵커바디’도 선보였다. ‘맛있다’는 입소문을 타고 100만 개 넘게 팔렸다. 닭가슴살 제품은 상온에서 보관할 수 있다. 이 대표는 “우리 고객들은 자취생이 많아 냉장고 크기가 작다”고 설명했다. 족발로 만든 장조림, 닭볶음탕 국물에 곱창을 넣은 ‘곱도리탕’ 등도 인기다. 최근 백화점까지 진출했다. 지난 3월 롯데백화점 잠실점 식품관에 매장을 열었다.

판매하는 모든 제품은 음식 영상과 연계시킨다. 제품을 활용한 레시피 동영상을 제작한 뒤 구매 좌표를 붙여 SNS 채널에 업로드한다. 영상을 본 사람들은 홀린 듯 제품을 구매한다. 이 대표는 “쿠캣의 콘텐츠는 광고와 커머스 등 매출의 시작점”이라며 “다양한 음식 콘텐츠와 수많은 구독자가 우리만의 차별화된 경쟁력”이라고 강조했다. 1980년대 초반~2000년대 초반 출생한 밀레니얼 세대가 주요 소비자다. 이 대표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사회에 진출해 사는 게 힘든 세대”라며 “월급이 적기 때문에 가성비를 따지면서도 취향과 입맛은 까다로운 사람들”이라고 분석했다.

빠른 의사결정…이젠 해외로

사업의 시초는 이 대표의 고려대 재학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창업 수업을 들으면서 ‘모두의 지도’를 창업했다. ‘밤늦게까지 하는, 저렴하고, 콘센트 많은 카페’ 등을 검색어로 입력하면 딱 맞는 곳을 찾아 지도에 표시해주는 맞춤 서비스였다. 학생들에게 인기를 끌었으나 수익모델이 없어 한계에 부딪혔다. 그러던 중 투자자 멘토링 모임에서 당시 ‘오늘 뭐 먹지?’를 운영하던 파워블로거 출신 윤치훈 그리드잇 대표(현 쿠캣 최고마케팅책임자·CMO)를 만났다. 술자리에서 합병을 논의한 뒤 하루 만에 회사를 합쳤다.

이 대표는 “윤 CMO의 마케팅 능력과 내 기획력이 시너지를 내기 시작해 회사가 급성장했다”고 설명했다. 쿠캣의 전체 직원 70명 중 절반이 콘텐츠 크리에이터다. 젊은 회사답게 업무 속도가 빠르고 경쾌하다. 기획부터 출시까지 한 달도 걸리지 않는다. 종이로 된 보고서는 과감히 없앴다.

쿠캣의 시선은 벌써 해외로 향하고 있다. 해외 채널을 운영해 보니 ‘외국에서도 되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올해 베트남 지사를 설립한 뒤 동남아시아 시장을 공격적으로 파고들 계획이다. 이 대표는 “밀레니얼 세대를 공략한 감각적이고 창의적인 방법으로 전 세계 젊은이들의 눈과 입맛을 동시에 사로잡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김정은 기자 likesmi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