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 9년간 '희망고문'…자구노력 막은 노조…성동조선 파산 불렀다

입력 2019-06-13 16:58
수정 2019-06-14 09:24
성동조선 매각 끝내 불발
4조 혈세 받고도 파산 수순

3차 매각 본입찰 실패로 끝나
참여 3곳 자금능력 증명 못해


[ 박신영/황정환 기자 ]
회생절차를 밟고 있는 성동조선해양이 세 번째 매각을 위한 본입찰에서도 인수자를 찾지 못했다. 성동조선은 인수합병(M&A)이 유일한 살길로 예상됐던 만큼 3차 매각 실패로 파산 수순을 밟게 됐다.

창원지방법원과 매각주관사 삼일PwC회계법인은 13일 세 번째 성동조선 본입찰을 진행했다. 예비입찰에서 인수의향서(LOI)를 낸 투자자 세 곳이 본입찰에 참여했지만 자금 조달 능력을 증명하지 못해 매각이 무산된 것으로 알려졌다.

법원은 M&A 실패로 사실상 회생이 불가능해진 성동조선에 대해 지금까지 진행돼온 회생절차를 종결하거나 아예 직권파산시킬 수 있다. 법원이 직권파산 결정을 내리지 않고 회생절차만 끝내더라도 성동조선은 파산할 가능성이 크다. 채권자들이 앞다퉈 성동조선 자산을 가압류하는 과정에서 채권자 간 갈등이 생길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채무자 회생 및 파산에 관한 법’은 모든 채권자가 채권 규모와 상관없이 파산신청을 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불만을 가진 채권자 한 곳만 파산신청을 해도 성동조선은 문을 닫게 되는 구조다. 성동조선이 직접 자기파산을 신청할 수도 있다.

성동조선은 2011년 자율협약 이후 4조원이 넘는 공적자금을 받고도 생존하지 못한 대표적인 ‘구조조정 실패사례’로 남게 됐다. 현재 성동조선 직원 770명 중 650명 정도가 순환 무급휴직 중이다.


한때 수주잔량 세계 8위의 글로벌 조선업체였던 성동조선해양이 조선업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지난 7일 예비입찰에서 조선기자재업체 등 전략적 투자자(SI) 세 곳이 인수의향서(LOI)를 냈지만 이들 중 어느 곳도 본입찰에서 성동조선을 살 수 있는 자금능력을 증명하지 못했다. 성동조선은 13일까지 인수자를 찾아 회생계획안을 낼 계획이었지만 결국 ‘마지막 시도’는 무산됐다.

법원은 기존에 정한 회생계획안 가결 기한인 10월 18일 전에 성동조선에 대해 회생절차 폐지 혹은 직권 파산 결정을 내릴 것으로 예상된다. 다시 매각을 시도하기엔 물리적으로 시간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인공호흡기로 연명한 성동조선

성동조선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파생상품 거래손실 등으로 유동성이 부족해진 상황에서 조선업 불황으로 신규 수주 부진까지 겹쳐 위기에 빠졌다. 중국 조선소들이 저가 수주로 치고 올라오면서 경영 상황은 더 악화됐다. 2010년 4월엔 채권단 자율협약에 들어갔고, 지난해 4월엔 법원 회생절차에 돌입했다.

성동조선이 2010년 자율협약에 들어간 뒤 채권단은 성동조선에 대해 열 차례나 실사를 했다. 청산가치가 존속가치보다 높게 나왔을 때조차 회계법인을 바꾸는 방식으로 자금 지원을 위한 근거를 만들었다. 업계에서는 지역 여론을 의식한 정치권과 이들 눈치를 보는 정부 및 금융기관들이 성동조선에 대한 결단을 내리지 못했다고 해석한다. 성동조선을 파산시킬 경우 돌아오게 될 정치적 책임을 피하기 위해 ‘묻지마 투자’를 지속했다는 비판이다. 채권단은 2010년 성동조선에 신규 자금만 2조7000억원가량을 지원했다. 출자전환한 금액도 1조5000억원에 이른다. 그간 해온 선수금환급보증(RG)은 5조4000억원 규모다.

한 업계 관계자는 “성동조선이 다시 경쟁력을 가질 가능성이 낮은데도 책임지고 성동조선을 처리할 사람이 없었다”며 “국민 혈세로 인공호흡기를 유지해온 것이라고 보면 된다”고 지적했다.

회생절차 이후에도 이어진 매각실패

지난해 4월 회생절차에 들어간 이후에도 성동조선의 상황은 더욱 악화되기만 했다. 지난해부터는 수주실적 ‘0’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글로벌 조선업 경기가 좋지 않았던 데다 은행들도 법정관리 기업이란 이유로 RG를 발급해주지 않았다.

성동조선 자구노력도 부족했다. 인력 구조조정에 실패한 데다 기술력도 경쟁사에 비해 떨어졌다. 지난해 성동조선에 대한 외부컨설팅 결과 당시 1200명이던 인력을 400명 이하로 줄이라는 조언이 나왔다. 성동조선은 회생절차 개시 후 희망퇴직을 통해 인력을 800명 수준으로 줄이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이후 정치권과 노조 반대에 직면해 남은 인력을 정리해고하는 대신 2020년 12월까지 무급휴직 처리하는 것으로 결론내렸다.

매각도 연이어 실패했다. 지난해 10월 첫 인수합병(M&A) 입찰에서는 아무도 LOI를 내지 않았다. 올해 2월 진행된 2차 공개입찰에서는 투자자 세 곳이 LOI를 냈지만 자금조달에 난항을 겪으며 본입찰에 나서지 못했다. 13일 열린 세 번째 본입찰도 2차 매각전과 마찬가지로 예비입찰에 응했던 투자자들이 자금조달 능력을 증명하지 못해 무산됐다. 한 조선업체 관계자는 “현대중공업도 수주 목표치를 채우지 못해 부진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성동조선 투자자를 모집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파산 수순 가나

성동조선이 법원에 실현 가능한 회생계획안을 내기 힘들어진 만큼 파산 수순을 밟을 가능성이 커졌다. 법원은 회생계획안을 받기로 한 10월 18일 이전에 성동조선에 대한 회생절차를 폐지하거나 직권 파산시킬 수 있다.

금융업계에선 회생절차가 폐지되면 성동조선이 ‘아노미 상태’에 빠질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채권에 대한 동결 조치가 무효화되기 때문에 모든 채권자가 성동조선 자산에 대해 압류·추심에 들어간다. 성동조선 노조는 정책금융기관 등의 자금지원을 요구했지만 거절당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원이 직권 파산시키지 않는다면 채권자들이 파산신청을 할 수도 있다. 누가 결정을 하느냐에 상관없이 성동조선은 파산절차에 들어가면 채무 일부를 탕감받고, 남은 자산을 팔아 부채를 갚게 된다. 한 채권자는 “다른 채권자들과 법적 갈등을 일으키는 것보다는 파산을 통해 질서 있게 채무가 정리되길 바라는 채권자가 많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신영/황정환 기자 nyuso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