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욱의 일본경제워치] 도요타가 실적 개선에도 보너스를 삭감하고 나선 이유는

입력 2019-06-13 09:54
수정 2019-06-13 09:58

일본 최대 자동차 제조사인 도요타자동차가 올해 대폭적인 수익개선이 예상됨에도 불구하고 관리직 직원들의 여름 보너스를 삭감키로 했습니다. 도요타자동차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보너스에 손을 대지 않아왔던 회사인데요. 실적개선에도 불구하고 이례적으로 보너스를 줄이기로 한 것은 자율주행차와 전기차 등 차세대 자동차 개발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회사의 모든 자원을 미래투자에 집중키로 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당장의 수익은 늘고 있지만 향후 몇 년 후 생존을 장담할 수 없는 위기감이 크다는 데 노사가 인식을 같이하고 있다는 설명입니다.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도요타자동차는 과장급 이상 관리직 9800여명의 올 여름 보너스를 전년 대비 평균 4~5%가량 삭감키로 했습니다. 과장급 기간직 7500명과 부장·차장급 간부직 2300명이 보너스 삭감 대상이라고 합니다.

외부 지표만 보면 도요타자동차는 보너스를 깎을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오히려 보너스를 올리는 게 정상으로 보입니다. 글로벌 시장에서 도요타의 자동차 판매 실적은 견조하고, 이익도 꾸준히 늘고 있기 때문입니다. 도요타는 2018회계연도(2018년 4월~2019년 3월)에 매출이 전년 대비 2.9%늘어난 30조2256억엔(약 329조9600억원)을 기록했습니다. 일본 기업 최초로 연간 매출 30조엔을 넘어섰던 것입니다. 2019회계연도 총이익도 전년 대비 19.5%증가한 2조2500억엔(약 24조5600억원)에 이를 전망입니다.

하지만 도요타자동차가 보너스 삭감이라는 강수를 선택한 것은 자율주행차와 전기차 등 미래차 분야의 글로벌 경쟁이 격화되고 있어 이 분야에 사측의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구글이나 애플 같은 다른 업종 대기업들까지 자동차시장의 새로운 경쟁자로 등장하면서 시장판도가 요동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자동차 산업이 더 이상 ‘지금까지의 연장선’이 될 수 없는 변혁의 시기를 맞이했다는 판단인 것입니다. 이 같은 자동차 산업을 둘러싼 급변화를 두고 회사가 ‘위기 상황’이라는 것에 관리직 사원들도 같은 생각이라는 설명입니다.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도요타 직원들은 “단순히 인건비 절감을 하자는 차원이 아니라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무엇을 하지 않으면 안 되나’를 고민한 차원에서 나온 결정”이라며 위기의식으로 공유하고 있다고 합니다. 사측도 “도요타는 문제없어”라고 얘기하는 것이 가장 위험한 발언이라며 경각심을 늦추지 않는 모습입니다.

판매량과 기술력에 있어서 세계 선두권인 도요타자동차의 이 같은 위기 대응 행보는 매우 이질적인 느낌이 납니다. 각종 지표가 위기를 가리키고 있고, 업황과 기업실적이 좋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파업과 높은 임금인상 요구가 이어지고 있는 한국 자동차 업계 행보와는 매우 대조적인 모습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도요타의 행보가 단순한 ‘엄살’이나 ‘부자 몸조심 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한국 자동차 업계가 도요타 보다 더 긴장감을 가져야 할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도쿄=김동욱 특파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