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 약사 밥그릇 싸움 되나
[ 전예진 기자 ]
정부가 복제약(제네릭) 이름을 통일하는 방안을 추진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예컨대 화이자의 발기부전 치료제 ‘비아그라’를 복제한 한미약품의 ‘팔팔’, 대웅제약 ‘누리그라’, 종근당 ‘센글라’ 등을 모두 비아그라의 성분명을 따서 제품명을 ‘회사명+실데나필 시트르산염’으로 바꾸려는 것이다. 국제일반명(INN)을 도입하면 제네릭 관리와 수출이 수월해진다. 그러나 의료계는 의사의 처방권을 침해하고 소비자의 혼란을 가중시킬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고혈압약 사태가 촉발한 복제약 개명안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오는 18일까지 ‘제네릭 의약품 관리방안 마련을 위한 연구’를 수행할 연구자를 공모한다. 의약품 제품명 대신 성분명을 사용하는 국제일반명 도입을 준비하기 위해서다. 국제일반명은 하나의 성분에 세계적으로 동일한 명칭을 사용하도록 하는 제도로 세계보건기구(WHO)가 1953년 도입했다. 의약품을 사용할 때 혼란을 막고 정보 전달력과 편의성을 높이기 위한 취지다.
일부 국가는 WHO와 별도로 자국 내 의약품 명칭을 고려한 성분명 체계를 두고 있다. USAN(미국), BAN(영국), JAN(일본) 등이 대표적이다. 한국은 아직 체계가 없다. 영문명은 국제일반명을 따르기도 하지만 제약사마다, 제품마다 다르다. 지난해 문제가 된 고혈압약 발사르탄 제제의 경우 복제약 제품명이 디오르반, 바레탄, 발사닌, 사디반 등으로 다양해 제품을 전수조사하거나 회수할 때 어려움이 있었다. 환자들도 자신이 발사르탄 성분의 의약품을 복용하는지 모르는 사례가 많았다.
국제일반명을 도입하면 복제약 이름은 ‘제조사+성분명’으로 바뀐다. 이렇게 되면 환자들이 의약품 성분을 쉽게 알 수 있게 된다.
찬성하는 약사, 반대하는 의사
제약사들은 복제약 마케팅에 큰돈을 쓰지 않아도 된다. 복제약은 성분이 똑같다 보니 센스있는 ‘작명법’으로 차별화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 때문에 의사와 환자에게 각인되기 쉬우면서 오리지널과 비슷한 제품명을 선점하기 위한 경쟁이 치열했다. 확고한 브랜드 인지도가 있는 제품을 보유한 제약사들은 국제일반명에 반대하고 있다. 그동안 영업과 마케팅에 들인 노력이 수포로 돌아갈지 모른다는 우려에서다.
의료계도 의사의 처방권 침해라며 반발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최근 성명을 내고 국제일반명의 국내 도입을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의협은 “국제일반명 도입은 제네릭 의약품 정보에 대한 혼란만 가중시켜 환자의 선택권과 의사의 처방권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국제일반명 도입이 성분명 처방 제도를 도입하기 위한 꼼수라는 지적도 나왔다. 성분명 처방은 의사가 의약품을 처방할 때 제품명 대신 성분으로 처방하고 약사가 해당 성분의 제품을 환자에게 조제해주는 방식이다. 의약품 처방 권한이 의사에서 약사로 넘어가는 것이다. 의협은 복제약과 오리지널의 효능이 동등하지 않기 때문에 교체 사용이 어렵다며 성분명 처방을 반대해왔다.
그러나 약학계는 국제일반명과 성분명 처방은 다른 제도라고 반박하고 있다. 성분명 처방은 처방과 조제에, 일반명은 의약품 개발과 허가에 영향을 미친다는 설명이다.
업계는 국제일반명 도입이 쉽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성분명 처방제는 노무현 정부 때부터 검토해 시범사업까지 완료했지만 의사와 약사의 이권 다툼으로 무산됐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국제일반명은 단순히 복제약 이름을 바꾸는 데 그치지 않고 의약품 시장을 둘러싼 첨예한 대립이 얽힌 문제”라며 “의사와 약사 간 제2의 의약분업 사태로 비화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전예진 기자 ac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