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광엽의 논점과 관점] 실패한 '좌파 포퓰리즘' 따라가나

입력 2019-06-11 17:53
백광엽 논설위원


[ 백광엽 기자 ] 소득주도성장은 “ILO가 권하고 세계적으로 족보가 있는 이론”이라는 게 문재인 대통령의 지론이다. 이런 ‘ILO 족보설’에 대해 전문가의 십중팔구는 부정적이다. ‘소주성’ 주창자들이 ILO 보고서를 제대로 읽지도 않은 듯하다는 냉소적 반응이 상당하다. 범여권 인사인 김대환 전 고용노동부 장관이 “어설픈 진보와 개념 없는 정치가 만나 족보 없는 소주성을 만들어냈다”고 직격탄을 날릴 정도다.

당최 출생지를 알 수 없는 소주성의 족보를 짐작해 볼 수 있는 일이 벌어졌다. “국가채무비율 40%를 지켜야 할 근거가 있느냐”며 문 대통령이 홍남기 부총리를 질책한 바로 그 사건이다. ‘사회 후생을 극대화하는 최적 재정을 지향한다’는 오랜 나라살림의 원칙을 도발한 것이어서 당혹스럽다. 동시에 안드레아스 파판드레우 전 총리가 주창해 그리스를 국가 부도로 몰고 간 ‘파속(PASOK) 모델’과 소주성이 깊은 연관이 있다는 심증을 굳혀준다.

'그리스 포퓰리즘' 닮은 소주성

하버드대 경제학박사 파판드레우는 ‘범그리스 사회주의 운동(PASOK)당’을 출범시켜 그리스 첫 좌파정부를 세운 마르크스주의자다. 집권 8년(1981~1989) 내내 국채 발행을 통해 보편적 복지 강화, 공공부문 확대, 정부개입 강화 등 국가주의 정책을 밀어붙였다.

결과는 파괴적이었다. 집권 전 50여 년(1929~1980년) 동안 연 5.2%로 세계 1, 2위를 다투던 경제성장률은 집권 후 8년 평균 1.5%로 추락했다. 집권 직전 22%이던 국가부채비율은 집권 마지막 해엔 80%로 치솟았다.

‘파속 모델’을 뜯어보면 소주성과 너무 닮아 놀라게 된다. 파속당은 해고를 제한하고 노조를 포섭하는 전략을 썼다. ‘하역비’를 신설해 야채시장 노조의 이권을 챙겨주는 식이었다. 민노총과 한노총에 치우쳐 약자들을 더 궁지에 모는 문재인 정부의 ‘친노조’ 행보가 연상된다. 공공부문 확대에 집착하는 점도 똑같다. 민간보다 임금이 평균 60%나 높은 그리스 공무원은 인구의 27%까지 늘어났다. 한국도 지난 2년간 공무원 4만2000명을 뽑았고, 공약대로 총 17만 명이 증원되면 앞으로 30년 동안 327조원의 급여와 92조원의 연금이 들어갈 것이라는 경고가 나와 있다.

‘파속’은 요즘 EU를 떠들썩하게 달구는 스페인 포데모스, 이탈리아 오성운동, 프랑스 국민연합 등 ‘유럽 포퓰리즘’의 원조다. 이들은 엘리트들을 부패세력으로 몰고, 대중을 ‘고귀한 집합체’로 결집시켜 성공한 파속의 배제와 편가르기 전략을 벤치마킹하고 있다.

'미래세대 착취' 여기서 멈춰야

포퓰리즘의 가장 큰 무서움은 포퓰리즘의 악순환을 부른다는 점이다. 정권을 되찾은 그리스 우파 신민당이 더 사회주의적인 정책을 쏟아내며 국가 부도를 재촉한 데서 잘 드러난다. 좌파 포퓰리즘의 필연적 코스인 ‘재정 둑 허물기’로 눈을 돌린 소주성에 대한 걱정이 커지는 이유다. 대통령 질책 2주 만에 홍 부총리는 38%인 국가채무비율을 2022년 45%까지 높이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역산해 보면 작년 말 680조원이던 나랏빚이 2022년 956조원으로 4년 만에 41% 급증한다는 의미다.

나랏빚은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 “외환위기를 극복한 원동력도 당시 국가부채비율이 11%에 불과해 대규모 공적자금 동원이 가능했기 때문”(김석동 전 금융위원장)이었다. ‘돈을 무차별로 풀어도 된다’는 현대통화이론(MMT)이 최근 등장했지만, 기축통화국에서나 논의해볼 수 있는 주제다. 한국의 적정채무비율은 20~60%라는 게 대다수 연구의 결론이다. 정치적 고려로 나랏돈을 허투루 쓰는 것은 미래세대에 대한 착취이자 유권자로부터 부여받은 ‘5년짜리 선량한 관리자’ 의무에 대한 배임이다.

kecor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