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인 규명돼 다행"…한숨 돌린 배터리 업계, 하반기부터 사업 재개

입력 2019-06-11 17:43
인증절차·설치기준 강화에
비용 올라 수익성 악화 우려도


[ 고재연 기자 ] “원인 규명과 안전 기준 마련으로 시장의 불확실성이 해소됐다.”

‘민·관합동 ESS(에너지저장장치) 화재사고 원인조사위원회’가 11일 조사 결과와 대책을 발표하자 배터리업계 관계자들은 이렇게 입을 모았다. 배터리셀 결함이 화재의 직접적인 원인은 아니라고 정부가 발표하면서 관련 업계가 한숨을 돌린 모습이다.

ESS업계는 올해 ‘고난의 시간’을 보냈다. 화재사고의 원인 규명이 1년 가까이 늦어지면서 신규 ESS 발주가 ‘올스톱’됐기 때문이다. 관련 생태계도 고사 위기에 처했다. ESS 관련 사업에는 △시공사(KT, LG CNS) △배터리 제조업체(삼성SDI, LG화학) △전력변환장치(PCS) 생산업체(효성중공업, LS산전)뿐만 아니라 수배전반, 전기공사를 담당하는 영세 업체가 모여 거대한 생태계를 이루고 있다. 관련 업체는 200여 곳에 달한다.

정부의 대책 발표로 업계는 하반기부터 사업을 재개할 수 있게 됐다. 정부는 이달 중순 내놓을 ‘사용 전 검사’ 기준에 ESS 설치기준 개정사항을 우선 반영해 하반기 신규 발주에 차질이 없도록 할 예정이다. 어규진 이베스트증권 연구원은 “상반기 부진했던 삼성SDI의 ESS 매출이 6월 이후 재개될 경우 하반기 매출이 약 206% 증가하는 등 실적이 호전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삼성SDI와 LG화학 등 주요 대기업은 정부가 KC인증을 의무화하고 안전 조치를 강화하는 데 대해서도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한 배터리업체 관계자는 “새로운 산업이 정착하는 과정에서 ‘좋은 예방 주사’를 맞은 것으로 받아들인다”며 “이 같은 성장통을 통해 ESS산업 경쟁력이 한층 강화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업계도 자발적으로 배터리 안전성을 높일 수 있는 투자를 하고 있다. LG화학은 배터리에 불이 붙었을 때 자체적으로 진화가 가능한 모듈을 개발 중이다.

PCS업계 등 일각에서는 아쉬움도 드러냈다. 각종 인증 절차와 설치 기준을 강화하면 전반적으로 비용이 올라가고, 업체의 수익성은 나빠질 수 있어서다. 위원회가 사고 원인을 한 곳으로 좁히는 대신 제조 결함, 설치 부주의, 관리·운영 부실 등 ESS업계 전반의 문제를 지적하면서 대책의 실효성이 떨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왔다.

위원회는 ‘주요 원인’으로 추정된 특정 배터리업체의 셀 결함 의혹에 대해 “일부 셀에서 결함이 발견됐으나 이를 모사한 시험에서 배터리 자체 발화로 이어지진 않아 개별 업체에 책임을 묻지는 않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이에 대해 삼성SDI는 “조사위원들이 배터리 생산 라인을 직접 확인한 뒤 자사 배터리셀에 결함이 없다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LG화학 관계자는 “이미 조사 과정에서 개선 조치를 끝낸 사항”이라고 했다.

고재연 기자 ye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