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코노미] 산정방식만 바꿨을 뿐인데…분양가 수천만원 더 내려간다

입력 2019-06-11 10:57
HUG, 평균분양가 계산방식 산술평균→가중평균
3.3㎡당 200만원 안팎 낮아질 듯…후분양 선회도



서울과 과천, 부산 등지에서 공급되는 아파트의 분양가격이 수천만원가량 내릴 전망이다. 분양보증기관인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평균분양가 산정 방식을 완전히 바꾼 영향이다. 그동안은 가격이 낮은 주택형 한두 가구를 끼워넣는 식으로 평균분양가를 낮추는 ‘꼼수’가 가능했다. 하지만 앞으론 가구수가 반영된 가중평균 방식으로 분양가를 계산해야 한다.

◆산술평균 분양가→가중평균

HUG가 발표한 ‘고분양가 사업장 심사기준 개선안’은 새 아파트 평균분양가를 주변 분양 단지나 시세의 100~105%로 낮추는 게 골자다. 고분양가 사업장이란 서울 모든 자치구와 과천, 부산 해운대·남·수영·연제·동래구다. 종전엔 이들 지역에서 110%의 비율이 적용됐다.

이번 개선안에선 분양가 기준 하향 외에도 평균 분양가격 계산 방식이 완전히 바뀌었다. HUG는 그동안 평균분양가를 따질 때 단순산술평균을 썼다. 하지만 이 방식은 가구수가 반영되지 않아 분양가 착시가 발생한다. 3.3㎡(평)당 분양가가 낮은 대형 주택형 한두 가구를 끼워넣으면 전체 평균을 낮출 수 있다. 이 때문에 앞으론 산술평균이 아닌 가중평균으로 평균분양가를 계산하겠다는 게 HUG 방침이다.

분양가 계산 방식이 산술평균에서 가중평균으로 바뀌면 평균분양가는 크게 변한다. 예컨대 3.3㎡당 3200만원짜리 주택형 50가구와 3000만원짜리 주택형 50가구, 2600만원짜리 주택형 1가구를 분양하는 아파트의 산술평균 가격은 3.3㎡당 2933만원이다[(3200+3000+2600)÷3]. 가구수가 아니라 주택형의 숫자로 평균을 계산하기 때문에 1가구밖에 없는 3.3㎡당 2600만원짜리 주택형이 전체 평균을 왜곡하는 셈이다. 하지만 가중평균을 적용하면 이 같은 꼼수는 막힌다. 전체 가구수를 반영하면 3.3㎡당 3095만원이란 계산이 나온다[(3200×50+3000×50+2600×1)÷101].


최근 서울과 과천 등에서 분양한 아파트들의 경우 가중평균을 적용하면 기존에 발표된 평균분양가와 많게는 3.3㎡당 300만원 가까이 차이가 벌어진다. 지난 4월 분양한 서울 일원동 ‘디에이치포레센트’는 ‘110% 룰’을 적용받아 3.3㎡당 평균 4569만원에 분양했다. 하지만 이 단지의 가중평균 가격은 3.3㎡당 4847만원으로 산술평균보다 278만원 높다. ‘방배그랑자이’는 4687만원에서 4901만원으로, ‘과천자이’는 3253만원에서 3436만원으로 높아진다. 강북도 예외는 아니다. 연초 분양한 ‘e편한세상청계센트럴포레’의 경우 산술평균은 3.3㎡당 2600만원이지만 가중평균을 적용하면 2742만원이 된다.

HUG가 개선안을 내놓은 건 이 같은 실질 분양가의 수준을 크게 낮추겠다는 의도다. 가중평균 기준으로 주변 분양단지나 시세의 100~105%에 맞춘다면 새 아파트의 분양가는 종전 대비 수천만원가량 낮아질 전망이다. 평균을 낮추기 위해 모든 주택형의 분양가 조정이 불가피해서다. 평균분양가가 3.3㎡당 200만원 낮아질 경우 전용면적 84㎡(공급면적 114㎡) 기준 6800만원가량 가격이 조정된다.

◆“후분양 늘면 수분양자만 손해”

전문가들은 이 같은 분양보증 심사기준 개선으로 후분양 단지가 급격히 늘어날 것이라 보고 있다. 이상우 유진투자증권 연구위원은 “올해와 내년 분양 예정이던 주요 정비사업단지들이 분양가 규제를 피하기 위해 후분양으로 돌아서게 될 것”이라며 “결국 이 기간 동안 서울의 주택공급에 공백이 생긴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아파트를 분양하기 위해선 반드시 분양보증을 받아야 한다. 건설사가 부도가 나더라도 수분양자들의 분양대금을 돌려줄 주체가 필요해서다. 정부는 이런 점을 이용해 보증기관인 HUG를 통해 우회적으로 분양가를 통제해왔다. 하지만 재건축·재개발 단지들이 후분양 방식을 채택할 경우 HUG의 분양보증을 받지 않아도 된다. 현행 ‘주택공급에 관한 규칙’은 후분양 방식의 분양보증은 두 곳 이상의 일반건설사업자가 연대보증을 서도 되도록 규정하고 있다. 건설사 두 곳이 손잡으면 분양가 규제를 피해 가격을 책정할 수 있는 셈이다.

이 때문에 벌써부터 강남권 주요 단지들이 후분양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다. 분양가를 높여 받으면 조합과 건설사 입장에선 나쁠 게 없다. 하지만 수분양자 입장에선 부담이 크다. 비용이 증가하는 사업 방식이어서다. 선분양의 경우 착공과 동시에 분양을 진행하면서 일반분양자들의 계약금과 중도금 등으로 공사비를 조달한다. 그러나 후분양을 하면 금융권 PF(프로젝트 파이낸싱)로 막대한 돈을 끌어와야 한다. PF 이자가 반영되면서 분양가는 오를 수밖에 없다.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주변 시세가 오른다면 이 또한 분양가에 반영된다. 계약부터 입주까지 수개월 안에 진행되기 때문에 짧은 기간 동안 수억원의 자금을 조달해야 하는 수분양자의 부담은 더욱 크다.

재건축·재개발 단지들이 후분양을 하려면 총회 의결을 거쳐야 한다. 현재까지 조합 총회에서 정식으로 후분양이 결정된 곳은 ‘과천주공1단지’가 유일하다. 한 대형 건설사 정비사업팀 관계자는 “강남권 단지들의 경우 총회에 후분양 안건이 상정되더라도 통과가 낙관적이지만 강북은 사정이 다르다”며 “높은 분양가를 책정했다간 자칫 미분양까지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분양가가 낮아지는 만큼 이를 보전하기 위해 건설사와 조합들이 다른 꼼수를 부릴 가능성이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한 건설업계 관계자는 “기존엔 분양가에 포함되던 기본 마감재를 옵션으로 돌리거나 발코니 확장 비용 등이 크게 오를 수도 있다”며 “자동차에 비유하면 기본사양만 갖춘 ‘깡통차’가 나오는 셈”이라고 전했다.

전형진 기자 withmol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