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수지 기자 ]
내년부터 주 52시간 근로제를 도입해야 하는 중소·중견기업 열 곳 중 여섯 곳 이상이 지금껏 아무런 대응을 못 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주 52시간 근로제를 인력 충원으로 극복하겠다는 기업은 30%를 밑돌아 고용 창출 효과도 기대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한국경제신문이 주 52시간 근로제 확대 시행에 대한 기업들의 준비 상황을 짚어보기 위해 지난 3일부터 나흘간 설문조사한 결과 내년부터 근로시간을 단축해야 하는 기업 118곳 가운데 77곳(65.2%)은 ‘손도 못 대고 있다’고 응답했다. ‘잘되고 있다’고 한 비율은 11.9%(14곳)에 불과했다. 75곳(63.6%)은 이렇다 할 보완책이 마련되지 않으면 주 52시간 근로제를 적용하기 어렵다고 답했다. 주 52시간 근로제를 일률적으로 확대 적용했을 때 산업 현장의 혼란이 적지 않을 것으로 우려되는 대목이다.
설문조사에는 내년 1월 주 52시간 근로제 적용을 앞둔 118개 기업을 포함해 모두 201개 기업이 참여했다. 이들은 주 52시간 근로제가 도입될 경우 가장 걱정되는 것으로 ‘납품기한이나 연구개발(R&D) 일정이 늦춰질 수 있다’(36.4%)는 점을 꼽았다. ‘추가 인건비 부담’이라고 응답한 회사는 33.1%였다. 근무시간 관리에 부담을 느낄 것이란 의견도 23.7%에 이르렀다. 주 52시간 근로제를 어기면 기업주가 최대 징역 2년형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주 52시간 안착 위해선 탄력근로 기간 크게 늘려야"
기업인들은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대응책으로 현재 인력을 유지하면서 생산성을 높이겠다고 밝혔다. 111곳(55.2%, 복수 응답 가능)이 집중 근무시간 운영 등을 통한 생산성 향상으로 주 52시간 근로제를 극복해 보겠다고 답했다. 64개 기업(31.8%)은 아웃소싱을 거론했다.
인력 충원을 고려하겠다는 기업은 53곳(26.4%)으로, 자동화 설비투자를 늘리겠다는 응답(51곳, 25.4%)을 근소한 차이로 앞섰다. 응답 회사 중 25곳(12.4%)은 해외 설비 이전을 대응 방안으로 제시했다. 생산량을 줄이겠다고 응답한 기업도 19곳(9.5%)으로 조사됐다.
중소·중견기업들은 주 52시간 근로제가 현실성을 갖추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보완책으로 탄력적 근로시간제의 확대를 꼽았다.
108개 기업(53.7%)이 현재 3개월인 탄력근로제의 단위기간을 늘려달라고 요구했다. 지금은 3개월 평균 노동시간을 1주일 단위로 환산했을 때 52시간을 넘지 못하도록 하고 있는데 이를 6개월이나 1년 평균으로 확대해달라는 얘기다. 설문조사에 참여한 한 기업 대표는 “탄력근로 기간이 너무 짧아 주문이 몰리면 납기를 맞추기 쉽지 않다”고 말했다.
노사가 합의하면 특별 연장근로를 허용하는 방안도 응답 기업의 절반(101곳, 50.2%)이 필요하다고 봤다. 현행 1개월인 선택적 근로시간제 연장(44곳, 21.9%), 연장근로수당 등 가산임금 할증률 조정(33곳, 16.4%) 등도 보완책으로 꼽혔다.
나수지 기자 suj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