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영설 논설위원
[ 권영설 기자 ]
당대에 창업해 세계적 기업으로 우뚝 서는 사례가 속출하는 기회의 시대다. 비즈니스 세계뿐 아니다. 무명작가가 쓴 판타지 소설이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 세계 출판시장을 흔들어 놓는다. 그런가 하면 동영상 사이트에선 오늘도 세계적인 스타들이 새롭게 등장하고 있다.
부의 재편이 이뤄지는 멋진 현장을 모두가 목격하고 있는 셈인데 주위를 보면 그런 꿈을 꾸는 기업인이나 개인을 만나기가 참 어렵다. ‘남의 일’로 취급하는 경향이 크다. 성공을 이룬 사람들을 머리 좋고, 학벌 좋은 ‘천재’로 간주한다는 얘기다. 마이크로소프트(MS)를 창업한 빌 게이츠, 페이스북을 만든 마크 저커버그 등이 언급되면 ‘하버드 출신이니까’ 하는 식이다. 도전하지 않아도 될 이유를 대는 2류의식이라고밖에 할 수 없다.
창의성은 열정과 끈기의 산물
최근 저작들은 이런 소위 천재들이 타고난 자질이 아니라 끈기와 열정 그리고 피나는 노력으로 성취를 이뤄냈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해리 포터》를 쓴 조앤 롤링의 얘기가 대표적이다. 허름한 카페에서 글을 쓰며 매주 68파운드의 정부 지원금으로 버티던 그가 ‘어느 날 갑자기’ 떠오른 영감으로 《해리 포터》를 쓴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는 다르다. 가족사가 복잡했던 그는 어릴 때부터 침실에 틀어박혀 닥치는 대로 책을 읽는 것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대학 시절에는 너무 많은 책을 빌려 읽다가 대여기한을 넘겨 툭하면 벌금을 물어야 했다.
물론 어느 날 그녀에게도 영감이 왔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일 뿐이었다. 그 영감을 작품화할 구상을 하는 데 5년이 걸렸다. 구상에 구상을 거듭해 7편으로 쓰기로 했고, 모든 작품에 필요한 플롯 노트를 따로 작성했다. 얼마나 다듬었던지 첫 번째 책 제1장은 변종만 15가지를 써놨을 정도였다. 에피소드 하나에 관해 물어보면 문이 몇 개 있고 문마다 어떻게 다르게 생겼는지 줄줄 설명할 수 있었다고 한다. 아이디어를 5년 동안 다듬고 또 다듬어 완벽한 히트상품을 ‘기획’한 것이다. 그 노력을 상상해보라.
최근 ‘기생충’으로 칸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받은 봉준호 감독의 사례도 같은 맥락이다. 그는 단순히 각본을 쓰고 ‘필’대로 감독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쓴 각본의 모든 장면을 만화로 그려 배우들에게 보여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콘티를 직접 그려 배우와 스태프에게 공유할 정도라면 그는 이미 그 영화를 머릿속에 다 그려놓고 있는 것이다.
아이디어 꽃피울 인재 키워야
사실 게이츠도 창업 전 7년간 쉬지 않고 프로그래밍을 한 것이 MS 성공의 밑천이었다. 저커버그도 더 완성도 높은 경쟁모델 ‘캠퍼스네트워크’가 있었지만 끊임없이 자신의 구상을 수정하며 페이스북을 1등으로 올려놨다. 비틀스는 독일 함부르크의 3류 클럽에서 매일 연주했던 수년간의 ‘훈련’ 덕분에 세계를 놀라게 할 수 있었다. 우리가 하늘이 낸 천재라고 알고 있는 모차르트조차 600여 곡을 작곡하며 시행착오를 거듭했다. 아인슈타인 역시 논문을 248편이나 쓴 열정적인 노력파였다.
비즈니스 세계에 머리로만 성공한 천재는 없다. 성공한 이들은 오히려 목표에 몰입하는 ‘열정’, 성취를 위한 노력과 끈기로 승부했다. 그런데 그건 누구라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희망적이다.
꿈과 의지가 있는 개인이 블루오션을 만들어낸다. 우직하면서도 끈질긴 천재들이 결국 이길 수 있는 시대가 된 것만은 분명한 사실인 것 같다. 다만 사회가 별로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것, 특히 회사나 조직이 단기성과라는 잣대로 닦달한다는 것, 그리고 그 와중에 우리 사회에 천재가 많이 나타나기 어렵다는 점이 안타까울 뿐이다.
yskwo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