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B운용 "SM엔터 경영 바로잡겠다"
"사외이사 추천" 공개 주주서한
이수만 회장 개인회사 합병 요구
[ 최만수 기자 ]
국내 1위 연예기획사인 에스엠엔터테인먼트에 대해 행동주의 펀드가 경영 참여를 선언했다. 창업자 이수만 회장이 회삿돈을 개인회사로 가져가는 것을 문제 삼고 이사 선임을 통해 막겠다고 했다. 에스엠은 시가총액 1조원이 넘는 증시 대표 엔터테인먼트주다.
본지 5월 30일자 A22면 참조
KB자산운용은 5일 에스엠 사외이사를 추천해 경영에 참여하겠다는 내용의 공개 주주서한을 보냈다. KB자산운용은 주주가치 증대를 목적으로 하는 행동주의 펀드(KB주주가치포커스)를 통해 에스엠 지분 7.59%를 보유한 3대 주주다.
KB운용은 “이 회장 개인회사인 라이크기획이 에스엠 영업이익의 46%를 매년 자문료 형태로 빼가 회사 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라이크기획은 이 회장이 100% 소유한 회사로 에스엠 지분은 없다. 하지만 음악 자문 등의 명목을 내세워 연간 100억원 이상을 받아갔다.
KB운용은 “라이크기획과 에스엠 간 합병을 요구한다”며 “다음 주주총회에서 신규 사외이사 후보를 추천해 이사회 감시와 견제를 강화하겠다”고 밝혔다.
KB운용에 이어 에스엠 4대 주주인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지분 5.06% 보유)도 “에스엠의 불투명한 경영 개선을 위해 적극 개입하겠다”고 했다. 이들 기관과 2대 주주인 국민연금(8.07%)의 지분을 합치면 20.72%로 이 회장 측 지분(19.08%)을 넘어선다.
행동주의 펀드를 운용하는 KB자산운용이 이수만 에스엠엔터테인먼트 회장을 정조준했다. KB자산운용은 5일 에스엠에 지배구조 개선 및 주주가치 제고를 위한 주주 서한을 발송했다. 이 회장 개인회사(라이크기획)를 통해 회삿돈을 가져가는 것을 중단하고 개인회사를 에스엠에 합병하라는 것이 핵심이다. 본업인 음악사업과 무관하면서 적자를 내고 있는 와이너리, 레스토랑 등의 사업도 정리하라고 요구했다. 기관투자가들은 연일 에스엠 지분을 늘리며 이 회장을 협공하고 있다.
칼 뽑은 행동주의 펀드
소녀시대 엑소 동방신기 등의 소속사인 에스엠은 수년 전부터 ‘일감 몰아주기’ 의혹을 받아왔다. 등기임원도 아닌 이 회장이 100% 지분을 보유한 라이크기획을 통해 음악 자문 등을 명목으로 연간 100억원 이상 받아갔기 때문이다. 최근 5년간 에스엠 영업이익의 44%에 해당하는 금액이 이 회사로 흘러들어갔다. 빠져나가는 돈도 2014년 75억원, 2015년 99억원, 2016년 110억원, 2017년 108억원, 2018년 145억원으로 늘어나고 있다. 구체적인 계약 내용은 비공개다. 그러면서 2000년 상장 이후 배당은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라이크기획이 주주가치를 심각하게 훼손한다고 판단한 3대 주주 KB자산운용(지분율 7.59%)이 나섰다. KB자산운용은 이날 ‘본연의 가치로 돌아가는 길’이라는 제목의 공개 주주서한을 통해 라이크기획을 에스엠에 합병하라고 요구했다. 정용현 KB자산운용 밸류운용1팀장은 “에스엠 주주 입장에서 번 돈의 거의 절반을 빼앗기는 상황”이라며 “에스엠의 개선 움직임이 있을 때까지 지속적으로 요구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KB자산운용은 작년 행동주의 펀드 ‘KB주주가치포커스’를 설정한 뒤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있다. 컴투스, 효성티앤씨, 광주신세계 등에 수차례 주주서한을 보냈고 골프존을 상대로는 소송을 걸어 굴복시키기도 했다.
“와이너리, 레스토랑 정리하라”
지난달 29일 본지 보도를 통해 KB자산운용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등이 행동주의 펀드를 통해 에스엠을 겨냥하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에스엠은 다음날 공식 입장을 내고 황급히 배당 카드를 꺼냈다. 에스엠 측은 “주주가치 증대에 대해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수립하겠다”고 했다. 이어 “다만 라이크기획과의 계약은 ‘일감 몰아주기’에 해당하지 않으며 법률적인 문제점이 없다”고 주장했다.
KB자산운용 측 주장은 다르다. “에스엠에서 고용한 외부 전문가(회계법인 혹은 컨설팅업체)의 검증은 신뢰도가 떨어진다”고 반박했다. 이어 “JYP엔터테인먼트, 와이지엔터테인먼트 등 경쟁사는 내부 프로듀서들로 제작하고 있는데 왜 에스엠만 이수만 총괄 프로듀서의 외주(아웃소싱) 프로듀싱을 받아야 하는지 그 필요성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했다. 이 회장과 비슷하게 총괄 프로듀서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양현석 와이지엔터 대표는 작년 8억4000만원을 받았다. 박진영 JYP엔터 창의성총괄책임자(CCO)는 연봉이 공시 기준인 5억원 미만이라 사업보고서에 기재되지 않았다. 이 회장이 받아간 자문료와는 비교도 안 되게 작은 금액이다.
정 팀장은 “이 회장은 합병을 통해 에스엠 내부의 총괄 프로듀서로 들어와 합당한 대우를 받고 주주로서 배당과 자본차익을 통해 보상받는 구조가 올바른 지배구조”라고 강조했다.
KB자산운용은 에스엠 본업과 관련이 없는 사업에 대해서도 문제를 제기했다. KB자산운용은 “에스엠은 레스토랑, 와이너리, 리조트 등 본업과 무관한 사업을 무리하게 지속해 적자가 확대되고 있다”며 “SM USA 산하 자회사와 에스엠에프앤비는 본업과 관련성이 없고 현재까지 발생한 적자 규모를 고려하면 역량도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심지어 이 회장의 개인 취향을 반영한 사업이라는 사실은 구태적인 기업문화를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KB자산운용은 “에스엠 이사회 스스로 경영에 대한 내부 통제가 부족한 것으로 판단한다”며 “다음 주주총회에서 신규 사외이사 후보를 추천해 이사회에 대한 감시와 견제를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에스엠에 오는 20일까지 주주서한에 대한 답변을 달라고 요청했다. 에스엠 관계자는 “충분히 입장을 검토한 뒤 기일 내로 답변하겠다”고 말했다.
에스엠 주가 20% 급등
KB자산운용의 주주서한 발송 소식이 전해지면서 이날 에스엠 주가는 1750원(4.01%) 오른 4만5350원에 거래를 마쳤다. KB자산운용이 공개 주주서한을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이 알려진 지난달 30일부터 5거래일간 20.45% 급등했다.
펀드 연기금 등 기관투자가는 이 기간 에스엠 주식을 412억원어치 순매수하며 주가를 끌어올렸다. 에스엠은 코스닥시장 기관투자가 순매수 종목 1위에 올랐다. 증권업계에선 기관의 에스엠 지분 확대를 주목하고 있다. 지분이 19.08%에 불과한 이 회장을 압박하고 경영 개선에 더욱 목소리를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한 헤지펀드 운용사 대표는 “KB자산운용 등 주요 기관투자가의 지분이 이 회장의 지분을 넘어서기 때문에 요구가 관철될 것으로 예상한다”며 “기업가치 개선을 기대하고 헤지펀드들도 에스엠 주식을 사들이고 있다”고 전했다.
최만수 기자 beb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