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그들이 만든 나라

입력 2019-06-05 17:33
송언석 < 자유한국당 의원 esong63@naver.com >



“오늘 우리가 이곳을 거닐 수 있는 것은 저분들 덕분이다.” 현충원 참배를 마치고 했던 얘기다. 한 나라의 존재는 그 나라가 배출한 인물뿐만 아니라 그 나라가 기억하는 인물을 통해서도 드러난다고 했던가. 예순네 번째 현충일 아침을 맞아 나라를 위해 희생한 순국선열을 다시금 기억하며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초등학생 시절, 김유신에 대해 배우고 ‘충심’ 높은 사람이 되고자 다짐했던 기억이 난다. 6월이면 ‘국군 아저씨께’로 시작하는 위문편지를 몽당연필로 꾹꾹 눌러 쓰곤 했다. 요즘은 가장 존경하는 인물을 연예인과 운동선수들이 차지한다니 세상이 많이도 변했나 보다.

시대에 따라 가치관이 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현충일의 의미가 수많은 ‘빨간 날’ 중 하나로 퇴색돼서야 되겠는가. ‘국가를 위해 헌신했지만 돌아온 것은 가난과 외면뿐’이라거나, ‘중·고생의 절반이 현충일의 의미를 모른다’는 보도를 접할 때면 씁쓸하기만 하다. 얼마 전 미국에서 열린 6·25전쟁 참전용사의 장례식에 아무 연고도 없는 시민 수천 명이 찾아 추모했다는 기사를 보면서 얼굴이 화끈거리기도 했다.

2016년 보훈연금을 받은 85만여 명 중 13만여 명은 월평균 소득이 최저임금에 턱없이 못 미치는 100만원 미만이라는 보도가 있었다. 자신이 유공자인 줄도 몰라 보훈 혜택을 받지 못하는 분도 약 38만 명이나 된다고 한다. 독립유공자 선정을 위해 후손들에게 재판 서류나 수형인 명부 등을 요구하는 일도 있다. 엄격한 원칙과 심사 기준이 필요하겠지만 유공자분들에게 과다한 부담을 지우는 건 아닌지 애잔해진다.

나라를 지키려는 노력이 독립운동과 6·25전쟁처럼 멀리 과거 속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연평도 포격, 목함 지뢰 도발, 아덴만 귀환 장병 사고 등은 가까이서 발생한 일이다. 미래에 대한 꿈에 한껏 부풀었을 청년들의 값진 희생 덕분에 우리는 두 발 뻗고 잠을 청하고 자유도 누릴 수 있다.

애국은 올바른 신념과 작은 실천에서 시작한다. 요즘 날이 갈수록 태극기를 찾아보기 힘들어진다. 최근 지어진 아파트 단지는 발코니 확장형이 주류를 이루면서 국기꽂이 자체가 없는 곳이 많다. 국기꽂이를 의무화하고 태극기 게양을 자연스러운 문화로 발전시키려는 노력이 필요하지 않을까.

보훈은 나라를 위한 개인의 헌신에 보답하는 일이다. 적어도 현충일에는 대한민국이 과거 희생 위에 돋아난 새살임을 기억하고, 현재 우리가 누리는 모든 것에 감사한 마음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이로움을 보거든 대의를 생각하고 위태로움을 보거든 목숨을 바친다’는 공자의 말씀을 몸소 실천했던 안중근 선생의 가르침을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