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전방위적인 대(對)화웨이 공세에 일본은 정부와 기업 차원에서 적극 협조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런 와중에 일본 통신업체 라쿠텐과 정보기술(IT)기업인 NEC가 5세대(5G)이동통신 장비 분야에서 신제품을 개발해 일본 내수시장부터 점유율을 높여나가겠다는 구상을 밝혔습니다. 그동안 일본 업체들은 글로벌 5G장비 분야에서 존재감이 미약했지만 업계 1위 화웨이가 휘청이는 틈을 놓치지 않고 활용해 입지를 넓히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것입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라쿠텐와 NEC는 힘을 합쳐 ‘5G’기지국 사업을 재정비하기로 했습니다. 라쿠텐의 클라우드 기술과 NEC의 통신장비 기술을 활용해 비용을 절감할 수 있는 기지국 용 무선안테나를 두 회사가 공동 개발키로 한 것입니다. 무선 안테나 신제품은 2024년 말까지 일본 내 1만6000여개 지역에 배치한다는 계획입니다. 이동통신 인프라 구축에는 기지국 간 통신을 담당하는 네트워크와 휴대폰과 기지국을 연결하는 무선안테나가 양대 축을 이룬다고 합니다. 두 회사의 이번 사업 규모는 수백억엔(약 수천억원)규모가 될 전망입니다.
NEC가 5G기지국 장비 분야에서 부산을 떨기 시작한 것은 시장의 강자로 군림했던 화웨이가 미국의 융단폭격으로 곤경에 처한 것과 관련이 큽니다. 화웨이 제품에 대한 보안 우려가 커지고, 미국의 제재 압력에 따른 사실상 사용이 금지된 영향으로 일본 통신사들에겐 화웨이 제품에 대한 조달 리스크가 커졌습니다. 이에 NEC는 보안 우려 등이 없는 ‘국산 기술’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일본 내수시장부터 화웨이 제품을 꺼려하거나, 화웨이가 물러난 자리를 노리겠다는 구상입니다.
일단 내수시장에 안착한 뒤에는 안테나 기술의 해외시장 진출도 고려하고 있습니다. 한때 NEC는 통신장비 분야에서 글로벌 주요 업체로 꼽히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사세가 크게 위축된 상황입니다. 시장 조사업체인 영국 IHS마킷에 따르면 전 세계 통신 기지국 시장 점유율은 화웨이와 스웨덴 에릭슨, 핀란드 노키아의 3개사가 80%이상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NEC와 후지쓰 등 일본 업체의 비중은 모두 합쳐 5%에도 못 미치고 있습니다. 이 같은 상황에서 화웨이가 위기에 봉착한 것을 기회로 삼아 일본 업체들이 반격을 모색하고 있다는 게 니혼게이자이신문의 분석입니다.
미국의 화웨이 공격에 일본은 일단 ‘미국편’으로 확실하게 줄을 선 모습입니다. 앞서 일본 3대 통신사인 NTT도코모, KDDI, 소프트뱅크는 화웨이의 최신 스마트폰 출시를 무기한 연기했습니다. 저가 휴대폰과 낮은 통신요금을 앞세웠던 라인모바일, 소프트뱅크 와이모바일, UQ모바일도 당분간 화웨이 스마트폰을 취급하지 않겠다는 입장입니다. 최근 몇 년간 화웨이와 밀접하게 관계를 맺고 5G서비스를 준비했던 소프트뱅크도 결국 5G 장비 구축에서 화웨이 배제를 최종 결정했습니다. 일본 최대 온라인쇼핑몰인 아마존재팬도 화웨이 제품에 대해 ‘재고 없음’ 이나 ‘재입고 미정’이라는 표시와 함께 사실상 화웨이 제품 거래를 중지했습니다.
미국의 대(對)화웨이 공격과 이에 편승한 일본 업체들의 움직임이 과연 사세가 위축되고 있던 일본 통신장비 업계에 ‘회생’의 계기가 될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도쿄=김동욱 특파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