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신설’ 김여정, 52일만에 재등장
새 집단체조 ‘인민의 나라’ 공연 관람
북한 인사 관련 풍문, 체제 폐쇄성 방증
모호함이야말로 독재 유지 도구
[들어가며] 통일부에 출입하며 조선중앙통신과 노동신문을 읽기 시작한 게 2017년 4월부터였습니다. 때로는 어이 없고, 때로는 한글인데 무슨 말인지 모르고, 때로는 쓴웃음도 나오는 북한 뉴스의 세계로 초대합니다.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 ‘인민의 나라’가 6월 3일 5월1일경기장에서 개막되였다. 조선로동당 위원장이시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위원장이시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무력 최고사령관이신 우리 당과 국가,무력의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 대집단체조와 예술공연을 관람하시였다. (중략) 리만건동지,박광호동지,리수용동지,김평해동지,최휘동지,안정수동지,박태성동지,김영철동지,조용원동지,김여정동지,리영식동지,현송월동지,권혁봉동지,장룡식동지,박춘남동지를 비롯한 당과 정부의 간부들과 평양시민들이 공연을 관람하였다.”
조선중앙통신과 노동신문의 4일자 보도 중 일부다. ‘인민의 나라’는 북한이 이달부터 10월 중순까지 관광상품으로 공연하겠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해 온 새로운 집단체조 작품이다. 집단체조는 북한의 대표적 ‘외화벌이 효자 상품’이자 북한 인권이 땅에 떨어졌다는 증거로 꼽힌다.
하지만 이 보도에서 화제가 된 건 김정은도, 집단체조도 아니었다. 김정은의 동생이자 비서 역할을 맡고 있는 김여정 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에게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다. 김여정은 지난 4월 최고인민회의 이후 52일만에 공식 석상에 다시 나타났다. 김정은 부부의 바로 옆 자리에 앉아 있었다.
김여정은 지난 2월말 ‘하노이 회담’ 결렬 후 한때 근신설이 돌았다. 회담 결렬의 책임을 일정 부분 쳤다는 게 근신설의 이유였다.
전날 공식 행사에 김정은과 함께 나와 화제가 된 김영철 당 부위원장은 더욱 드라마틱했다. 김영철은 자강도 노역형 설이 제기됐다. 김영철에 대해선 하노이 회담 결렬 후 노동교화형설, 와병설, 은밀한 암살설 등 온갖 주장이 떠돌아다녔다. 하지만 모두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됐다.
북한 전문가들은 “북한 권력 핵심층 인사에 대한 설은 참고 사항으로만 듣는 게 좋다”고 지적했다. 한 탈북자 출신 전문가는 “그런 설을 들었을 땐 ‘열 걸음 뒤’에서 보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만큼 정보의 정확성을 판가름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아직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북한의 왕조적 성격을 도외시한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란 정식 명칭은 그저 허울일 뿐이다. 실체는 김씨 왕조의 3대 세습이다. 김정은은 왕이자 신이다. 이런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가장 필수적인 건 ‘모호함이 낳는 공포’다. 아돌프 히틀러를 희대의 독재자이자 신과 같은 존재로 포장 선전한 파울 요제프 괴벨스는 “나에게 딱 한 문장만 주면 누구든 범죄자로 만들 수 있다”는 말을 남겼다. 정확한 진실은 독재의 적이다.
총살설이 제기된 김혁철 북한 국무위 대미특별대표가 살아돌아온다 해도, 정치범 수용소에 끌려갔다는 설이 나온 김성혜 통일전선부 통일책략실장이 멀쩡히 다시 등장한다 해도 북한 체제에선 전혀 이상할 게 없다. 살아도 사는 게 아니고, 죽어도 죽은 게 아니다. ‘생불여사(生不如死, 사는 게 죽느니만 못하다)’와 같은 삶일 수 있다. 모든 건 허망한 설로 남는다.
김정은의 공포 정치와 호통 정치는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일단 하노이 회담 후 조직 재편은 거의 마무리 단계에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조직 정비가 완료됐으며, 남북대화 및 미·북 대화 재개는 김 위원장의 결심만 남은 상황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북한에선 변화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비핵화와 관련한 미국과의 협상 움직임도 아직 없다. 집단체조는 계속되고, 풍문은 이어진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