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달부터…3개 개편안 제시
한전 최대 3000억 부담 늘듯
[ 조재길/구은서 기자 ] 정부가 전기를 많이 쓸수록 할증폭이 커지는 주택용 전기요금 누진제를 다음달부터 개편한다. 매년 여름 반복되는 ‘냉방요금 폭탄’ 논란을 잠재우기 위해서다.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전력은 3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전기요금 누진제 개편안 토론회’를 열고 현행 3단계인 주택용 누진제의 완화 또는 폐지를 핵심으로 한 대안 세 개를 공개했다. 공청회와 전기위원회 심의를 거쳐 이달 말 최종 확정된다. 누진제 개편은 2016년 12월 종전 6단계를 3단계로 간소화한 후 2년7개월 만이다.
정부가 공개한 대안은 △7~8월 누진구간 확대(1안) △7~8월 누진단계 2단계로 축소(2안) △누진제 완전 폐지(3안) 등이다. 이 중 매년 여름 전기를 많이 쓰는 2·3단계 구간을 확대하는 1안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가장 많은 가구(1629만 가구)에 요금 할인 혜택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1안이 확정되면 월 200㎾h 넘게 전기를 쓰는 가구는 7~8월에 월평균 15.8%(1만142원)씩 할인받을 수 있다. 전력 저소비층엔 아무런 영향이 없다.
정부가 1~3안 중 어떤 선택을 하든 한전의 추가 부담(1911억~2985억원)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7~8월 전기료 할인되지만 한전은 年 3천억 손실…결국 국민부담
산업통상자원부와 한국전력이 3일 ‘전기요금 누진제 개편안 토론회’에서 공개한 3개 대안은 모두 주택용 전기요금 할인을 기본으로 담고 있다. 작년 폭염 때 “주택에만 적용되는 누진제 때문에 집에서 에어컨도 못 튼다”는 불만이 많았기 때문이다. 정부는 매년 7, 8월 요금을 깎아주거나 아예 누진제를 폐지하는 방안을 놓고 국민 의견을 수렴하기로 했다.
올여름 냉방비 부담 덜어
민·관 전기요금 누진제 태스크포스(TF)가 제시한 대안은 △하계(7~8월) 누진구간 확대(1안) △하계 누진단계 축소(2안) △누진제 완전 폐지(3안) 등 세 가지다. 오는 11일 공청회 등을 거쳐 이달 안에 한 가지를 최종 선택하기로 했다. 적용 시점은 다음달부터다.
1안은 작년 여름에 한시 완화했던 누진제 적용 방식을 정례화하는 것이다. 전력 사용량이 많은 2·3단계 가구에 각각 100㎾h, 50㎾h(월 사용량 기준)씩 상한을 높여 부담을 덜어주는 방법이다. 작년 사용량 기준으로 총 1629만 가구가 매년 15.8%(7, 8월 각각)씩 요금 인하 혜택을 받을 것이란 게 TF의 추산이다. 가구당 월 1만142원꼴이다.
2안은 현행 3단계인 누진제를 매년 7, 8월에만 2단계로 줄이는 방안이다. 상대적으로 전력을 많이 쓰는 3단계 구간(작년 사용량 기준 609만 가구)이 2단계 요금을 적용받을 수 있다. 혜택 가구의 월 할인액은 평균 1만7864원이다.
3안(누진제 폐지)은 일반 국민의 청원이 집중됐던 방안이다. 2·3단계 구간의 요금을 크게 낮출 수 있는 데다 반복되는 주택용 누진제 논란도 잠재울 수 있어서다. 해외에는 누진제가 아예 없거나 최대 1.5배 수준이다.
하지만 3안이 채택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전력을 많이 쓰는 887만 가구가 월평균 9951원씩 할인 혜택을 받지만 반대로 저소비층인 1416만 가구는 되레 4335원씩 더 내야 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누진제 폐지안’과 동시에 제시될 것으로 예상됐던 ‘저소득층 지원 방안’은 아예 빠졌다. 이날 토론자로 나선 박호정 고려대 그린스쿨대학원 교수도 “누진제 폐지를 골자로 한 3안의 채택 가능성은 낮다”고 했다.
정부와 여당은 여론 부담이 적은 1안을 선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1600만여 가구에 여름철마다 폭넓은 요금 인하 혜택을 줄 수 있어서다. 누진제 TF 위원장을 맡은 박종배 건국대 전기공학과 교수는 “소비자의 전력사용 패턴을 분석해 보니 한여름에 유독 급증한 걸로 나타났다”며 “이 부분을 해소해 주는 게 맞다”고 말했다. TF 위원인 이서혜 E-컨슈머 연구실장도 “소비자 대면 설문조사 결과 냉방 사용량이 급증하는 여름철 요금을 깎아주면 좋겠다는 소비자가 최다였다”고 소개했다.
한전 부담 불가피…“적자 커질 것”
정부가 최종적으로 어떤 대안을 선택하더라도 한전 부담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특히 3안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점에서 ‘정부가 누진제를 폐지하지 않고 손쉬운 길을 가려고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7, 8월마다 누진제 2·3단계 구간을 조정해 1629만 가구(작년 전력사용량 기준)의 전기요금을 깎아줄 경우(1안) 한전이 부담해야 할 금액은 매년 2847억원으로 추산된다. 전력 수요가 적었던 2017년 사용량 기준으로도 2536억원이 필요하다. 2안인 여름철 누진단계 축소(3단계→2단계)에 따른 한전 부담은 1911억원(작년 사용량 기준), 3안인 누진제 완전 폐지에 따른 부담은 2985억원이다.
탈(脫)원전 정책 등의 여파로 작년부터 적자 늪에 빠진 한전이 매년 3000억원을 추가 부담할 여력이 크지 않다는 점도 문제다. 권기보 한전 영업본부장은 “세 가지 대안은 오늘 토론회에서 처음 공개된 것이지만 한전 이사회는 누진제 개편 논의를 걱정스럽게 지켜봐왔다”며 “원전 가동률을 급격하게 늘리지 않는 한 당분간 재무상황이 좋지 않을 것이어서 우려가 많다”고 말했다. 권 본부장은 “한전은 사회적 책임을 져야 하는 공기업이지만 뉴욕증시에도 상장돼 있는 주식회사”라며 “저소득층엔 에너지 바우처를 주는 등 다른 방안을 마련하는 게 시장경제에 맞는 것 아니냐”고 했다.
전기요금 재원과 관련해 정부가 “소요 재원 일부를 재정으로 투입하는 방안을 검토 중”(박찬기 산업부 전력시장과장)이라고 밝혔지만 현실화될 가능성은 낮다는 지적이다. 작년 폭염 후 산업부가 ‘한시 전기요금 감면’ 대책을 발표하면서 정책비용인 만큼 정부 부담을 강조했지만 결국 예산 반영에 실패해 한전이 총 3600억원을 떠안았기 때문이다.
김삼화 바른미래당 의원은 “공기업인 한전 손실은 결국 국민이 부담해야 하는 돈인데 정부가 총선과 대선을 위한 선심성 정책만 내놓고 있다”며 “전기를 적게 쓰는 가구에 대해 소득을 따지지 않고 무조건 요금을 깎아주는 필수사용량공제 제도를 폐지하는 근본 대책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한전 주주들의 반발도 커지고 있다. 장병천 한전소액주주 대표는 “한전 재무구조를 악화시키는 대표적인 복지 포퓰리즘에 대해 집회와 집단소송을 동시에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조재길/구은서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