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째 문구 외길 동아연필…비결은 '장인정신'

입력 2019-06-02 17:24
중기부 '명문장수기업' 선정
숙련된 직원들 품질개발 앞장


[ 김진수 기자 ] “몇년 전 정년이 연장된 뒤 올해에는 7명, 내년엔 12명이 정년퇴직할 예정입니다. 30여 년 근무한 직원들이 퇴직을 앞두고 고맙다고 말할 때 가업을 이은 보람을 느낍니다.”

김학재 동아연필 대표(52)는 “가업승계 기업이어서 책임감이 크다”며 이같이 말했다. 동아연필은 1946년 설립된 국내 최초의 문구회사다. 육각형 동아연필은 초등학교 때 누구나 한 번쯤 써봤음 직하다. 이 회사는 2017년 중소기업청(현 중소벤처기업부)으로부터 명문장수기업으로 선정됐다. 명문장수기업은 기업 성장의 롤모델을 제시하고 존경받는 기업문화를 확산하기 위해 마련한 제도다.


4대째 이어가는 가업

김 대표는 성균관대 무역학과를 나온 뒤 정보기술(IT) 업체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1998년 “가업을 이으라”는 아버지(김충경 회장)의 요청에 본사가 있는 대전으로 내려갔다. 과장으로 입사해 해외시장 조사 등 현장에서 전문지식을 익힌 뒤 2004년부터 대표로 회사를 이끌고 있다.

김 대표의 할아버지인 고(故) 김정우 회장이 일본 유학 때 미쓰비시 연필의 기법을 배운 뒤 1946년 돌아와 그의 부친(김 대표의 증조부)인 고 김노원 회장과 함께 회사를 설립했다. 1963년부터 연필을 수출했고 문구상품을 다각화하기 위해 1974년 크레파스 물감 등을 생산·판매했다. 1970년대에는 국내 연필 시장의 70%를 차지, 일본 제품을 국산으로 대체했다. 1997년 캡식 중성펜, 1998년 향기중성펜 등 중성펜(유성펜과 수성펜의 장점을 결합한 볼펜) 시장에 돌풍을 일으켰다. 심을 거꾸로 세워도 잉크가 흘러내리지 않는 역류방지 기술과 사용할 때만 잉크가 흘러나오는 유(U)스프링은 세계에서도 인정받는 첨단기술이다.

동아연필은 전체 매출의 65%가량이 해외에서 나온다. 70여 개국 100여 개 거래처를 두고 있다. 기술특허 58개를 포함해 국내외 상표 및 디자인 등록 건수가 690여 건에 달한다. 동아연필이 장수할 수 있었던 건 숙련된 근로자들이 쌓아온 품질 개발 노력 덕분이다. 김 대표는 “뛰어난 품질, 안정된 유통구조, 정확한 납기 등을 통해 소비자에게 신뢰받는 브랜드로 자리잡았다”고 말했다.

‘메이드 인 코리아’ 위상 높일 것

승승장구하던 동아연필은 지난해 매출이 292억원으로 2017년에 비해 100억원가량 줄었다. 저출산(국내)과 보호무역 강화(해외) 등의 영향이 컸다. 김 대표는 “초등학생을 포함한 어린이 문구 수요가 줄고, 미국 등 해외에서 자국 생산을 강조하고 있다”며 “대중적인 제품은 가격 경쟁력을 높이고 동시에 고부가가치 제품 개발을 병행해야 하는 게 현안”이라고 말했다.

김 대표는 독일과 일본으로 양분되는 글로벌 문구 시장에서 ‘메이드 인 코리아’의 위상을 높여갈 계획이다. 올 들어 속건성 잉크(quick dry ink)를 적용한 Q노크와 문서보존용 피그먼트잉크(pigment ink)를 사용한 P노크를 연달아 출시했다. Q노크는 온라인을 중심으로 소비자 평가가 좋아 국내 대형문구점에 공급한 데 이어 미국 싱가포르 등 해외 5개국과 수출 협상을 하고 있다. 김 대표는 “수출을 늘리고 메이드 인 코리아 브랜드의 우수성을 적극 알리겠다”고 말했다.

김 대표는 중소기업의 가업승계에 대해 긍정론을 펼쳤다. 그는 “중소기업의 사정을 속속들이 알고 제품 개발부터 판매까지 두루 경험한 사람이 이끄는 게 좋다”고 설명했다.

김진수 기자 tru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