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슈머PiCK] 커피, 제3의 물결 '스페셜티'…블루보틀 vs 테라로사

입력 2019-06-01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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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믹스의 역사는 1976년 동서식품이 아웃도어용으로 원두, 설탕, 크리머를 한데 모으면서 시작됐다. 원두를 네모난 작은 봉지에 담은 인스턴트 커피는 이미 다른 나라에서도 유행이었지만 설탕과 크리머까지 함께 담은 제품은 없었다. 커피믹스는 우리나라의 '빨리, 빨리' 문화와 잘 부합해 큰 인기를 얻었다.

커피전문점의 시대는 1998년 할리스커피가 생기면서부터로 보는 시각이 많다. 이후 스타벅스커피코리아(1999년), 커피빈코리아(2001년), 이디야커피(2001년), 탐앤탐스(2001년), 파스쿠찌(2002년)로 이어졌다. 커피믹스의 원조가 이른바 '다방커피'라면, 커피전문점은 국내에서 원두커피가 대중화되는 데 큰 역할을 했다는 평을 받았다.

최근 '커피계의 애플'이라고 불리는 블루보틀이 한국에 상륙하고 커피 맛 좀 따진다는 애호가들 사이에서 '스페셜티 커피(specialty coffee)'가 유행하면서 커피업계에서는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의 유명 저서를 빗대 '제3의 물결'이라는 얘기까지 나온다. 스페셜티 커피란 보통 미국 스페셜티커피협회(SCAA)의 품질·맛 감정에서 80점 이상 획득한 제품을 일컫는다.

◆ 마니아 열광시키는 '커피업계의 애플', 블루보틀


2002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클랜드에서 시작한 블루보틀은 구워낸 커피 원두를 가정에 배달하는 서비스로 시작했다가 카페로 바꿨다. 원래 교향악단 클라리넷 연주자였던 블루보틀 창업자 제임스 프리먼은 공연을 다닐 때마다 악기 가방에 직접 볶은 커피를 가지고 다닐 정도로 커피애호가였다. 2005년 샌프란시스코에 첫 매장을 냈다.

블루보틀은 인텔리젠시아 커피 앤 티, 스텀프타운과 함께 미국의 3대 스페셜티 커피로 불린다. 커피 업계에서는 드물게 모건스탠리, 구글벤처스, 피델리티 등 주요 벤처캐피털로부터 1억1700만 달러(약 1300억원) 규모의 투자를 받았다.

블루보틀 1호점이 문을 연 2005년부터 지금까지 지키는 원칙은 ▲로스팅한 지 48시간 이내의 원두만 사용할 것 ▲숙련된 바리스타가 직접 손으로 커피를 내릴 것 ▲메뉴 6가지와 컵은 한 가지 크기로 통일할 것 ▲가맹점을 운영하지 않고 모두 직영점으로 운영할 것이다.

현재 미국(57점)과 일본(11점)에서 운영 중인 68개 매장은 모두 직영점이다. 커피 맛에 집중할 수 있도록 메뉴는 6~8가지로 간소화하는 전략을 취했다.

최고급 생두를 소량으로 로스팅해 차별화된 커피 경험을 제공한다는 게 블루보틀의 소비자 응대 전략이다. 매장 내 로스터리 시설을 갖추고 로스팅 순간부터 소비자가 커피를 마시기까지 시간을 줄였다. 손님이 주문을 하면 커피콩을 저울에 달고 갈아서 핸드드립 방식으로 내린다. 이 같은 '장인정신' 때문에 고객들의 충성도가 높아 커피계의 '애플'로 불린다.

매장은 오픈키친을 고집한다. 바리스타가 직접 손으로 커피를 내려주는 것을 원칙으로 하기 때문에 이 과정을 소비자들에게 직접 보여주기 위한 것이다.

대표 메뉴는 '뉴올리언스'다. 뉴올리언스는 아이스라떼와 비슷해 보이지만 제조 방식이 다르다. 볶은 치커리 뿌리와 굵게 갈아낸 원두를 찬물에 넣어 12시간 동안 우려낸 콜드브루에 우유와 유기농 사탕수수로 만든 설탕을 섞어 만든 커피 음료다.

가격은 '스페셜티'인 만큼 일반 커피전문점 대비 높게 책정됐다. 국내 블루보틀을 기준으로 뉴올리언스의 가격은 5800원이다. 미국 가격 4.35달러(약 5080원)보다 700원, 일본 540엔(약 5630원)보다 200원 가량 비싸다. 카페라떼도 한국이 더 비싸다. 한국에서는 6100원으로 책정됐는데 미국에서는 4.35달러(약 5080원), 일본에서는 561엔(약 5834원)이다.

◆토종 스페셜티의 자존심, 테라로사


미국에 블루보틀이 있다면 국내엔 '테라로사'가 있다. 테라로사는 지난해 기준 국내에서 스페셜티 커피를 가장 많이 수입한 곳으로 600t을 들여왔다. 테라로사는 20여년간 은행원 생활을 했던 김용덕 대표가 2001년 고향인 강릉에 문을 연 커피숍이다.

창업 초기부터 '공장형 커피숍'이라는 독특한 콘셉트를 내세운 테라로사는 커피의 생산과정을 투명하게 보여준다. 김 대표가 케냐, 르완다 등 전 세계 커피 농장을 발품 팔아 다니며 직접 구해온 커피 원두를 볶고 추출해 판매까지 한다.

최상급 원두를 사용한 스페셜티 커피의 맛이 뛰어난 데다 매장 인테리어도 고급스럽고 독특한 분위기로 입소문이 나면서 매장을 찾는 손님들이 줄을 이었다.

블루보틀과 마찬가지로 테라로사는 매장을 낼 때 주변지역의 특색을 반영하기로 유명하다. 이 때문에 매장마다 건축과 인테리어 스타일을 달리한다.

강릉 시내에서 약간 벗어난 구정면 어단리에 있는 테라로사 1호점은 밤나무숲으로 둘러쌓여 있다. 인근에는 강릉솔향수목원이 있다. 테라로사 강릉공장에선 하루 1t이 넘는 원두를 볶는다.

테라로사 부산 수영점은 고려제강 공장터를 복합문화공간으로 재생시킨 'F1963' 내에 입점해 있고 서울 소월길점은 1970년대 지은 낡은 집을 개조한 공간에 들어서 있다. 경포호수점은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문화, 예술, 인문 출판사인 한길사와 결합해 도서관과 서점이 공존하는 커피숍으로 문을 열었다.

현재 전국 18개 매장을 갖고 있는 테라로사는 새로운 점포가 하나씩 생길 때마다 테라로사 투어족들이 생길 정도로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다.

테라로사는 블루보틀과 달리 대표 메뉴가 별도로 없다. 김 대표가 전 세계를 돌며 직접 원두를 고르는 만큼 대부분의 취향을 만족시킬 수 있는 다양한 원두를 구비해놓고 있다.

가격대는 아메리카노 클래식이 4500원, 라떼가 5000원이다. 핸드드립은 에티오피아 구지 우라가(5500원)부터 브라질 카푼도(7000원)까지 다양하다.

'커피업계의 애플' 블루보틀과 '토종 스페셜티의 자존심' 테라로사 중 진정한 스페셜티 커피는 어느쪽인가요? <한경닷컴> 홈페이지에서 투표가 진행 중입니다.

노정동 한경닷컴 기자 dong2@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