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重 '법인분할' 주총 통과
중간지주사 '한국조선해양'
조선사 4곳 맡는 컨트롤타워로
[ 김보형/강현우 기자 ]
“분할계획서(물적 분할) 승인의 건이 원안대로 통과됐음을 선포합니다.”
31일 오전 11시23분 울산대 체육관. 현대중공업 임시주주총회 의장을 맡은 한영석 사장이 의사봉을 ‘땅땅땅’ 세 번 내리쳤다.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위한 현대중공업 물적 분할이 우여곡절 끝에 주총 문턱을 넘는 순간이었다.
세계 1위 조선사인 현대중공업이 2위인 대우조선해양 인수를 위한 첫발을 뗐지만 노조 반발부터 해외 각국의 기업결합 심사까지 넘어야 할 산이 적지 않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또다시 전면 파업을 선언했고, 주총 무효 소송을 낼 방침이다. 대우조선해양 노조는 현장실사 저지 투쟁에 나섰다.
세계 1, 2위 거느린 한국조선해양號
물적 분할 승인으로 현대중공업은 중간지주회사인 한국조선해양(존속회사)과 사업회사인 현대중공업(신설회사)으로 나뉜다. 한국조선해양은 서울에 본사를 두고 산하에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인수 완료 시) 현대삼호중공업 현대미포조선 등을 거느리게 된다. 한국조선해양은 4개 조선사의 ‘컨트롤타워’로 투자사업과 연구개발(R&D)을 맡을 예정이다. 현대중공업은 조선과 특수선 해양플랜트 엔진기계 사업 등을 담당하며 본사는 울산에 그대로 남는다.
현대중공업그룹의 지배구조는 그룹 지주회사인 현대중공업지주 아래 한국조선해양을 두고, 한국조선해양 밑에 현대중공업이 있는 구조로 바뀐다. 한 사장은 “물적 분할은 대우조선해양과의 기업결합을 통해 현대중공업의 역량과 가치를 최대한 올리고 재도약하기 위한 결정”이라며 “경쟁력을 높여 주주가치를 극대화하겠다”고 말했다. 대우조선해양은 국내외 공정거래 당국의 기업결합 심사를 통과하면 현대중공업지주와 산업은행 간 주식교환 및 유상증자 등을 거쳐 한국조선해양의 자회사로 편입된다. 기업결합 승인에 실패해 대우조선해양 인수가 무산되더라도 현대중공업의 물적 분할 자체는 유효하다고 회사 측은 설명했다.
세계시장 점유율 21% ‘거인’ 탄생하나
현대중공업그룹은 이번 물적 분할로 ‘글로벌 매머드 조선사’로의 도약에 한걸음 다가섰다. 현대중공업과 대우조선해양의 작년 말 기준 남은 일감(수주잔량)을 합치면 1698만CGT(표준환산톤수)로 글로벌 시장 점유율이 21.2%까지 높아진다. 3위인 일본 이마바리조선(525만CGT·점유율 6.6%)의 세 배가 넘는다. 고부가가치 선박인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과 초대형원유운반선(VLCC)의 양사 합계 점유율은 각각 60.6%와 72.5%로 압도적이다.
현대중공업이 대우조선해양을 인수하면 수주 가격 협상력이 높아져 수익성이 개선될 것으로 조선업계는 보고 있다. 그동안 양사는 치열한 경쟁을 벌이면서 ‘저가 출혈 수주’ 논란을 일으켰다. 한국경영자총협회도 이날 입장문을 내고 “현대중공업의 물적 분할은 한국 조선업의 경쟁력 강화와 지역 경제 활성화, 고용 유지를 위한 필수적인 선택”이라고 강조했다.
인수 마무리까지는 ‘산 넘어 산’
현대중공업이 조선산업 재편을 위한 첫 단추는 끼웠지만 노조의 반발 등 풀어야 할 숙제도 만만치 않다. 현대중공업 노조는 물적 분할에 반대해 6월 3일 전면 파업(8시간)을 벌이기로 했다. 회사 측이 주총장을 울산 한마음회관에서 울산대 체육관으로 변경한 것을 놓고 ‘주주총회결의 무효확인소송’도 내기로 했다. 회사 측은 “노조의 불법점거로 주총 진행이 불가능했고 주주들에게 장소 변경에 대해 충분히 안내했다”며 “법원 검사인도 참관한 만큼 법적인 문제는 없다”고 반박했다.
물적 분할 다음 단계인 대우조선해양 현장실사도 노조의 봉쇄에 가로막혀 있다. 대우조선해양 노조는 거제 옥포조선소 6개 출입문에 노조원으로 꾸려진 ‘실사저지투쟁단’을 배치해 출입을 통제하고 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과 현대중공업 노조의 주총장 불법점거, 폭력 시위 등을 수수방관하고 있다는 지적을 받은 정부는 주총이 끝나자 앞다퉈 입장 표명에 나섰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15개 지방고용노동관서장이 참석한 회의에서 “(현대중공업) 노조의 점거와 폭력 등의 행위는 어떤 이유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고 지적했다. 고용부는 현대중공업 노조가 주총장을 점거한 지난 27일 이후 중재 등 사태 해결에 나서지 않았다.
최종구 금융위원장도 이날 부산의 한 행사에 참석해 노조의 행태를 ‘뒤늦게’ 비판했다. 최 위원장은 “현재 진행되는 조선업 구조 재편은 남아 있는 10만 명의 일자리라도 지키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2차대전 후 조선산업 패권국가였던 영국 조선업 노조는 용접기술 개발 등 변화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강력하게 저항하다 결국 산업 자체가 몰락하고 일자리도 모두 사라졌다”며 “우리도 그런 전철을 밟을지 여부가 지금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달려 있다”고 덧붙였다.
김보형/울산=강현우 기자 kph21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