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中도 보유한 전선기술, 국가핵심기술 지정 움직임…M&A 활성화한다더니 규제만 늘어

입력 2019-05-30 18:30
산업부 500KV급 전력케이블 기술, 국가핵심기술 지정할듯
지정시 제품 수출·M&A시 승인 받아야..업계 "中 이미 보유한 기술"
IB업계 "금융위 대주주변경승인과 같이 M&A 왜곡시키는 수단될수도"


≪이 기사는 05월30일(04:51) 자본시장의 혜안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정부가 중국 등 전세계 주요국 경쟁사들이 이미 보유한 전선 기술을 제품 수출과 기업 인수합병(M&A)의 규제를 받는 국가핵심기술로 지정하려 하자 업계가 반발하고 있다. 기술의 해외유출을 막는 제도가 업계의 자발적인 경쟁력 향상과 사업구조 재편까지 막는 규제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29일 관련 업계와 투자은행(IB) 업계에 따르면 산업통상자원부는 조만간 산업기술보호위원회를 열어 500KV급 이상 전력케이블 시스템(접속재 포함)의 설계 및 제조 기술 등 12개 기술을 국가핵심기술로 추가 지정하는 안건을 심의·의결할 계획이다. 산업기술보호위가 의결하면 산업통상자원부가 국가핵심기술로 개정·고시한다. 중요한 기술유출을 막기 위해 산업부가 지정하는 국가핵심기술은 2007년 반도체 철강 조선 등 7개 분야, 40개 기술로 시작해 현재 12개 부문, 64개로 늘었다. 국가간 기술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국내 기술을 보호하기 위한 적극적인 장치가 필요하다는 의견을 반영한 결과다.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되면 관련 제품을 수출하거나 기업을 매각할 때 산업통상자원부로부터 사실상 승인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경쟁국들이 이미 보유한 기술까지 국가핵심기술로 지정해 제도의 취지가 훼손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산업부가 500KV급 이상 전력케이블 기술을 국가핵심기술로 지정하려는 건 중국 경쟁사가 M&A 등으로 국내 전선회사의 기술을 확보한 후 국내 시장을 교란할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서다. 하지만 500KV급 교류(AC) 전력케이블은 중국 13개사를 포함해 전세계 27개사가 생산 중인 범용기술로 성장 잠재력도 높지 않다는 평가다. 전선업계 관계자는 "500KV급 AC 전력케이블은 전세계적으로 연간 입찰건수가 1~2건에 불과할 정도로 시장규모가 작다"고 말했다. 직류(DC) 전력케이블 역시 해외 경쟁사들이 높은 기술력이 필요한 500KV급 고급형(XPLE) 타입까지 상용화한 반면 대한전선과 LS전선 등 국내 업체들은 아직 개발을 완료하지 못했다. 경계 대상인 중국 ZTT도 이미 2017년 7월29일 525KV급 고급형(XPLE) 직류 전력케이블을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업계가 산업부의 추가 지정 움직임에 대해 국가안보 및 국민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 해당 분야의 연구동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필요최소한의 범위에서 국가핵심기술을 정하도록 한 산업기술보호법 제9조2항에 위배된다고 주장하는 근거다. 전선 분야 전문가인 A 교수도 “국내 전선사들이 만드는 전선의 재료는 모두 독일에서 수입하고 한국전력은 전세계 업체를 상대로 납품 전선업체를 고르기 때문에 전선기술이 국가안보를 위협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말했다.

국내 최대 공작기계회사인 두산공작기계도 일부 보유기술(다축 터닝센터와 고정밀 5축 머시닝센터)이 국가핵심기술로 지정돼 M&A의 영향을 받는 회사다. 이 기술은 일본 DMG모리 등 글로벌 업체는 물론 중국 경쟁사보다 우위라고 보기 어렵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평가이고 두산공작기계 매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도 안된다. 그런데도 2016년 두산그룹이 국내 최대 사모펀드(PEF) 운용사인 MBK파트너스에 두산공작기계를 매각할 때는 물론, 올해 MBK가 투자금 회수(엑시트)를 위해 재매각을 추진할 때도 일부 이해관계자들이 국가핵심기술을 근거로 ‘해외 매각 불가’ 주장을 거듭하고 있다. IB업계 관계자는 “금융위원회의 대주주 변경 승인 문제로 인해 최근 롯데카드 우선협상대상자가 뒤바뀐 것처럼 산업부의 국가핵심기술이 M&A시장을 왜곡시키는 또다른 규제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산업부 관계자는 “500KV 이상 직류 전력케이블 기술을 국가핵심기술로 지정하는 절차상 문제는 없다”며 “전문위원회를 한 차례 더 열어 산업기술보호위에 안건을 올릴 지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영효 기자 hug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