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원철, 조국 근대화 꿈 이루고 잠들다

입력 2019-05-30 18:02
30일 숙환으로 별세…1일 발인
박정희 前대통령이 '國寶'라며 아껴



[ 구은서 기자 ] ‘한국 테크노크라트(기술관료)의 효시’인 오원철 전 청와대 제2경제수석비서관이 30일 숙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1세. 오 전 수석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국보(國寶)’라고 부르던 관료였다. 1960~1970년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수립하며 산업화를 이끈 주역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대통령이 ‘국보’라 칭하던 관료

오 전 수석은 1928년 황해도 송화군에서 태어났다. 경성공업전문학교 화학공업과(서울대 화학공학과 전신) 재학 중 6·25전쟁이 발발하자 공군 기술장교후보생으로 입대해 소령으로 예편했다. 국내 최초 자동차회사인 시발자동차 공장장에 이어 국산자동차주식회사 공장장으로 근무하며 산업현장을 누볐다.

공직에 들어간 건 1961년 5·16 군사정변 직후다. 기술인재를 찾던 박 전 대통령이 그를 국가재건기획위원회 조사과장으로 발탁하면서다. 같은 해 7월 상공부 화학과장으로 임명돼 본격적인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상공부 공업제1국장, 기획관리실장, 차관보를 거쳐 1971년 청와대 제2경제수석비서관으로 임명됐다.

오 전 수석은 1960~1970년대 경제개발 5개년 계획 수립의 주역이기도 했다. 그는 제2경제수석비서관으로 근무하던 당시 박 전 대통령에게 “경제발전의 중심을 경공업에서 중화학공업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건의해 한국 경제를 한 단계 도약시키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다.

국내 방위산업 육성에도 앞장섰다. 청와대에서 오 전 수석과 20여 년간 근무한 김광모 전 중화학담당비서관은 “오 전 수석이 군의 반대를 무릅쓰고 전투기 국산화 사업을 펼친 덕분에 우리나라가 전투기를 수출하는 나라로 성장할 수 있었다”며 “군대에서 하는 일에 반대하면 큰일 나던 시절에 오 전 수석은 장성들에게 ‘외국산 구매에만 매달리지 말고 국내 방위산업을 키워야 한다’고 호통쳤던 유일한 인물”이라고 소개했다.

울산석유화학공업단지 등 국내 공업단지 대부분의 밑그림은 오 전 수석의 펜 끝에서 탄생했다. 박 전 대통령이 그를 ‘국보’라 치켜세운 것도 창원공업단지를 둘러본 직후의 일이다. 오 전 수석은 2012년 한국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1970년대 후반 창원공단 시찰을 마친 박 전 대통령이 흡족해하면서 서울로 올라오는 대통령 전용차에 나를 태워 격려했다. 그날 저녁 플라자호텔에 마련된 만찬에서 수행원과 기자들 앞에서 ‘오원철이는 국보야’라고 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공학의 중요성 한평생 강조

남들이 다 하는 골프조차 치지 않고 일밖에 모르던 오 전 수석은 후배들에겐 정 많은 선배였다. 김 전 비서관은 “이석표 제2경제비서관이 1977년 국산 벌컨포 사격시험 과정에서 순직하자 오 수석이 그의 아들의 공부와 취업을 돕기도 했다”며 “내 아내가 세상을 떠났을 때도 조사(弔詞)로 직접 시를 써오셨을 정도로 따뜻한 분”이라고 기억했다. 청와대와 상공부에서 그와 함께 근무하던 후배들은 ‘이수회(매월 둘째주 수요일에 만나는 모임)’라는 이름으로 은퇴 후 30년 넘도록 인연을 이어왔다. 고정식 전 특허청장도 이수회 멤버다.

오 전 수석은 박 전 대통령을 가장 가까이에서 보좌한 기술관료라는 이유로 고초를 겪기도 했다. 1979년 12·12 직후 신군부의 눈 밖에 나면서 1992년 기아경제연구소 상임고문을 맡을 때까지 12년간 공식적인 대외활동을 하지 못했다.

최근까지 오 전 수석은 활발한 저술활동을 펼쳤다. 미래 세대에게 공학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희망을 일깨워주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2015년 오 전 수석은 “청소년에게 대한민국이 기적적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비결인 기술의 저력을 알려주고 싶다”며 《청소년을 위한 공학 이야기》(한국경제신문 출판)란 책을 출간했다. 이보다 앞서 기아경제연구소 고문 시절에는 한국의 경제개발 과정을 그린 ‘산업전략 군단사(軍團史)’를 한국경제신문에 연재한 뒤, 책으로 펴내기도 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노경미 씨, 아들 범규씨, 딸 인경씨, 며느리 정선미 씨가 있다. 빈소는 서울성모병원 14호실, 발인은 6월 1일 오전 8시, 장지는 경기 가평 가족묘지다.

구은서 기자 k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