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건축가 연수 돕는 정부의 'NPP사업'
과외 시켜 노벨상 도전케 하는 '웃픈' 발상
건축철학 토대 다지고 업적 쌓는 게 먼저
김광현 < 서울대 명예교수·건축학 >
국토교통부가 최근 ‘넥스트 프리츠커(Pritzker) 프로젝트’(NPP사업)라는 야심 찬(?) 계획 하나를 발표했다. 세계적 건축가를 꿈꾸는 건축인이 해외 설계사무소나 연구기관에서 선진 설계기법을 배워 양질의 일자리에 취업할 수 있도록 체재비 등을 지원하는 프로젝트다. 몇몇 언론은 정부가 건축설계 분야 노벨상으로 불리는 ‘프리츠커상’ 수상자 육성에 팔을 걷어붙였다고 소개했다. 그러나 이는 할 말을 잃게 하는 황당한 발상이다.
우리 건축계는 매년 프리츠커상 수상자가 발표되면 1년 내내 별다른 말이 없다가 그제야 ‘왜 우린 이 상을 받지 못하는가’라고 자책하며 그 이유를 진단하곤 한다. 여기에 언론도 한몫 거든다. 매년 똑같은 말이 반복되다 보니 건축을 잘 모르는 이들도 프리츠커상이라는 이름은 많이 알고 있다. 일반인에게 건축을 강의할 때가 제법 있는데, 강의를 마치며 질문을 하라고 하면 곧잘 하는 질문이 왜 우리나라는 프리츠커상을 한 번도 받지 못했느냐는 것이다. 그 정도로 프리츠커상은 나름 모두의 관심이 됐다. 정부가 넥스트 프리츠커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것도 그 연장선에 있다.
넥스트 프리츠커 프로젝트는 한마디로 과외공부를 잘 시켜 더 좋은 대학에 가게 하는 것과 똑같은 발상에서 나온 것이다. 정부는 프리츠커상이 건축설계 분야 노벨상이라고 했다. 그러면 노벨상은 해외 연구기관에서 선진 연구기법을 배워 좋은 일자리에 취업하도록 체재비 등을 지원하면 딸 수 있는가? 봉준호 감독의 영화가 한국 영화 역사상 처음으로 칸 영화제에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는데 국가가 체재비를 주며 외국의 저명 영화제작소에서 일하다 오게 해서 얻은 쾌거라는 말인가?
그런데도 서면 심사, 심층면접 심사를 거쳐 3~12개월간 실습하고 돌아와서 연수실적 보고서를 제출한 뒤 재능기부할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한다고 한다. 재능기부가 혜택인가? 무슨 발상이 이렇게 1차원적인지 헛웃음만 나온다. 국토부의 이런 발상은 그 자체가 우리나라 건축가가 프리츠커상을 탈 수 없는 환경에 놓여 있음을 반증하는 꼴이다.
프로젝트의 배경이나 방법은 물론, ‘넥스트 프리츠커’라는 이름을 붙여 정부가 지원한다는 것도 그렇다. 이런 정부의 생각이 외국에 알려질까 부끄러울 정도다. 매년 프리츠커상 수상자가 소개될 때마다 노래 후렴구처럼 한국은 왜 프리츠커상을 못 받느냐고 안타까워하면서 스스로 비판하는 기사가 실린다. 그때마다 일본 신문들은 한국의 이런 사정을 재빨리 소개하곤 한다. 프리츠커상을 타겠다며 한국 정부가 팔을 걷어붙이고 넥스트 프리츠커 프로젝트를 추진한다는 기사가 며칠 후 일본 신문에 소개될까 걱정된다.
이가라시 다로(五十嵐太) 일본 도호쿠대 교수는 일본의 건축가가 높게 평가받는 이유를 “일본 건축계의 특징인 건축사무소와 대학 연구실에서 도제 시스템이 효과를 발휘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세지마 가즈요(妹島和世)는 스승인 이토 도요(伊東豊雄)보다 10년 먼저 받았고, 반 시게루(坂茂)는 그의 스승인 올해 수상자 이소자키 아라타(磯崎新)보다 5년 먼저 받았다. 한마디로 국내의 건축설계 환경을 어떻게 탄탄하게 하는가가 건축계의 두께를 결정한다는 뜻이다. 새겨들어야 할 말이다.
그러니 전문가든 비전문가든, 앞뒤 없이 “프리츠커상, 프리츠커상” 하며 우리 건축계를 평가하거나 볶아대는 듯한 발언은 더 이상 하지 않았으면 한다. 필자가 보기에 중국의 왕슈라는 건축가를 제외하고 프리츠커상을 받은 건축가는 모두 나름의 높은 업적과 깊은 철학이 있고, 세계 건축계에 강한 영향력을 미친 사람들이다. 수상자가 배출되는 데는 그에 맞는 뿌리 깊은 이유가 있다.
넥스트 프리츠커 프로젝트는 배경이 이런 이상, 선발된 젊은 건축가들이 해외 연수처에 말하기도 어려울뿐더러 자랑스러워하지 않을 게 뻔하다. 이 프로젝트가 건축에 대한 우리 정부의 이해 수준과 다르다면, 국토부는 하루라도 빨리 이 계획의 배경과 이름을 바꾸기 바란다. 젊은 건축가 육성 문제의 본질을 숙고해 제대로 시행해 주기를 당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