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 "외교기밀 유출을 두둔·비호하는 정당에 깊은 유감"

입력 2019-05-29 17:34
국무회의서 '정상 통화내용 유출' 관련 한국당 작심비판

문재인 "정상통화까지 정쟁의 소재로
국정 담당하려는 정당이라면
기본과 상식을 지켜라" 직격탄


[ 김형호 기자 ]
문재인 대통령이 29일 외교부의 기밀 유출사건에 대해 사과하면서 자유한국당을 작심하고 비판했다. 국가 안보와 직결된 한·미 정상 간 통상 내용을 정쟁의 도구로 삼는 데 대해 ‘당리당략’ ‘비호 정당의 행태’ 등의 표현을 써가며 강한 불만을 나타냈다.

문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열린 을지태극 국무회의에서 “외교부 기밀 유출 사건에 대해 한말씀 드리겠다”며 발언에 나섰다. 문 대통령은 “국가 외교 기밀이 유출되고 이를 정치권에서 정쟁의 소지로 이용하는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났다”며 “정부로서는 공직자의 기밀 유출에 대해 국민께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고 유감을 밝혔다.

문 대통령은 이번 사건을 공직기강을 바로 세우는 계기로 삼아 철저한 점검과 보안관리를 주문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이날 국무회의 말미에 문 대통령에게 이번 사태에 대해 사과하고 재발 방지를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 대통령은 사과 견해를 밝힌 뒤 한국당을 정조준했다. 문 대통령은 “외교적으로 극히 민감할 수 있는 정상 간 통화까지 정쟁의 소재로 삼고, 이를 국민의 알권리라거나 공익 제보라는 식으로 두둔하고 비호하는 정당의 행태에 깊은 유감을 표한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또 “국정을 담당했고 앞으로 국민의 지지를 얻어 국정을 담당하고자 하는 정당이라면 적어도 국가 운영의 근본에 관한 문제만큼은 기본과 상식을 지켜달라”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문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여태껏 나온 한국당 비판 가운데 가장 수위가 높았다. 청와대 핵심 관계자는 “커다란 외교 문제가 될 수 있는 사안을 정치적 공방 소재로 삼고 있는 행태에 대해 대통령이 작심하고 발언한 것으로 보면 된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문 대통령이 이날 직접 사과 견해를 밝히면서 외교부 기밀 유출사태 이후 불거지고 있는 강 장관과 조윤제 주미대사를 둘러싼 책임론은 당분간 사그라들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내달 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순방이 예정돼 있어 당장 외교라인을 교체하기가 여의치 않은 측면도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일단은 문제를 정확히 파악하고 수습하는 게 급선무이고 (외교라인의) 책임을 묻는 것은 추후 문제”라고 했다.

이와 관련, 문 대통령은 전날 강 장관을 비롯한 외교부 관계자들로부터 내달 예정인 북유럽 순방 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최근 리비아에 피랍됐다가 풀려난 주모씨의 가족이 보내온 편지를 공개했다. 문 대통령은 “(풀려난) 아버지의 무사 귀환을 위해 수고해주신 외교부 공직자들에 대한 감사 인사도 담겨 있다”며 편지를 직접 읽어줬다. 청와대 관계자는 “일부 외교관의 일탈이 있지만 대다수 외교부 공무원은 이처럼 묵묵히 일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직접 읽어준 것 아니겠느냐”고 전했다.

나경원 한국당 원내대표는 문 대통령의 한국당 비판에 “기밀 누설 운운하며 우리 당 의원에 대한 고발, 압박을 포함해 국회를 정상화하지 못하는 부분에서 대통령과 청와대가 기획하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든다”고 반발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27일부터 나흘간 진행되는 을지태극훈련과 관련, “이번 전시 대비 연습은 공격이 목적이 아니라 평화를 수호하기 위한 방어 목적이며 특히 한국군 단독훈련이므로 자주국방 태세를 확고히 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또 “자주국방은 정세 변화와 상관없이 추구해야 하는 독립된 국가로서 변함없는 목표”라며 “을지연습과 태극연습을 처음으로 통합해 시행하는 이번 연습을 향후 전시작전권 전환에 대비하고 자주국방 역량을 굳건히 강화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을지태극훈련은 지난해 한·미 연합훈련인 을지프리덤이 중단되면서 올해부터 우리 군 주도로 안보와 재난에 대비해 단독으로 시행하는 훈련이다.

김형호 기자 chs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