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한빛1호기 사고, '체르노빌 공포' 선동은 안돼

입력 2019-05-28 17:42
인적 오류·오판은 큰 사고 이어져
무지·무자격자 여부 낱낱이 밝히되
제3자 검증 등 논점 흐리지 말기를

정재준 < 부산대 교수·前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 >


한빛1호기 제어봉 오조작 사건의 파장이 행여 잘못된 방향으로 흘러갈까 걱정이다. 제어봉 오조작은 명백하고도 중대한 오류이므로 한국수력원자력은 이를 중차대하게 받아들이고 대응해야 한다. 며칠 전 한수원이 이번 사고를 ‘0등급’으로 분류한 것은 성급하고 옹색하다. 그보다는 이런 일이 어떻게 발생했는지 그 과정과 책임소재를 밝히고, 근본 원인 규명 및 재발방지 방안을 내놓는 게 급선무다.

원자로는 15~18개월 주기로 운전과 정기점검을 반복한다. 정기 점검 이후 재가동 직전에 원자로의 여러 특성 시험을 수행하는데 이 과정에서 한수원은 큰 오류를 범했다. 원자로에서 제어봉은 연쇄 핵분열 반응을 제어하는 수단 중 하나다. 연쇄 핵분열 반응이 일정하게 유지될 때를 임계상태라고 한다. 임계상태에서 제어봉 인출은 곧바로 출력 증가로 이어지기 때문에 아주 신중해야 한다.

사고 발생 당시 함께 움직여야 할 특정 제어봉 군(8개)에서 제어봉 간 위치 편차가 발생해 이를 교정하려고 임계상태임에도 불구하고 교정 위치로 제어봉을 인출했다. 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그 결과 원자로 출력이 거의 영(zero)에서 18%로 급증했다. 시험 과정의 출력 제한치 5%를 훨씬 초과한 것이다. 약 2분 후 상황을 파악한 운전원은 수동으로 다시 제어봉을 삽입해 출력을 거의 영으로 되돌렸다. 10여 시간 후 원자로를 완전히 정지시켰다. 일시적이지만 원자로 출력이 증가함에 따라 원자로를 냉각하기 위한 증기발생기 보조 급수펌프가 자동으로 작동했다. 기술적으로만 본다면 제어봉 오조작에 따라 출력이 급증했고, 운전원이 수동제어해 출력을 낮췄으며, 보조 급수가 정상 작동했다. 최종적으로 원자로를 수동정지해 마무리됐다.

경수로의 고유 특성상 출력이 급증하면 핵연료와 함께 냉각재 온도가 높아지면서 연쇄 반응이 약화된다. 이 때문에 출력 폭주로 이어질 가능성은 전무하다. 체르노빌 사고로 번질 뻔했다는 일각의 주장은 가능성이 없는 얘기다. 만약 출력이 25%를 넘었다면 원자로 보호계통이 작동해 원자로가 자동 정지됐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인적 오류와 오판이 연달아 발생하면 대형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크게 우려하는 것이다.

요점은 명확하다. 이 사건에 개입된 원자로 운전팀과 정비팀이 어떤 과정을 거쳐 임계상태임에도 제어봉 인출을 결정했는지, 또 수동 조치를 취한 뒤 원자로 정지까지의 과정을 면밀하게 파악했는지 하는 것이다. 무자격자의 제어봉 조작 여부, 운전기술지침 인지 및 위반 여부 등 세부 사항은 원자력안전위원회가 별도 조사 중이지만 운전절차 위반만큼은 명백한 것으로 보인다.

정말 의문스러운 점은 ‘임계상태에서 과도한 제어봉 인출이 출력 급증을 유발한다’는 기초지식을 운전 관계자들이 모두 몰랐느냐 하는 점이다. 알면서도 그랬다면 정말 큰 문제이고 몰랐다면 할 말이 없는 수준이다. 한수원은 뼈저리게 반성하고 돌아봐야 한다. 과연 이 같은 일이 처음이었는지, 다른 곳에선 없었는지도 조사해야 한다.

한수원은 이런 의문에 명쾌한 답을 제시해야 한다. 재발 가능성을 원천 차단할 수 있는 방안도 내놓아야 한다. 집단적인 인적 오류가 조직 문화의 문제에서 비롯됐다면 가장 우려스러운 일이 될 것이다.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엄정한 조사 결과를 기다린다. 섣불리 3자 검증을 언급하거나 체르노빌 사고 운운하는 것은 논점만 흐릴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