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법정관리 돌입한 웅진에너지...매각 실패한 한국실리콘 전철 밟을까?

입력 2019-05-28 15:45
≪이 기사는 05월27일(11:08) 자본시장의 혜안 ‘마켓인사이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국내에 유일하게 남은 태양광 잉곳·웨이퍼 생산업체 웅진에너지가 회생절차(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지난해 법정관리를 신청한 국내 2위 폴리실리콘 생산업체 한국실리콘이 파산 기로에 서 있는 상황에서 연이어 터진 대형사 도산 사건이다. 태양광 업계선 국내 산업 가치사슬(밸류체인) 보호 차원에서라도 웅진에너지의 파산을 막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업계 전망이 어두울 뿐더러 부채가 많아 웅진에너지의 회생을 낙관하긴 어렵다는 분석이 나온다.

27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서울회생법원은 웅진에너지의 회생신청을 접수하고 포괄적 금지명령을 내렸다. 이에 따라 법원의 허가가 있기 전까지 웅진에너지의 재산에 대한 채권자의 강제집행, 가압류, 가처분 또는 담보권 실행 등 일체가 금지됐다. 법원은 사건의 중요성을 감안해 서경환 수석부장판사가 재판장을, 이진웅 부장판사가 주심판사를 맡고 있는 4부에 사건을 배당했다.

웅진에너지의 법정관리행은 지난 4월 외부감사인인 EY한영 회계법인으로부터 지난해 재무제표에 대한 ‘감사의견 거절’을 받은 것이 계기가 됐다. 감사의견거절로 채권을 만기 전에 조기 상환해야 하는 기한이익상실(EOD)사유가 발생했고, 웅진에너지는 총 757억원의 상환 요구에 맞닥뜨렸다. 이후 웅진에너지는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 등 채권단에 출자전환을 골자로 한 채무 조정 협상에 들어갔지만 의견차를 줄이지 못해 결렬됐다.

산업은행은 20일 기업신용위험평가에서 웅진에너지를 '부실징후기업에 해당하며 경영정상화 가능성이 없는 기업'으로 분류했다. 결국 24일 웅진에너지는 서울회생법원에 문을 두드렸다. 웅진에너지의 차입금 규모는 총 1954억원 수준이다. 웅진에너지는 회생절차 신청서에 외부매각(M&A)등 구체적인 계획을 담지는 않았다. 웅진에너지 회생절차의 방향은 법원과 웅진에너지 및 채권단 등 이해관계자들과의 면담을 통해 결정될 전망이다.

채무를 덜고 새 시작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는 법정관리에 돌입했지만 웅진에너지의 미래가 밝지만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법정관리를 통한 회생은 크게 M&A를 통한 외부 투자 유치와 채권단의 출자전환 등 채무조정을 통한 자구 회생으로 나뉜다. 어떤 선택이든 관건은 웅진에너지의 ‘계속기업가치’가 ‘청산가치’보다 높다는 것이 전제다. 회생계획이 이행되는 10년의 기간 동안 이익을 내 청산가치 이상의 변제가 가능해야 기업이 존속할 가치가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산업 전망은 어두운 상황이다. 중국 정부가 오는 하반기부터 태양광 발전 보조금 지급을 재개하는 등 글로벌 수요가 회복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지만 170%에 달하는 웨이퍼·잉곳 시장 공급 과잉으로 수익성 회복을 장담하긴 어려운 상황이다. 게다가 다른 분야와 달리 잉곳·웨이퍼 분야는 기술 장벽이 낮아 중국업체들이 가격 뿐 아니라 기술에서도 떨어지지 않는다는 평가가 나온다. 웅진에너지는 중국발 공급과잉 여파가 시작된 2013년 이후 2015년과 2017년을 제외하면 매년 대규모 손실을 기록해왔다.

이에 매각 시 한국실리콘의 전철을 밟을 것이란 평가가 지배적이다. 국내 2위, 세계 10위권 폴리실리콘 생산 업체인 한국실리콘은 중국발 공급과잉 여파를 견디지 못하고 지난해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이후 두 차례 매각에 나섰지만 본입찰에 한 곳도 참여하지 않아 무산됐다. 한 IB업계 관계자는 ”부채는 많고 이익은 내지 못하는 기업에 베팅할 기업을 찾긴 힘들 것“이라며 “국내 유일의 웨이퍼·잉곳 업체란 산업적 가치는 있지만 시장 환경이 너무 안 좋다”고 말했다.

자구 회생 역시 우군이 없는 상황이다. 올초 코웨이를 인수하며 사업 재편에 나선 웅진 그룹은 지난 3월 웅진에너지 보통주 10주를 1주로 병합하는 무상감자를 단행했다. 감자를 통해 향후 매각이나 출자전환을 통한 경영권 이전에 용이한 구조를 만들었지만 이는 웅진에너지에 추가적인 지원은 없다는 소위 ’꼬리 자르기‘라는 것이 시장 일반의 시각이다. 산은 등 채권단은 지속가능여부가 불분명한 웅진에너지에 출자전환하는 데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해왔다.

법정관리 절차에선 채무 변제 계획을 담은 회생계획안이 회생담보권자의 75%, 회생채권자의 66.7%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통과된다. 한 구조조정 전문 변호사는 ”매각 혹은 경영정상화가 가능한 수준의 출자전환 합의가 쉬웠다면 웅진에너지가 법정관리에 들어오진 않았을 것”이라며 “하지만 청산시 고철값 수준으로 떨어지는 태양광 설비의 특성이 무담보채권자들의 협상력을 낮춰 합의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황정환 기자 ju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