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무' 생산중단 103일째…한화 공장에 무슨 일이

입력 2019-05-27 17:34
수도권 위협 北 '장사정포'
타격하는 핵심 무기

폭발사고로 작업중지
방산 생태계 붕괴 우려



[ 김보형 기자 ] 다연장 로켓 ‘천무’를 생산하는 (주)한화 대전공장이 3개월 넘게 멈춰섰다. 고용노동부가 지난 2월 14일 근로자 3명이 조업 중 폭발로 숨지는 사고 이후 내린 작업 중지 명령을 풀어주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천무는 서울 등 수도권을 위협하는 북한 장사정포에 대응하는 핵심 전력(戰力)이다. 조업 중단이 장기화하면서 우리 군의 전력 공백은 물론 한화 대전공장과 100여 개 협력업체의 경영난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멈춰선 ‘천무’ 생산라인

27일 방산업계에 따르면 대전지방고용노동청은 지난 20일 한화 대전공장이 제출한 화약류 제조시설 작업중지 명령 해제 신청을 부결시켰다. 지난해 5월(5명 사망)과 올 2월(3명 사망) 천무 등 유도무기 추진체 조업 과정에서 사망 사고가 잇따라 더 엄격한 안전관리가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고용노동부는 ‘중대 재해 발생 사업장에 대해 전면 작업 중지 명령을 원칙으로 한다’는 지침에 따라 사고 직후 한화 대전공장 가동을 중단시켰다. 조업을 재개하려면 지역 고용노동청과 방위사업청, 지역 소방본부, 외부 전문가 등으로 이뤄진 심의위원회 승인이 필요하다. 대전고용청 관계자는 한화 측의 조업 재개 신청을 불허한 이유에 대해 “심의위원회 논의 결과 사고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 마련이 좀 더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대전고용청은 29일 한화 대전공장 재가동과 관련한 2차 심의위를 연다.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24일 천무 추진체에서 일부 부품을 분리하던 중 추진체 하단에 남아 있던 정전기 때문에 폭발이 일어났다는 모의실험 감정서를 경찰에 전달했다. 경찰은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입건한 공장 직원 8명을 상대로 안전관리 대책을 제대로 지켰는지 조사 중이다.

방산업계는 안전관리 강화와 사고 재발 방지 대책 마련의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조업 중단 장기화에 따른 회사 경영 악화 등도 감안해야 한다고 호소한다. 대전공장 가동 중단 여파로 한화 화약제조부문의 올 1분기(1~3월) 실적은 급감했다. 매출과 영업이익이 작년 동기보다 각각 41.2%, 89.3% 급감한 2389억원과 47억원에 그쳤다. 1차 협력사 30곳을 포함해 100여 개 협력업체도 일감 부족을 호소하고 있다.

한화는 폭발 사고가 난 공정을 사람이 조업하지 않는 무인화 공정으로 바꾸겠다고 대전고용청에 보고했다. 사고 이후 고용청 특별근로감독에서 지적된 82건의 안전관리 위반 사항도 개선을 완료했다.

업계에서는 다른 산업재해 사업장에 비해 한화 대전공장에 대한 처벌이 가혹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달 9일 근로자 추락 사망 사고가 발생한 세아베스틸 군산공장은 사흘 만인 지난달 12일 가동이 재개됐다. 같은 달 3일 근로자가 설비 점검 중 끼임 사고로 사망한 한솔제지 장항공장도 22일 만인 지난달 25일 생산을 다시 시작했다.

‘K방산’ 신뢰도 하락 우려

한화 대전공장은 이날까지 103일째 가동이 중단됐다. 지난해 5월 사고 당시 42일이었던 가동 중단 기간보다 두 배 이상 길다. 방산업계에서는 천무 등 첨단무기 수출 차질 가능성도 우려하고 있다. 천무는 2017년 중동에 7000억원대 수주 실적을 달성했다. 지금도 분쟁지역을 중심으로 구매 문의가 꾸준한 것으로 알려졌다. 문재인 대통령은 2017년 10월 경기 성남 서울공항에서 열린 ‘서울 국제 항공우주 및 방위산업 전시회’에 참석해 국산 무기의 우수성을 언급하면서 “차세대 다연장 로켓 ‘천무’가 세계 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다”고 강조했다.

한화 대전공장은 천무 외에 지대공 미사일 ‘천궁’과 대전차 미사일 ‘현궁’의 탄두 등 주요 유도무기를 생산한다. 이 공장에서 조립하는 탄두와 로켓 등 추진기관을 공급받는 다른 방산업체들도 연쇄적으로 생산 차질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무기 생산이 지연되면 국방부와 방사청에 지체상금(납품지연 배상금)을 물어야 한다. 조업 중단이 길어질수록 배상금을 더 물어야 한다. 채우석 한국방위산업학회장은 “안전관리도 중요하지만 국가안보와 수출산업 육성이라는 방위산업의 특수성을 고려한 결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보형 기자 kph21c@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