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인택 울산지검장 "표 의식한 검찰개혁안, 세월호 때 해경 해체한 꼴"

입력 2019-05-27 07:33
송인택 울산지검장, 국회에 '검찰개혁 건의문'
"표만 의식, 경찰 주장 편승"




송인택 울산지검장이 여야 4당이 패스트트랙(신속처리안건)으로 지정한 검·경 수사권 조정 법안에 대한 비판과 구체적인 검찰개혁 방안을 정리한 장문의 글을 26일 전체 국회의원들에게 이메일로 보냈다.

송 지검장은 이날 오후 8시 국회의원 전원에게 '국민의 대표에게 드리는 검찰개혁 건의문'이라는 이메일을 보냈다. 문서파일로 첨부된 건의문은 A4 14장에 달한다.

그는 메일을 보낸 이유에 대해 "지금 국회에서 패스트트랙으로 상정된 검찰개혁 방안은 환부가 아닌 엉뚱한 곳에 손을 대려는 것으로 많은 검사가 이해하고 있다"면서 "중립성과 공정성 시비 등에서 시작된 개혁논의가 방향성을 잃고 수사권 조정이라는 밥그릇 싸움인 양 흘러가는 것이 우려스럽다"고 밝혔다.

송 지검장은 "검찰개혁 요구가 권력의 눈치를 보는 수사, 정치적 중립성을 잃은 수사, 제 식구 감싸기 수사 등에서 비롯됐고, 그 책임이 검사에게 많다는 점에서 부끄러울 때가 많다"면서 "그렇다면 정치적 중립성과 공정성 시비가 공안, 특수, 형사, 공판 중 어느 분야에서 생겼는지, 의혹과 불신을 초래한 사건처리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해 충분히 반성하고 논의해야 한다"고 전제했다.

그러면서 "국민 기대에 부응하지 못한 수사를 초래하는 공안과 특수 분야 보고체계와 의사결정 시스템을 바꾸지 않고, 정치 권력 마음에 들지 않는 수사를 하면 인사에서 불이익을 주는 제도를 개선하는 내용이 전혀 포함되지 않은 작금의 개혁안들이 마치 모든 문제점을 해결하는 방안인 것처럼 추진되는 것을 지켜보자니 또 국민에게 죄를 짓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그는 "국민들 사이에서 발생하는 형사분쟁에 경찰이 아무런 제약 없이 수사를 개시하고, 계좌·통신·주거를 마음껏 뒤지고, 뭔가를 찾을 때까지 몇 년이라도 계속 수사하고, 증거가 없이도 기소의견으로 송치하거나 언제든지 덮어버려도 책임지지 않는 방향으로 나아간다면 그것은 개혁이 아니라 개악이다"라고 비판했다.

송 지검장은 "지금 논의되는 검찰개혁안들이 국민에게 불편·불안을 가중하고, 비용은 늘어나게 하며, 수사기관의 능력 때문이 아니라 제도의 잘못으로 범죄자를 처벌하지 못하는 결과를 초래할 위험이 있는지 검토해야 하고, 그런 위험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개혁안은 재고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수사권을 어떻게 떼어줄 것인가로 개혁논의가 옮겨간 것은 개혁 대상과 방향을 잃어버린 것이고, 표만 의식해서 경찰 주장에 편승한 검찰 해체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면서 "이는 세월호 참사 때 재발 방지를 위한 개혁이라고 해경을 해체한 것과 무엇이 다른지 묻고 싶다"고 덧붙였다.

송 지검장은 "민정수석은 권력 핵심이고, 법무부 장관은 정권에 의해 발탁되고 정권에 충성해야만 자리를 보전하는 자리다"면서 "법무부 장관에게 수사 진행 과정과 처리 사항을 왜 일일이 사전보고해야 하나"라고 반문했다.

이어 "검찰총장 후보들이 거론될 시점이 되면 누구누구는 충성맹세를 했다는 소문이 돌곤 한다"면서 "총장 임면이 현재와 같은 시스템이라면 태생적으로 코드에 맞는 분이나 정권에 빚을 진 사람이 총장이 되고, 결국 총장은 임명권자 이해와 충돌되는 사건을 지휘할 때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지휘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만일 환부가 아닌 엉뚱하게도 멀쩡한 다른 부분을 수술하는 것이라는 비판에 귀를 닫고 검사들조차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밀어붙인다면, 진정한 검찰개혁을 기대하고 있는 국민들에게는, 집권시 정권의 칼로 검찰을 계속 활용하고 싶은 여야 정치권의 속마음과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검찰의 이해와 통제받지 않고 마음껏 권력을 휘두르고 싶은 경찰의 이해가 서로 맞아 떨어진 위선이거나, 평소 검찰에 대하여 갖고 있던 불편한 감정을 풀기 위한 정치권의 보복으로 비쳐질 수도 있다"고 덧붙였다.

이미나 한경닷컴 기자 helper@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