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LPGA E1 채리티오픈
경쟁자들 실수…반전 또 반전
18번홀 보기하고도 연장 합류
연장 첫홀서 버디 잡아 '2파전'
1m 파퍼트 놓친 김지현 꺾어
[ 조희찬 기자 ] ‘우승은 하늘이 내려준다’는 스포츠계의 격언을 실감케 한 승부였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투어 4년차 임은빈이 그 낙점을 받았다. ‘무명선수의 네 번째 준우승’으로 끝날 것 같았던 경기는 경쟁자들의 잇따른 실수로 뒤집히고 또 뒤집혔다. 생애 첫 우승컵이 꿈처럼 그의 품에 안겼다.
기다린 자에게 오는 선물, 우승
임은빈은 26일 경기 이천의 사우스스프링스CC(파72·6514야드)에서 열린 KLPGA투어 E1 채리티오픈(총상금 8억원) 최종라운드에서 이글 1개와 버디 2개, 보기 3개, 더블보기 1개로 1오버파를 적어냈다. 최종합계 10언더파 206타를 친 그는 동타를 기록한 김소이, 김지현, 이소미와 연장전에 들어갔고 연장 네 번째홀에서 보기에 그친 김지현(한화)을 파로 누르고 꿈에 그리던 ‘그린 퀸’ 자리에 올랐다.
2016시즌 KLPGA 정규투어에 모습을 드러낸 그는 대회 93번째 도전 끝에 챔피언의 꿈을 이뤘다. 우승상금은 1억6000만원. 임은빈은 올 시즌 누적상금을 1억9304만원으로 끌어올려 상금랭킹에서도 ‘톱10’에 진입했다.
1타 차 2위로 최종일 경기에 나선 임은빈은 256야드짜리 짧은 파4홀로 세팅된 13번홀에서 한 번의 샷으로 온그린에 성공한 뒤 이글을 잡아내 막판 우승 경쟁에 합류했다. 하지만 마지막 18번홀에서 우승경험이 없는 선수가 감당하기엔 무거운 중압감이 그를 짓눌렀다. 페어웨이 곳곳을 날카롭게 찌르던 티샷이 감기면서 왼쪽 해저드에 빠졌다. 결국 보기를 범해 공동 2위로 내려앉았다. 하지만 반전이 기다리고 있었다. 신인 이소미가 1.5m 거리의 ‘우승 퍼트’를 놓친 것이다. 승부는 네 명이 겨루는 연장으로 흘러갔다.
아! 1m 퍼팅…날아간 2주 연속 우승
다시 찾아온 두 번째 기회. 이를 악문 임은빈은 이번엔 물러서지 않았다. 4차전까지 이어진 연장에서 티샷을 모두 페어웨이에 올리며 집중력을 뽐냈다.
그는 1차 연장에서 버디를 잡았고 파에 그친 김소이와 이소미를 따돌렸다. 5m 거리의 긴 버디퍼트를 집어넣어 살아남은 김지현이 2차 연장에 따라붙었다. 갤러리와 팬들은 범상찮은 김지현의 기세에 주목했다. 임은빈은 흔들리지 않고 계속해서 버디 찬스를 만들며 김지현을 압박했다. 연장 4차전에서 두 번째 반전이 터져나왔다. 파로 침착하게 마무리한 임은빈과 달리 김지현이 약 1m 거리의 짧은 파퍼트를 어이없이 놓친 것이다. 공은 홀을 스치듯 지나가 버리고 말았다. 임은빈의 우승이 확정되는 순간이었다.
임은빈은 “지난주 (7경기를 치르는) 매치플레이에서 우승을 차지하고서도 엄청난 경기력을 보여준 (김)지현 언니의 경기를 구경하기 바빴고 대단하다고 생각했다”며 경쟁자를 치켜세웠다. 이어 “우승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는데 믿고 기다려준 아버지께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그의 아버지는 대회 내내 임은빈의 백을 멨다.
지난주 두산매치플레이챔피언십에서 ‘골프여제’ 박인비를 꺾고 우승하는 등 2주 연속 우승에 도전한 김지현은 통한의 1m 퍼트 실수로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비록 우승은 놓쳤으나 올시즌 모든 대회 커트 통과에 이어 시즌 세 번째 톱10에 진입해 유일한 다승자인 최혜진의 대항마로 급부상했다. 시즌 3승에 도전하던 최혜진은 이날 2타를 잃고 최종합계 2언더파 공동 24위에 그쳤다.
신인 이소미는 다잡았던 우승컵을 놓쳤지만 준우승이란 값진 성적표로 골프 팬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신인상 경쟁에서 독주 중인 조아연과 함께 ‘루키 전성시대’의 또 다른 축으로 떠올랐다.
조희찬 기자 etwood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