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프레온가스와 미세먼지

입력 2019-05-24 00:15
고두현 논설위원


[ 고두현 기자 ] 1928년 발견된 프레온가스는 독성 없는 ‘꿈의 냉매(冷媒)’로 불렸다. 냉장 장비의 아황산가스나 암모니아 같은 위험물질을 대체한 ‘냉장고 혁명’의 주역이었다. 그러나 1974년 오존층을 파괴한다는 사실이 밝혀졌고, 몬트리올 의정서에 의해 2010년 사용이 전면 금지됐다.

국제적인 협력에 따라 대기 중의 프레온가스 농도는 서서히 줄어들었다. 남극 상공에 생긴 ‘오존 구멍’도 조금씩 메워졌다. 그런데 2012년부터 프레온가스 감소 속도가 눈에 띄게 떨어졌다는 사실이 지난해 밝혀졌다. 왜 그랬을까. 어제 발행된 국제학술지 ‘네이처’가 궁금증을 해소해줬다.

박선영 경북대 교수팀과 영국 미국 스위스 등의 국제연구진에 따르면 중국 산둥성과 허베이성 등 동부지역에서 2013년 이후 연간 7000t에 이르는 프레온가스가 배출되고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2008년부터 2017년까지 10년간 제주 관측센터와 일본 오키나와 관측소에서 수집한 자료를 분석한 결과다.

중국 동부지역에는 냉장고를 생산하는 영세 공장들이 밀집해 있다. 중국 정부는 지난해 프레온가스의 일부 사용 사실을 시인했지만, 대규모 생산은 아니라고 잡아뗐다. 하지만 이번에 불법 배출 수치가 구체적으로 확인됐다. 국제연구진은 “유엔과 주요 당사국들이 프레온가스 협약 준수를 압박하는 데 좋은 근거 자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중국의 ‘프레온가스 꼼수’가 밝혀지자 많은 사람이 미세먼지 문제를 언급하고 있다. 중국은 최근 “미세먼지 감축 정책으로 대도시의 공기가 좋아졌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도심 주변 지역의 미세먼지 배출량은 더 늘었다는 지적이 중국 내부에서 나왔다. 오염물질을 많이 배출하는 공장들이 규제를 피해 주변부로 이동한 결과라고 한다.

중국은 여전히 ‘중국발(發) 미세먼지 책임론’을 부정하면서 한국에 “증거를 내놔 봐라”고 큰소리를 치고 있다. 이를 반박하려면 프레온가스처럼 10년 정도의 분석자료가 있어야 하는데 우리에게는 그런 데이터가 없다. 미세먼지의 중국 영향에 관한 연구도 자료마다 수치가 달라 신뢰성을 얻지 못하고 있다.

정부 정책 또한 일관성이 없다. 정권이 바뀌고 외부 요인이 발생할 때마다 급조된 대책만 난무했다. 장기적 안목의 실효성보다는 근시안적 전시 행정도 많았다. “미세먼지를 30% 줄이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에 맞춰 올해 미세먼지 특별법이 제정됐지만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프레온가스든 미세먼지든 중국과의 협상 테이블에서 가장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은 ‘꼼짝 못할 데이터’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된다.

kd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