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노조 "우리 사람 채용해라" 압박
'소음 항의' 주민들 맞불 집회까지
[ 이주현/양길성 기자 ]
서울 강남권 최대 규모의 아파트 재건축 공사가 건설노동조합 간 갈등으로 한 달째 몸살을 앓고 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이 현장 출입구에서 새벽마다 노조원 고용을 촉구하는 집회를 벌이면서 이에 부담을 느낀 건설회사는 인력 수급에 차질을 빚고 있다. 연일 이어지는 노조들의 폭력 사태와 집회 탓에 인근 시민들 불만도 커지고 있다.
민주노총 조합원 50여 명은 23일 오전 6시 서울 일원동 디에이치자이개포 건설현장 출입구에서 집회를 벌였다. 건설업체와 근로계약을 맺은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소속 노동자 출근을 방해하기 위해서다. 민주노총의 봉쇄를 풀지 못한 한국노총 소속 근로자들은 발길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민주노총의 출근 방해는 지난 10일 이후 2주째 계속되고 있다.
양대 노총은 수십억원대 이권이 걸려 있는 이 현장을 두고 한 달째 갈등을 빚고 있다. 지난달 23일 민주노총 조합원 620여 명과 한국노총 조합원 570여 명이 대치하면서 충돌이 본격화했다. 갈등은 골조 공사에 투입되고자 안전교육을 받으려는 한국노총 조합원들과 이를 막으려는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몸싸움을 벌이며 시작됐다.
지난 9일엔 두 노조가 안전교육장 앞에서 충돌해 한 조합원의 갈비뼈에 금이 가는 등 13명의 부상자가 나왔다. 지난 13일엔 민주노총 조합원 700여 명이 집회를 열자 한국노총 조합원 300여 명이 맞불 집회를 하는 등 충돌이 계속됐다.
디에이치자이개포는 15개 동에 1996가구가 들어오는 대단지 아파트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현장을 장악하면 160여 명이 고용돼 연 60억~70억원을 벌 수 있는 큰 현장이라 두 노총이 사활을 걸고 싸우고 있는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확성기로 고성이 오가는 집회가 계속되자 인근 주민들은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 건설사와 경찰에 민원을 제기했지만 해결될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개포주공7단지 주민인 김모씨(51)는 “집회 현장 옆 중학교에 다니는 아들이 확성기 소음에 영어 듣기 시험을 망쳤다고 집에 와서 울었다”며 “수천 명의 인근 시민들이 집회 소음으로 고통받고 있는데 정부는 왜 수수방관하는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공사 현장에 투입된 한 건설업체 관계자는 “정부가 조율점을 찾아줬으면 하는데, 우리가 알아서 해결하라는 식으로 쏙 빠지고 있는 것 같다”며 답답함을 털어놓았다.
정부는 뒤늦게 건설노조 횡포를 막겠다며 대책 마련에 나섰다.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정부는 폭력과 불법을 끌어안고 가지 않을 것”이라며 “의견 수렴 절차를 거쳐 대책을 세우겠다”고 말했다.
이주현/양길성 기자 deep@hankyung.com